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ytage Open Lecture
 

*학부시절부터 석사과정까지 같은 과에서 동문수학하던 신광현교수가 소천한지도 4년이 되어간다. 신교수는 내가 공무로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운명했고, 나는 그의 장례식도 49제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학생시절의 친분을 생각하면, 최근에는 다소 데면데면하게 지내왔던 셈이지만, 장례식에조차 참석하지 못했던 것은 두고 두고 아쉽고 미안했는데, 마침 일주기 기념식에서 추모사를 겸한 강연을 부탁해와서 마음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응했다. 학문적 동료였던 고인에게 대한 가장 정중한 추모는 역시 약간의 학문적 서사일 것 같아 애도와 비평을 겸한 엘레지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엘레지의 몇 대목을 낭송하기로 했다. 나 나름으로는 그것이 추모의 정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방식인 것 같아서였다. 

 

 

엘레지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저는 방금 소개받은 박찬길입니다. 저는 신광현교수와 서울대 영문과 학부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같이 공부했고, 영문학공부를 해왔던 지난 30년간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로서 지내왔습니다. 신교수의 부음을 받던 날, 저는 유럽의 한 나라에서 제 직장의 공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세상을 뜰 줄은 몰랐습니다. 장례식에 올 수 없어 매우 마음이 아팠습니다. 공교롭게도 49제가 있던 날에도 또 해외출장 중이었고, 그 때문에 마음의 빚이 컸었습니다. 그런데 1주기를 맞은 오늘, 신교수를 추모하는 이런 뜻깊은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뜻에서 저를 추모연사의 한 사람으로 초청해주신 서울대 영문과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주제는 엘레지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엘레지가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의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교수와 함께 1982년에 이곳 서울대 영문과에서 송낙헌선생님에게 18세기 영시를 배웠습니다. 그때 송선생님께서 “나는 개인적으로 Thomas Gray의 'An Elegy written in a Country Churchyard' 가 영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이후 꽤 오랜 시간동안 영시를 가르쳐 왔지만, 저 역시 송교수님의 말씀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1994년에 나온 “Four Weddings and a Funeral”이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는 친구들 간의 얽히고 설킨 결혼담을 다루는 로맨틱 코메디입니다. 휴 그란트와 앤디 맥도웰이 주연이지요. 그런데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네 번의 결혼식 장면이 아니라 한 번의 장례식입니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괴팍한 성직자 Gareth의 장례식에서 그의 친구이자 애인이었던 Matthew가 추모사를 낭독합니다. 그는 자신의 추모의 변을 대신하여 W. H. Auden의 시 “Funeral Blues”를 낭독합니다.

 

“He was my North, my South, my East, and West. My working week and my Sunday rest, My noon, my midnight, my talk, my song; I thought that love would last forever: I was wrong.”

 

물론 저는 신교수와 이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습니다. Matthew는 Gay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이 대목을 보면서 늘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시는 언제나 이런 진정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제가 좋아하는 또 다른 엘레지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너진 오두막(The Ruined Cottage)"입니다. 화자인 행상인(Pedlar)은 지나가던 자신에게 늘 맑은 물을 한 사발 떠서 권하던 마가렛을 추억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The good die first, And they whose hearts are dry as summer dust/ Burn to the socket."(96-98행)

 

착한 사람들이 먼저 죽는다. 하지만 여름철 먼지처럼 마음이 메마른 자들은 심지 끝까지 탄다.

 

그것은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가까운 사람을 먼저 잃었을 때 흔히 갖게 되는 생각, “세상에는 나쁜 놈들이 지천인데, 왜 하필 이 착한 사람이 먼저 갔을까”하는 생각에 담겨있는 애통한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엘레지는 이처럼 우리 모두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맞이할 때 가지게 되는 보편적인 감정을 잘 담아낼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우리 삶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되묻게 만듭니다. 그것은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한데, 그런 의미에서 엘레지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 안에서 가장 진지한 문학적 사유를 하도록 유도하는 독특한 문학적 양식이기도 합니다.

