낭만주의시대의 대학론

박찬길(영어영문학과)

우리는 대학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07 이화여대 하계 전체교수회의 특강: 연세대학교 경영학과교수 겸 삼성경제연구소 소장 정구현은 “Global Talent 육성과 대학교육”이라는 특강에서 다음과 같은 명제를 제시했습니다.

“이화여대의 교육목표는 ‘엔트리연봉 20만불의 글로벌 영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런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매우 큰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교육은 돈 잘 버는 사람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려면 어렸을 때부터 장사를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이런 “실용”에 대한 요구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공리주의적 대학개혁의 선례: 독일

가령 H.P. 블로이엘에 따르면 17-18세기의 독일대학은 절대주의 국가의 관료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법학부가 가장 중시되었고, 법학, 행정학이나 경제학 같은 “전문학”을 가르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대학은 국가를 위해 유용한 자원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지식의 전수소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미학편지』를 쓴 프리드리히 쉴러도 위템베르크 대학의 속물적 분위기에 격분하여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면적인 힘에 이끄는대로, 직업을 위한 교육이라는 좁은 감옥을 벗어나서 자기 내부의 신이 부여한 소명을 따르는 젊은이를 비난해야 합니까? 이것은 높은 곳을 향하지 못하는 자신들에게 실망하여 소인배들이 천재에게 복수하는 것 아닌가요?”

독일 신인문주의/낭만주의의 반발

이러한 맥락에서 칸트(Kant)와 쉴러(Schiller) 같은 신고전주의/계몽주의 지식인들, 피히테(Fichte)의 영향을 받은 낭만주의 시인들(Schlegel 형제, Schelling, Schleiermacher)은 이러한 분위기에 반발했고, 이들의 정신을 계승한 훔볼트(Wilhelm von Humbolt)는 Friedrich III의 명을 받아 1810년에 베를린대학을 창립했습니다.

빌둥(Bildung)

훔볼트가 대학을 설립하면서 채용한 이념은 괴테, 쉴러를 포함한 많은 낭만주의 철학자들이 공유했던 교육이념, 즉 빌둥(Bildung)이었다. 당대의 철학자들은 저마다 빌둥을 다양하게 달리 사용하지만 Beiser가 그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빌둥은 배움(learning)과 개인적 성장(personal growth)라는 두 요소를 포함한다. 배움은 개인적 성장의 일부이며, 인간이 특정한 개인으로 실현되는 과정이다. 즉 빌둥은 자기실현(self-realization)의 과정이며 그 자체로 최고의 선이다. 빌둥에 의한 자기실현은 인간의 모든 능력들을 균형있게 발전시켜서 인간을 하나의 전체(a whole)로서 완성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개인적 정체성(individuality)를 완전하게 실현한다. 이러한 개념은 완벽해질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human perfectablility)라는 계몽주의적 인간관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훔볼트 원칙

대학의 절대적인 자율성(정부의 전적인 지원과 불간섭의 원칙)

학문과 교육의 자유

동일체 원칙(지식의 동일체, 교수와 학생의 동일체, 연구와 교육의 동일체).

이에 따라 대학의 구성원들은 이른바 고독과 자유(Einsamkeit und Freiheit)라는 원칙에 따라 어떠한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 없이 진리탐구에 매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훔볼트의 빌둥과 베를린대학의 원칙에 관해서는 제가 2014년 5월 23일에 교수학술제에서 발표했던 「낭만주의적 자아형성과 근대적 대학의 이념」이라는 글에서 자세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의 발표는 그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대학개혁

영국에서는 대학개혁은 그 방향이 반대였습니다. 19세기 초까지 잉글랜드의 대학은 옥스퍼드(Oxford)와 케임브릿지(Cambridge) 둘 뿐이었고, 이 두 대학은 한편으로는 인문학/기초과학(Trivium: Grammar, Logic, Rhetoric과 Quadrivium: Arithmetic, Geometry, Music, Astronomy)을 기본으로 하는 중세적 교육과정을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 국교의 성직자, 그러니까 고위 공무원의 양성이라는 실용적인 목적에 충실했습니다. 따라서 비국교도나 영국 국교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39조항(Thirty Nine Articles)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대학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었지요.

