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ytage Open Lecture
 

* 이 발표는 삼성언론재단이 1998년 한국의 시사잡지 편집자들을 위해 개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이다. 영국의 고급한 시사잡지의 글쓰기에 비해 우리 시사잡지의 글쓰기는 너무 저질이라는 식으로 (그것도 30대의 젊은 교수가) 가르치려고 드니까 나이 지긋한 정치부 기자출신의 편집장들이 가소로와서 혀를 찼다. 사실 지금 읽어봐도 맞는 말이긴 한데, 좋게 얘기하면 혈기방장했던 것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뭘 몰랐던 것이겠다. 지금 쓰면 이렇게 못쓸 것 같다.

 

1. 서론: 잡지의 글쓰기와 문학적 교양

 

영국은 1066년 노르만족의 침공이래 단절되지 않은 유구한 문화적 전통을 자랑한다. 그것은 영국인들의 일상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든 지적 활동에 단단한 기초를 제공한다. 영국의 미디어는 그러한 문화적 전통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이다. 영국의 TV를 하루저녁만 보고 있으면 그들의 대중문화가 오랜 전통의 산물임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시사코미디도 그러하고 정치인들의 대담도 그러하다. 유명인사들의 고무인형을 만들어 그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Spitting Image" 같은 시사코미디는 필자가 거주하던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매우 인기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의 진지한 주제설정과 재치에 넘치는 만화적 상상력, 그리고 그 잔인한 풍자는 Dryden, Pope등18세기의 위대한 풍자문학과 19세기초James Gillray 등의 정치풍자만화의 유산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TV뉴스에 매일 등장하는 하원의원들의 토론을 봐도 그러하다. 원고도 없이 진행되는 자유토론의 품격과 수준은 그들 정치에 깊이 뿌리박힌 토론문화, 즉 16세기 종교개혁이래 벌어졌던 수많은 종교적, 정치적 논쟁의 전통의 끝에서만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TV의 코미디 프로그램과 정치인의 토론 솜씨가 그러할진대 영국의 시사잡지가 유구한 문화적 전통의 뒷받침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영국의 잡지는 1704년 Daniel Defoe가 The Review를 간행한 이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 이래 거의 300년에 달하는 기간동안 영국의 산문문학의 발전과 더불어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온 영국의 잡지는 영국 정치사의 주요 국면마다 의미있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편집자나 기고자 자신들이 영향력있는 인물들이기도 했거니와 그들의 논설 한 편이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에 까지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는 영국 시사잡지의 명성과 영향력의 실체를 그들의 글쓰기의 특성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 잡지의 글쓰기가 가지는 특성의 핵심은 필자 개개인의 글쓰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폭넓은 문학적 교양이다. 현상적 사실 위주의 조급한 분석에 치중하는 우리 잡지의 글쓰기에 비해 필자가 읽어 본 몇몇 "좋은" 시사잡지의 글들에는 현상적 사실 이면의 원칙과 철학에 대한 좀더 본질적인 비판정신이 깃들여있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문학적 교양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글쓰기를 필자는 일단 "지성적 글쓰기"라고 명명하였다. 사실 "지성적" 글쓰기 보다는 "인문적" 글쓰기, "문학적" 글쓰기라고 하는 편이 더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러한 글쓰기가 가능하고, 그것이 잡지의 글쓰기로 생존할 만큼 "지성적" 독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단절되지 않은 문화적 전통이 구축해온 문화적 하부구조에 힘입은 것이고, 영국문학의 "위대한 전통"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옹호하려는 잡지의 글쓰기가 사실에 대한 기계적인 진술로 특징지어지는 건조한 신문기사의 글쓰기도 아니고 또 사실의 전달 보다는 아름다움과 진실을 언어적으로 형상화하는 문학적 글쓰기도 아니라는 점에서 "지성적" 글쓰기라는 말을 견지하도록 하겠다.

