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ytage Open Lecture
 

 

*김미화라는 코미디언을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1988년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던 "순악질여사"(길창덕의 만화에 근거한 것이지만)는 내가 아주 좋아하던 코너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당장의 생계를 위해 "알바"를 하며 장래를 준비하던 시절, 공교롭게도 그 코너가 방영되던 시간에 야간강의를 해야 했다. 요즘 같으면야 다시 보기를 하든가, 어디서 다운로드를 쉽게 하겠지만, 그 시절에는 비디오로 녹화해야 다시 볼 수 있었는데, 백수-학생 조합의 신혼부부라 우리에게 그런 사치품이 있을리 없었다. 생계를 돌보느라 주말저녁의 TV프로그램을 내내 포기해야했던 새 신랑 남편을 딱하게 여겼던 내 아내는 야간강의를 마치고 집에 와 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 내 앞에서 두어 시간 전에 봤던 "순악질여사"를 자기 실력껏 성대모사와 제스츄어를 섞어가며 "인간 비디오" 역할을 해줬었다. 나는 오리지널도 아닌데 아내의 어설픈 재현을 보면서도 배꼽을 쥐고 웃었었다.  스산하고 가난했던 내 신혼시절의 아스라한 기억중에서도 그건 가장 따뜻한 장면 중 하나로 남아있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고상한" 책만 읽는 영문학교수가 되었지만, 김미화의 코미디에 대한 애정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개그콘서트도 그녀 때문에 보기 시작했을 거다. 그러다 차츰 그녀의 모습은 개그콘서트에서도 보기 어려워졌다, 그녀의 전성기는 그렇게 흘러가는가 싶어서 좀 쓸쓸한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런데 어느날 라디오 저녁뉴스에 그녀가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김미화가 퇴근시간에 들려줬던 시사뉴스는 그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그녀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날의 가장 중요한 뉴스를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는 건 내게 남다른 즐거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를 나만 좋아했던 것이 아닌 것이 그 프로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곧 자리를 잡았고, 그 오랜 기간동안 청취율 높은 대표 저녁뉴스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런데 김미화의 정치색을 문제삼아서 그녀를 하루 아침에 자르다니!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당시의 이명박 정부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전 안하던 짓을 했는데, 아래의 글을 써서 경향신문에 투고를 한 것이다. 다행히 편집자가 나의 팬심을 어여삐 여겨 실어줬다. 나는 김미화씨가 이걸 읽어주길 바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혹시라도 감사전화 같은 거라도 오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바로 나흘 후인 7월 19일에 그녀의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녀가 읽었던 기자회견문에는 아래의 칼럼에 대한 분명한 에코(Echo)가 있었다고 "나는" 느꼈다. 그래서 난 충분히 만족했다^^. (그녀는 회견문 말미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저는 제가 코미디언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를 제발 코미디언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그녀의 회견은 내 칼럼이 기사화되고 3일 후에 이루어졌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나의 희망섞인 추측에 불과하다)

  

 

김미화를 위하여

 

 

김미화씨의 블랙리스트 발언이 연일 화제다. 평범한 시청자로서 나는 KBS에 진짜 그런 리스트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코미디언의 개인 트위터글에 대해 거대 방송사의 부사장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것, 또 여당의 대변인까지 나서서 공식 논평을 냈다는 것 자체가 수상쩍은 일이다. 강한 부정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긍정이라고 하지 않는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이 대목에서 떠오른다고 말하면 이것도 “명예훼손”으로 걸릴까? 사실 그런 “문서”가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발끈하지만, 원래 미운 털은 마음속에서 조용히 박는 것이지 그렇게 드러내놓고 박는 법은 없는 거다. 그런데 그런 상식이 아니라도, 이 블랙리스트설은 단순한 “소문”도 아니고, 김미화씨가 처음 발설한 것도 아니다. 3개월 전인 지난 4월 6일에 KBS노조는 이미 김미화씨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레이터”로 규정한 “KBS 임원회의 결정사항”이라는 문건을 문제 삼으며 블랙리스트의 존재여부에 대해 공개질의를 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에 민주당의 우윤근의원도 공식석상에서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사실상 김미화 블랙리스트설은 이미 KBS내부와 정치권에서 공론화되어있는 사안이었고, 그 당사자인 김미화씨가 이번에 자신의 답답한 처지를 호소한 것뿐이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연예인에게 방송출연은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다. 생존권의 위협을 느낀 당사자가 이를 호소했다고 해서 고용주가 이를 명예훼손으로 몰아가는 것은 부당한 노동탄압이다. 출연자선정의 문제는 전적으로 프로듀서의 권한이지 연예인 자신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닐지 모른다. 맞다. 출연자선정의 문제는 담당프로듀서 고유의 권한이다. 프로듀서는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가장 적합한 출연자를 선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직업적 판단의 성패는 시청률이라는 성적표로 매우 신속하고 정확하게 판가름 난다. 김미화씨의 내레이션이 어색했다고? 김미화가 누구인가? 관객의 무반응을 단 몇 초도 허용하지 않는 “살벌한” 무대형 코미디, 지금까지 10년 넘게 KBS코미디를 먹여 살리는 “개그콘서트”를 창안한 사람 아닌가? 또 MBC라디오 저녁 시사프로그램의 메인 앵커를 맡아 7년째 진행하고 있는 관록있는 방송인이다. 우리 사회에서 무한경쟁과 시장의 원리가 연예계만큼 철저하고 냉혹하게 관철되는 곳이 또 있는가? 현 정부의 대표적 이념이 바로 그런 시장경제의 원칙과 경쟁의 질서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이런 정도의 경력과 경쟁력을 가진 코미디언 김미화씨를 놓고 새삼스럽게 출연을 시키네 마네 하는 것은 처음부터 언어도단이며, 그녀에 대한 부당한 정치적 탄압이다. 김미화씨는 자신이 코미디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장차 더 좋은 코미디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항간의 추측과는 달리 “대통령을 시켜주지 않는 한” 정치로 나갈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천명했다. 나 역시 그녀의 열렬한 팬으로서 방송프로그램이 아니라 국회의사당에서 그녀를 보고 싶지 않다. “웃기고 자빠졌다”는 말을 자신의 묘비명으로 삼고 싶다는 코미디언 김미화, 제발 그녀를 그냥 코미디언으로 살게 하라. 언제나 씩씩하고 당당한, 그리고 되게 웃기는 우리의 “순악질 여사”를 말도 안 되는 억지 정치논리로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 그녀의 코미디가 이제는 예전만큼 재미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정치인이나 방송사 사장이 아니라 시청자가 한다.

 

 

경향신문 2010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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