이렇게 배제된 영국의 비국교도 중산층 지식인들은 독일의 베를린대학과 미국의 버지니아(Virginia)대학이 창립(1819)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영국대학의 폐쇄성과 후진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비국교도에 대한 종교적 차별의 철폐뿐만이 아니라 외국(독일과 미국)과 스코틀랜드(St Andrews, Glasgow, Edinburgh)의 대학들이 운영하고 있는 보다 실용적 성격의 교육과정을 영국의 대학에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시인 토마스 캠벨의 제안에 의해 1826년에 설립된 University College London이 바로 그런 대학이었으며, 그 이념적인 지도자는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이었습니다. 2년 뒤엔 King’s College London이 창립되었는데, 이것은 실용적 성격의 커리큘럼의 필요성은 수용하되, 영국국교와의 연관은 유지할 것을 주장하는 중산층 지식인들이 UCL에 대항하는 취지로 만든 대학이었습니다.

Oxbridge에 대한 개혁요구와 그 반동: Edinburgh Review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휘그파(The Whig) 지식인들은 Oxbridge에서도 사회적인 수요에 부응하는 실용적인 교과목을 요구했는데, 이러한 교육과정의 점차적인 세속화는 교육과정의 종교적 성격의 회복을 요구하는 Cambridge Apostles나 Oxford Movement 같은 보수적, 복고적 방향의 운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교육이념의 정신적 지주는 젊은 시절 프랑스혁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로서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와 더불어 영국낭만주의 문학운동을 주도했던 코울리지(Coleridge)였다.

Coleridge의 “Clerisy”

이러한 맥락에서 코울리지가 만들어낸 “Clerisy”라는 개념이 특이한데, 1829년에 저술한 “교회와 국가의 구성에 관하여”(On the constitution of the Church and State)에서 였습니다. 성직자 Clergy와 비슷한 Clerisy는 영국의 National Culture를 유지 전파하는 엘리뜨 지식인을 뜻하는 것으로, Bentham같은 공리주의자의 실용적, 세속적 교육이 목표로 하는 실용적인 전문가 지식인에 대항하는 개념이었습니다.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지향해야 하는 교육목표가 무엇이냐를 놓고, Bentham같은 공리주의자들은 단연코 실용적 지식을 갖춘 유용한 인적자원이라고 했다면 Coleridge같은 전통주의자들은 영국의 국교를 중심으로 나라의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킬 엘리뜨 자원, 즉 Clerisy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영국 낭만주의의 문학적 교육론

워즈워스와 코울리지는 1790년대에는 영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공화주의자로서 시인의 경력을 시작했고, 곧 국교도로 귀의하면서 보수적 지식인으로 탈바꿈했지만, 이러한 이념적 변신과 무관하게, 그들이 시를 통해 지향했던 교육적 이상은 그들이 정치적으로 가장 진보적이었던 순간에도 완전히 반공리주의적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의 문학적 반란은 이성을 무기로 중세적 체제에 대항했던 계몽주의의 진보성을 공유하면서도 동시에 이성에 대한 맹종이 가져오는 인간성의 황폐함에 반발했던 것입니다.

특히 워즈워스는 독일에서 괴테와 쉴러가 보여준 빌둥의 이상을 영국적 맥락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추구했던 시인이었습니다. 그가 “틴턴사원”(Tintern Abbey)에서 부터 “서곡”(The Prelude)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시적 정신의 성장”(The growth of poetic mind)은 그 자체로 영국식 빌둥의 과정이었고, 그렇게 완성된 “시인”은 “가장 고양된 느낌 속의 이성(Reason in her most exalted mood)”이 장착된 가장 이상적인 인간에 대한 은유(metaphor)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틴턴사원”의 시적 교육과 도덕적 성장

“틴턴사원”에서의 한 구절은 미학적 즐거움이 도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시인의 생각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아름다운 형상들 . . .

나는 그것들 덕택에

지루한 시간에도 달콤한 감흥을 느꼈다.

핏속에서 느꼈고, 핏줄을 따라 심장에서도 느꼈다.

그리고 나의 더 순수한 마음까지 흘러들어와

고요한 회복을 가져왔다. 아울러

기억되지 않는 쾌락에 대한 감정도 가져왔다.

그건 어느 착한 사람의 인생 최고의 한 대목,

그의 작고, 이름 없는, 기억되지 않는,

친절하고 사랑스런 행동들에

아마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그런 감정이었다.
(틴턴사원 25, 27-36행)

These forms of beauty . . .