이 글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첫 부분에서는 현재 간행되는 영국 시사잡지의 글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그들 잡지의 글쓰기의 "인문적" 특성, 그것이 우리 잡지의 현실에 비추어 가지는 선진성을 구체적으로 예시할 것이다. 두번째 부분에서는 이러한 선진성의 역사적 배경을 조명하기 위하여 잡지편집에 깊이 관여했었던 18-19세기의 문인들의 작업을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2. 지성적 글쓰기와 현대영국의 잡지: New Statesman Prospect의 경우

 

현재 영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사잡지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누구나 New Statesman, The Spectator, The Economist 세 가지를 꼽는다.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은 1828년 7월 5일에 첫 호를 낸 The Spectator이다. 창립자이자 초대 편집인인 Robert Stephen Rintoul은 1711-12년 Addison과 Steele이 간행했던 The Spectator를 본따서 새로운 잡지를 만들었는데, 열렬한 개혁가였던 그는 이 잡지를 통하여 1832년 제 3차 선거법개정을 이끌어 내는데 적지않은 공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The Bill, the whole Bill, and nothing but the Bill"이라는 유명한 구호는 Rintoul 자신이 만들어내어 The Spectator를 통해 전파시켰는데, 그 이후에도 Rintoul은 30년간 그 잡지를 맡아오면서 특정 정당에 연관되지 않고 독립적인 입장에서 개혁에 적대적인 세력들과 맞서 싸웠다고 한다. 1861년에는 Meredith Townsend가 Richard Holt Hutton이라는 비평가와 함께 공동편집인이 되면서, 자신은 정치분야를 Hutton에게 문학분야를 전담케하는 체제로 25년을 이끌어갔다. 1897년에는 Townsend의 자리를 John St Loe Strachey가 이어받았고, 이 세 사람의 편집인이 The Spectator를 영국의 대표적인 시사잡지, 정치적으로 가장 영향력있는 잡지로 키워냈다. 현재는 36,000부정도의 소박한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부수와 상관없는 영향력과 명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현재에도 50만부 이상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면서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거의 유일한 영국잡지로 The Economist가 있다. The Economist는 1843년 Walter Bagehot가 창간했고 그가 죽은 1877년까지 편집을 맡았다. 그 제목이 말해주듯 창립당시부터 지금까지 경제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잡지로서 주된 독자가 사업가들이지만 정치와 문학분야에 관한 글도 함께 다루어져 왔다. 다음으로는 이 두 잡지보다 역사는 짧지만 그 둘에 못지않게 영향력있는 New Statesman(1996년 New Statesman & Society에서 개칭)이 있다. 1913년 Fabian Socialist였던 Sidney and Beatrice Webb에 의해 창간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판매부수는 현재 26,000정도에 불과하지만 기사의 품격과 권위는 최고라고 할 만하다. 창립자가 사회주의자인 것에서 짐작되듯이 정치적인 노선은 정통적인 좌익이고, 전통적으로 노동당의 입장을 지지해왔다.

이러한 영국 시사잡지의 계보를 간략하게 살펴봐도 분명해지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당대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이다. The Spectator의 Rintoul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출판/언론 매체를 거치면서 당대의 "교육받는 개혁적 지식인(Educated Radical)"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인물로서 19세기 영국의 가장 큰 정치적 사건이었던 제 3차 선거법개정을 이끌어 낸 개혁가였고, The Economist의 Walter Bagehot 역시 19세기의 대표적인 "문필가(man of letters)"로서 Lord Bryce에 의해 "그 세대의 가장 창의적인 정신의 소유자"라고 칭송받을 만큼 뛰어난 지식인이었다. 19세기 중반의 영국에서는 "Economist"라는 말이 주로 Jeremy Bentham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나 Adam Smith, David Ricardo등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등과 연관되어 자유주의경제를 신봉하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지식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New Statesman의 Sidney Webb은 영국 노동운동의 이념적 토대라고 할 수 있는 Fabian Society의 창설자고 런던대학의 하나인 LSE(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창설멤버겸 행정학 교수였다. 이러한 설립자/초대 편집인의 경력은 이러한 잡지들이 어째서 현재까지 대표적인 시사잡지로 명성을 떨치는가를 말해준다. 이러한 잡지들은 단순히 당대의 여론을 이끌어온 정도가 아니라 역사의 고비마다 당시의 가장 높은 수준의 진보적 지식인의 목소리를 결집시킴으로서 그들 스스로가 역사적 발전에 핵심적인 실천을 해왔던 것이다. 비판적 지성과 진보적 실천은 영국 시사잡지의 자랑스러운 경력의 단적인 표현이며, 과거의 잡지편집인이나 주요 기고자들은 그들의 논설로 역사의 향방을 바꿀 만큼 영향력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비판적 지성과 진보적 실천의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그 두 가지는 결국 그들이 그때그때 주어진 정치, 경제, 문화적 과제에 대하여 써낸 글들의 정치적 효과와 역사적 의의를 뜻하는 것인데, 그것을 추상적인 논리로 일반화하거나 학문적인 원칙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비판적 지성이라는 것은 언제나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문제들에 대하여 대응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발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 영국의 잡지계에서 활약하는 비판적 지성의 한 예로 New Statesman의 Columnist인 John Pilger를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그에 대한 예비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Pilger의 최근 칼럼들을 읽었는데, 그는 국내외의 주요 현안들을 망라하는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루면서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지식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이는 현대 영국의 정치평론의 수준을 대표하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판단되었다.