 

엘레지를 주제로 삼은 또 하나의 이유는 다 알다시피 엘레지는 죽은 친구를 애도하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엘레지의 창시자라고 일컬어지는 그리스 시인 Theocritus의 'First Idyll'이 바로 그렇습니다. 여기에서는 시인이자 목동인 Thyrsis가 이상적인 목동이었던 Daphnis가 무슨 사연으로 죽었는지 노래합니다. 여기에서, 뮤즈에 대한 invocation, nymph에 대한 원망, 조문객의 행렬, 꽃 장식, 고인에 대한 숭배(apotheosis) 등 후일 엘레지의 관습으로 확립된 장치들이 다 등장하지요. 이러한 관습들을 가장 충실하게 이어받은 영국시가 John Milton의 Lycidas입니다. 여기서는 29살에 나이에 세상을 떠난 대학시절의 친구 Edward King을 추모합니다. 오늘 우리가 추모하는 신광현 교수 역시 문학을 업으로 하는 가장 이상적인 직업인이었고, 가지고 있는 문학적 재능을 충분히 세상에 펼치기 전에 생을 마감해야 했다는 점에서는 Edward King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강연이 주된 텍스트는 'First Idyll'이나 ‘Lycidas’가 아니라 낭만주의 시인 Shelley의 ‘Adonais’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시는 Keats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Shelley가 썼던 엘레지입니다. 사실 오늘과 같은 자리에서는 이 시의 몇 대목을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용의 과정에서 우리가 ‘Adonais'를 어떤 의미에서 “낭만적” 엘레지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잠깐 설명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엘레지는 말하자면 장례식을 문학적으로 양식화한 것입니다. 장례식은 특정한 문화에 고유한 것이고, 장례식은 그 문화의 내세관을 반영합니다. 따라서 엘레지의 내용은 언제나 그것이 기반한 문화의 내세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그리스-로마시대의 엘레지는 고전적인 내세관에 입각해 있고, 르네쌍스시대의 영국시인들은 기독교적인 내세관을 반영한 엘레지를 썼습니다. 그 차이를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긴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고전적인 장례식은 그 형식이 일정한 관습으로 양식화되어 있습니다. 그 문화마다 그 내용은 매우 다르지만, 그러한 관습들의 초점은 고인이 새로운 환경, 그러니까 저승의 새로운 생활에 안착하여 무사히 그쪽에서의 삶에 적응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산 사람의 감정보다 죽은 사람의 저승에서의 안위가 더 중요합니다. 기독교식 장례식에서도 돌아가신 분을 축복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남아있는 사람의 마음도 중요합니다. 고인이야 어차피 이제 영적인 세계,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갔기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는 돌아가신 분과 이별하는 유족이나 조문객들이 기본적으로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합니다. 돌아가신 분과의 절대적인 단절이 매우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에 너무 빠져들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이승에서의 죽음을 의미할 뿐,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죽음은 슬픔이자 동시에 축복과 기쁨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지나친 슬픔은 신에 대한 부인이고, 반기독교적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적 장례식의 초점은 유족과 조문객이 마음껏 슬퍼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죽음을 삶의 완성으로 받아들이고 결국 위로받고 평정을 되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셸리는 Adonais를 쓰면서 그리스-로마의 고전적 엘레지의 전통과 르네쌍스 시대의 기독교적 엘레지의 전통을 함께 이어받았습니다. 고전적 엘레지, 즉 목가적 엘레지(pastoral elegy)에서는 서술의 초점이 죽은 사람 자체에게 맞춰져있고 화자 즉 목동들의 슬픔 자체는 다양한 목가적 관습에 포섭되어 매우 양식화된 방식으로만 표출됩니다. 그러나 영국 르네쌍스시대의 기독교적 엘레지에서는 망자의 죽음이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 사람들의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망자의 죽음은 산 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명상의 계기가 됩니다. 산 사람들이 인간의 유한성(mortality)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삶과 죽음의 거대한 체계 안에서 다시 확립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엘레지는 슬픔을 마음껏 토로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슬픔의 토로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다시 확립하는 자기성찰의 계기이기도 합니다. 자기중심주의(Egotism)은 기독교적 엘레지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엘레지에 관한 코울리지의 언급은 그 점을 잘 보여줍니다.