I have owed to them,

In hours of weariness, sensations sweet,

Felt in the blood, and felt along the heart;

And passing even into my purer mind,

With tranquil restoration—feelings too

Of unremembered pleasure; such, perhaps,

As may have had no slight or trivial influence

On that best portion of a good man’s life;

His little, nameless, unremembered, acts

Of kindness and of love.

(Tintern Abbey ll. 25, 27-36)

애도하는 마음 속의 “미덕과 친근한 힘”

“무너진 오두막”(The Ruined Cottage)의 화자 행상인(the pedlar)은 몰락한 직조공이자 전쟁미망인 마가렛의 애달픈 사연에 대해 과잉으로 반응하는 청자 “젊은 시인”에게 이렇게 훈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죽은 사람의 얘기라고 해도,

이성과는 무관하게 미래의 모든 선과 완전히 단절된 채

순간적인 즐거움을 취하는데 만족하면서

고인의 고통을 아무 생각없이 가지고 놀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건 방종이며 아주 심하게 질책받아야 하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

늘 그런 건 아닐지라도

애도하는 마음속 생각에는,

미덕에 친근한 힘이 종종 깃들어 있다는 것을.

(무너진 오두막, 222-29행)

It were a wantonness, and would demand
Severe reproof, if we were men whose hearts
Could hold vain dalliance with the misery
Even of the dead, contented thence to draw
A momentary pleasure, never marked
By reason, barren of all future good.
But we have known that there is often found,
In mournful thoughts, and always might be found
A power to virtue friendly.

(The Ruined Cottage, 222-29)

워즈워스가 생각한 시인의 임무

워즈워스는 독자들의 황폐해진 감수성을 일깨워 그들의 마음속에 “미덕과 친근한 힘”을 일깨우는 것이 시인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했고, 이것은 독일의 쉴러가 천명했던 미학적 교육의 내용과 거의 같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조야하고 난폭한 자극이 없어도 일깨워질 수 있다...그렇게 일깨워질 수 있는 능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모른다면 인간의 정신이 가진 아름다움과 존엄성을 모르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이러한 능력을 만들어내고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시대를 막론하고 한 작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헌이다.

(서정담시집 서문)

“즐거움의 초과상태”(an overbalance of enjoyment)

워즈워스는 그러한 시인의 임무를 한 마디로 “‘즉각적인 즐거움’(immediate pleasure)를 주는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얼핏 보면 이것은 앞에 나온 시인이 천명한 도덕적 시학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워즈워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인의 임무는 우주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랑의 정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가볍고 쉬운 임무이다. 그것은 인간이 원래 있는 그대로 가지고 있는 존엄성에 대해서, 즉 인간이 알고, 느끼고, 살고, 움직이는데 늘 작용하는 장엄하고 기본적인 즐거움의 원리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즐거움에 의해 전파되지 않는 공감은 없다. 우리 내부에는 즐거움으로 구성되고, 오로지 즐거움으로만 존재하는 지식만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은 다른 지식이나 다른 일반 원칙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인은 무엇을 하는가? 그는 자기 주위에서 상호작용하는 사람과 물체들을 생각하고, 무한하게 얽혀있는 고통과 쾌락의 복합체를 만든다. 시인은 어디에서나 즉각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들을 발견하며, 그 공감에는 인간의 본성상 즐거움의 초과상태(an overbalance of enjoyment)가 따라오게 되어있다.

(서정담시집 서문)

밀이 워즈워스에게 배운 것

한편 John Stuart Mill은 Jeremy Bentham의 막역한 친구이자 동료 공리주의 철학자였던 James Mill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소크라테스라고 불릴 정도로 19세기 최고의 사상가이자 최고의 영재로 유명한 사람이었죠. 아버지 James Mill은 그의 천재성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자신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조기교육을 실시했고, 그를 공리주의로 철저하게 무장된 최고의 개혁가로 성장시키려고 했습니다. Mill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서 모든 지식을 순식간에 흡수했지만, 20대 초반에 갑작스러운 정신적 붕괴(mental breakdown)를 경험했고, 그 결과 제임스 밀의 공리주의적 조기교육 프로그램은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밀의 자서전에 의하면 그 당시 밀을 구원한 것이 바로 워즈워스의 시였다. 밀은 그때 워즈워스에게서 배운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워즈워스에게 이런 걸 배웠다. 어떤 생각에 깊게 몰두함으로써 사물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정서, 나이가 들면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그런 정서를 항상 새롭게 유지할 수 있고, 쾌활하고 기쁜 마음의 상태를 거의 모든 대상과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즐거움, 혹은 다른 감각이 있는 존재들의 즐거움에 대해 말해줄 수 있다는 것, 말하자면 다른 존재들의 즐거움 속에서 우리를 증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아울러 인간성의 나쁜 부분이 주는 고통보다 좋은 부분이 주는 쾌락이 더 많게 함으로써 동료 인간들에 대한 모든 혐오와 경멸의 감정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전례가 없어서 묘사하기 어렵지만, 이런 마음의 상태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인생은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변했다. 쉼 없이 계속 움직일 것을 요구받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행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여전히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이 남아있는가? 이런 감정의 상태 자체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사회에서는 더 강한 것들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밀, 자서전)