지난 7월 24일자 New Statesman의 컬럼도 그 좋은 예이다. 이 글은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의 소위 인권외교라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 민주국가에게 "인권"은 가장 소중한 정치적 가치이다. 소련과 동구권을 무너뜨린 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대한 승리이지만 그들의 정치적 수사에서는 "인권"을 숭상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전체주의 독재에 대한 승리로 더 자주 묘사된다. 그 때문에 서방 선진국에서는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체코의 하벨 대통령,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가 "인권"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인 것이다. 만델라에 대한 영국인들의 "숭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가령 그가 27년만에 감옥에서 나오는 날, 영국의 TV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그가 위니 만델라와 함께 감옥에서 걸어나오는 광경을 위성으로 생중계했다. 만델라가 영국의 양식있는 지식인들에게 갖는 도덕적 권위는 아마 70년대 김지하나 김대중이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가졌던 권위를 능가할 정도일 것이다. Pilger의 이 기사는 서방 선진국들이 남아공에 대하여 취하고 있는 위선적인 정책을 가차없이 비판할 뿐만 아니라 만델라 자신의 직무유기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80회 생일을 맞은 만델라에게 클린턴은 존경어린 축하인사를 건네지만 바로 같은 날 남아공의 수출상품에 보복관세를 붙이는 법안에 서명하였으며, 블레어는 유럽연합의 수출장벽을 낮춰보려는 만델라의 노력은 가볍게 일축하고 그로 하여금 웨일즈의 초등학생들과 "반짝 반짝 작은 별"을 합창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야말로 미디아가 만델라에게 단골로 요구하는 역할이다. 미디아에게 만델라는 왕족같은 존재이며 다이아나를 능가하는 유명인사이다. 만델라가 어째서 자신의 도덕적 권위를 활용하여 자국민들에게 강요되는 경제적 차별주의에 소리높여 항의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러한 아첨꾼들의 농간에 놀아나거나 새로운 부유층 엘리뜨를 후원하는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만일 만델라가 자국에서는 보호정책을 견지하면서 나머지 나라에서는 "자유무역"을 요구하는 서방의 위선적 정책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면 그것은 남아공 국민들의 갈수록 절박해지는 (경제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인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This, of course, is the media's designated role for Mandela; he is royalty, a celebrity greater than Diana. It is Mandela's enduring enigma that he goes along with this, performing with the sychophantic and patronising a new, enriched elite rather than using his moral authority to speak out against the economic apartheid imposed on his people. A public blast by him at hypocritical policies that ensure protectionism in the west, while demanding "free trade" of the rest of the world would have not only served the increasingly desperate needs of his people; it would have spoken for the majority of humanity.

 

Pilger의 이러한 만델라 비판은 단지 그의 일시적인 "실수"를 지적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만델라를 중심으로하는 ANC가 백인정부를 타도하고 차별주의를 종식시키고 난 후에 취한 일련의 경제재건 정책들이 어째서 백인들의 경제정책의 답습이요 흑인민중들에 대한 배신인가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따지는 것이다. 투쟁의 과정에서 늘 동지였던 남아공 노동조합총회와 남아공 공산당으로부터의 비판을 만델라가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역설하면서 결국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결론짓는다. Pilger가 칼럼을 끝맺으며 인용하는 Shelley의 "혼돈의 가면극(The Mask of Anarchy)"의 한 구절은 그의 비판이 얼마나 근본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 학살극은 영감처럼 뿜어나와

온 나라에 보이리라.

웅변처럼, 신탁의 목소리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활화산처럼.

 

And that slaughter to the Nation

Shall steam up like inspiration,

Eloquent, oracular

A volcano heard afar.