 

Elegy is a form of poetry natural to the reflective mind. It may treat of any subject, but it must treat of no subject for itself. but always and exclusively with reference to the poet(Coleridge 1835:268, original emphasis)

 

Specimens of the Table Talk of the late Samuel Taylor Coleridge, Volume II, London: John Murray.

 

기독교적 엘레지의 실질적인 관심사는 추모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추모하는 사람입니다. 추모하는 사람이 추모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갑자기 없어짐으로 해서 겪게 되는 정신적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느냐, 즉 슬픔과 비탄의 감정을 어떻게 위안과 평정 순간으로 전환하느냐 하는 것이 기독교적 엘레지의 초점입니다.

 

가령, 워즈워스는 나중에 추가된 이른바 “무너진 오두막”의 “도덕적 결론부”에서 화자를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My friend, enough to sorrow have you given,/ The purposes of Wisdom ask no more: Be wise and cheerful, and no longer read/ The forms of things with an unworthy eye...and all the grief/ The passing shews of being leave behind,/Appeared an idle dream that could not live/Where meditation was. I turned away/And walked along my road in happiness."

(The Ruined Cottage, MS D, 521-525)

 

워즈워스의 이러한 결론은 그 자의성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정서적 방향전환을 한 것이며, 또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죽은 마가렛에게는 너무 몰인정한 것 아니냐는 것이지요. 특히 기독교적 신의 섭리를 공개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그 자리에 “자연”을 밀어 넣은 워즈워스로서는 그러한 방향전환을 납득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셸리 역시 Adonais를 쓰면서 이러한 딜레마를 공유했습니다. Adonais는 형식적으로는 Lycidas처럼 고전적 엘레지의 관습적 장치를 충실하게 이어받으면서도 내용적으로는 기독교적 엘레지의 논리적 수사법과 개념적 모델을 계승했습니다. 워즈워스는 기독교적 신을 자연으로 대치하기라도 했지만 무신론자였던 셸리는 기독교적 내세관의 도움이 전혀 없이 슬픔에서 위안으로 전환해야 했고, 이것은 논리적으로 더욱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셸리는 Adonais 에서 여러 가지 엘레지의 관습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고전적 엘레지와는 달리 망자의 죽음을 대하는 산 자들의 슬픔을 누구보다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를 자세히 분석할 시간은 없으므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 연을 인용하겠습니다. 망자를 보내야 하는 산 자의 슬픔과 혼란을 누가 이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화자는 Adonais의 죽음을 이렇게 애도합니다.

 

Alas, that all we loved of him should be,

But for our grief, as if it had not been,

And grief itself be mortal! Woe is me!

Whence are we, and why are we? of what scene

The actors or spectators? Great and mean

Meet massed in death, who lends what life must borrow.

(Stanza 21, 181-186)

 

잠시 후, Adonais의 어머니로 설정된 Urania는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기도 합니다.

 

I would give/ All that I am to be as thou now art!/ But I am chained to Time, and cannot thence depart!

(Stanza 26, 231-234)

 

이러한 절절한 슬픔이 극복되는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관습적인 평가를 전복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사실상 이승보다 저승의 삶을 더 가치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적 관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기독교적 내세관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영국사회에 대한 셸리의 신랄한 비판이 심화된 형식, 일종의 염세적 역설로 구체화됩니다.