밀의 명예총장 취임연설

이러한 Mill은 워즈워스의 시를 통해 공리주의적 교육의 폐해가 초래한 “정신적 붕괴”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워즈워스의 “쾌락의 초과상태”라는 개념에 힘입어 공리주의의 Pain-Pleasure의 이분법을 중대하게 수정합니다. Mill은 1865년에 세인트 앤드류스(St Andrews) 대학 명예총장(Rector)으로 추대되는데 그 취임연설에서 문학교육의 효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플라톤, 데모스테네스, 타키투스에게서도 고양된 감정들을 얻어 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철학자나 웅변가 혹은 역사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이고 예술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다. 시적 육성이 길러내는 것은 고상함, 영웅적 감정 같은 것들만이 아니다. 시적 육성은 영혼을 고양하는데 만큼이나, 영혼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데에도 그 힘을 발휘한다. 고양된 정서뿐만 아니라 온화한 정서를 북돋는데 말이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어떤 국면에서 인간의 이타적인 본성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 개인의 기쁨과 슬픔이 공동체의 이익과 손해와 일치되는 일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준다. 단테나 워즈워스의 강의를 듣고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여기에서 밀이 강조하는 시적 육성, 즉 미학적 교육의 핵심은 개인의 이기적인 본성을 넘어서는 경험을 해보는 것입니다. 보통의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늘 이타적인 정신으로 가득 차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시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배양한 어떤 감정 안에서는 우리 본성 안에 있는 비이기적 요소들이 자극되고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공동체의 이익과 손해가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똑같이 우리의 “기쁨과 슬픔”을 불러일으키며, 그 결과 우리의 도덕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밀의 주장이었습니다.

‘건전한 종류의 연상작용’을 도덕적인 자각의 조건으로 제시했던 벤담의 문제는 그것을 위해 ‘보상과 처벌’이라는 인위적 수단을 써야 했다는 것인데, 여기에서는 ‘보상과 처벌’이라는 물리적 수단 대신 “쾌락의 초과상태”를 만들어내는 “시적 육성”을 내세웠습니다.

밀은 훗날 이러한 미학적 훈련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쾌락을 “고상한 쾌락”(Higher Pleasure)으로 부르며 공리주의의 일반적인 쾌락과 구분했는데, 이러한 “고상한 쾌락”의 원천은 물론 워즈워스의 시와 같은 뛰어난 예술작품이고, 이것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이 그 개인의 도덕적 삶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17. 밀의 미학교육과 “시적 육성”

밀은 학생들을 향한 그의 취임연설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선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육성하는 것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동질성이 있다. 아무런 지침없이 본능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육성이라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배운 사람은, 그 사람이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자기 삶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실현하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 그때 참고할 수 있도록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의 전형을 자기 앞에 세워두고자 하는 것이다

18. 마무리

저는 18년 전에 들어야 했던 경영학 교수의 그 무례한 훈계를 늘 생각하면서(분개하면서) 시를 가르쳐온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저의 대답은 160년 전에 이미 밀이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워즈워스를 전공하는 연구자로서, 그의 정치적 보수화가 개인적으로 적잖은 실망감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즈워스가 자신의 시 속에서 의도했던 시적 교육과 도덕적 성장이라는 미학적 기획은 영시를 읽고 가르치면서 평생을 보낸 저의 삶의 가치도 어느 정도 확인시켜 준다고 느낍니다.

공대 교수이면서 이번에 저와 같이 은퇴하는 제 고등학교 동창생 하나가 어느날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는 도로와 다리를 만드는데, 너는 무엇을 만드니?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그때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나는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과 착한 마음을 만든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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