 

Peace, peace! he is not dead, he doth not sleep--/He hath awakened from the dream of life--/'Tis we, who lost in stormy visions, keep/ With phantoms an unprofitable strife,/ And in mad trance, strike with our spirit's knife/ Invulnerable nothings.--We decay/ Like corpses in a charnel; fear and grief/ Convulse us consume us day by day,/ And cold hopes swarm like worms within our living clay.

(stanza 39, 343-351)

 

코울리지가 엘레지의 특성을 “always and exclusively with reference to the poet”라고 표현했듯이, 셸리의 주된 관심은 결국 추모하는 우리 자신들이고, 그는 결국 키이츠의 죽음에서 자신의 운명을 봅니다. 31연에서 34연까지가 그 부분인데, 셸리는 자신을 조문객의 하나로 분장하여 등장시킵니다. Urania는 이 수상한 조문객에게 다가가 누구냐고 묻는지만 그는 답하지 않습니다.

 

He answered not, but with a sudden hand/ Made bare his branded and ensanguined brow,/Which was like Cain's or Christ's--Oh! that it should be so!

(stanza 34, 304-306)

 

셸리는 Adonais의 죽음을 삶의 완성으로 이해하고, 거기에 시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삶을 겹쳐놓습니다. “언제나, 오로지 시인과의 연관을 통해서만”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기중심주의적” 엘레지는 결국 시인의 자아를 탐구하고 완성시키는 성장시(the poetry of initiation)로 귀결됩니다. 실제의 삶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듯한 Adonais의 인상적인 마지막 연은 기독교적 “구원”의 전망이 없는 기독교적 엘레지가 낭만적 자아탐구와 만나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지를 극적으로 예증합니다.

 

The breath whose might I have invoked in song/ Descends on me; my spirit's bark is driven,/ Far from the shore, far from the trembling throng/ Whose sails were never to the tempest given;/The massy earth and sphered skies are riven!/ whilst burning through the inmost veil of Heaven,/The soul of Adonais, like a star,/ Beacons from the abode where the Eternal are.

(stanza 55, 487-495)

 

엘레지는 삶과 죽음의 단절이라는 엄중한 자연법칙을 산 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줍니다. 엘레지의 애도를 통해 산 자는 죽은 자와의 물리적 단절을 받아들이고, 정신적 통합을 지향합니다. 셸리가 키이츠의 죽음과 상상적으로 겹쳐놓은 자신의 죽음은 파멸이 아니라 시인으로서의 삶의 완성을 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 젊은 시인의 정신적 성장기를 죽음에 이르는 여행기로 묘사한 셸리의 시 Alastor의 epigraph로 앞서 인용한 워즈워스의 시구, “The good die first, And they whose hearts are dry as summer dust/ Burn to the socket."가 인용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의 강연은 여기까지 입니다. 하지만, 친구인 신교수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담아 제가 마지막으로 인용하고 싶은 시는 사실 Adonais가 아니라 이 강연의 초반에 언급했던 W. H. Auden입니다. Auden 역시 영시의 역사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엘레지 “In Memory of W. B. Yeats"를 썼습니다. 제가 이 시의 두 번째 연을 오늘의 마무리로 선택한 이유는 Auden역시 셸리처럼 Yeats의 죽음에서 시인들의 공통된 운명을 발견하지만, 셸리와는 달리 그의 숨결과 목소리가 관념이 아니라 역사적인 삶 속에서 보다 따뜻하게 우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패배하고 억압받는 것처럼 보이는 시적 정신이 죽은 시인과 아직 살아있는 우리들 사이의 든든한 연대감 속에서 싱싱하게 살아있음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You were silly like us: your gift survived it all: 

The parish of rich women, physical decay, 

Yourself. Mad Ireland hurt you into poetry.

Now poetry makes nothing happen: it survives 

In the valley of its making where executives 

Would never want to tamper, flows on south 

From ranches of isolation and the busy griefs, 

Raw towns that we believe and die in; it survives,

A way of happening, a mouth.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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