 

Pilger의 이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당연하지만 흔하지않은 치열한 비판정신이다. 언론의 사회적 책무는 무엇보다도 잘못된 정책이나 사회적 행태를 정직하게 비판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나 정직하고 공평무사한 비판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민주국가라고는 하나 얼마 전 까지만 해도 IRA의 지도자를 TV에 비추는 것도, 목소리를 내보내는 것도 절대적인 금기였다. 왕실과 관련해서도 보도제한은 의외로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영국과 같은 상황에서 정부로부터의 압력보다 더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사회적 정의와는 별 상관이 없는 대중적 정서 그리고 그에 영합하고자 하는 상업주의적 출판자본으로부터의 압력일 것이다. "팔리는" 글을 실어야 한다는 것은 모든 잡지 필자들의 공통된 강박관념일텐데 Pilger가 이 글에서 보여주는 비판정신은 그러한 압력으로부터 자유롭다. 영국의 대중들이 아무리 만델라를 좋아한다해도, 만델라가 집권하는 것이 영국의 대외관계에 아무리 중요하다해도, 개인적으로 만델라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Pilger에게 더 중요한 것은 만델라가 감옥에서 투쟁하던 시절 남아공의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정의로운 경제정책을 실현하는 것이며, 이에 어긋난다면 만델라가 이룩한 그 모든 정치적 업적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우리도 오랜 정치적 핍박끝에 집권에 성공한 정치지도자를 가지고 있다. 아직 정권의 초기이고, IMF체제라는 이례적인 위기상황이기는 하나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지 반년 이상이 지났지만 그의 정책들에 대하여 이와같은 밀도의 비판이 우리 잡지에 실린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때그때 개혁정책이 취해질 때마다 국지적인 반론은 간간히 제기되어왔지만, 우리의 수많은 칼럼니스트중 어느 누구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다소 과장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우리 잡지의 비판은 "신념"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정치"에 입각해있다고 말하고 싶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비판의 대상과 강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태도는 일견 책임있는 언론인의 도리라 할 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이미 언론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정치이며, 김대중 정부에 대한 본격적 비판의 부재는 우리 시사잡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명백한 표지판이다. Pilger에게 원칙에 입각한 비판정신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국민 모두가 이미 알고있는 식상한 정치해설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다른 점이다.

Pilger의 이 글이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은 그것이 진정으로 세계적인 관점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언론은 일반적으로 우리 언론보다 훨씬 시야가 넓다. 외국의 소식도 중요한 것은 외신 인용이 아니라 직접취재에 의한 독자적인 보도가 많다. Pilger는 남아공의 문제를 직접 취재하여 그 1차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이 칼럼을 썼으며, 그것을 남아공 만의 문제로 국한시킨 것이 아니라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남북문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결시켜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과 남아공의 문제는 선진 서방국가들과 제3세계 국가들과의 관계의 축도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만델라의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구호로만 외치는 "세계화"의 실제적인 장점이 무엇인가를 예증한다. 우리 잡지에 이러한 범지구적 관점을 가진 칼럼이 실리는가? 우리의 시사잡지가 한국의 정치판 말고 다른 나라의 정치경제적 문제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본 일이 있는가? 그런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나라들의 사정에 대하여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만한 지식과 역량이 있는가? 우리에게 외신을 인용하지 않는 순수한 외국뉴스가 존재하기나 하는가? 우리 사회에 미국과 일본이 아닌 외국에 관한 약간의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그 나라와 장사하기 위한 정보일 뿐, 그 나라의 문제를 세계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지적 자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즈음 외환위기의 조기경보에 실패한 우리의 경제학자들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드높지만, 사실 시선을 "국내정치"에만 고정시키고 있는 우리 잡지의 기사들도 그 책임이 없지않다. 일간지와는 달리 좀더 거시적인 국제적 관점이야말로 잡지들이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Pilger의 비판정신과 세계적 관점은 이 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한 프랑스 학자의 언론관련저서를 인용하며 영국언론의 교묘한 이데올로기조작을 비판한 8월 9일자 칼럼도 그 비판의 깊이와 강도에 있어 앞의 글에 못지않다. 이 글에서는 영국의 Channel 4가 "균형론"을 내세우며 환경운동에 대한 일각의 비판을 그대로 방송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그것이 사실은 기업이익집단의 이해관계에 은밀하게 영합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50년대 미국에서의 맥카시즘선풍도 사실을 대공황의 여파로 미국사회가 좌경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미국 대기업들의 캠페인이었음을 지적하면서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은밀하고도 완강하게 작용하는가를 예시한다. Channel 4의 그와같은 얄팍한 균형론은 사실상 우경화한 블레어정부의 더 심각한 실정에 대한 보도를 "생략"함으로써 영국내의 다국적 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인용했던 이른바 "생략에 의한 검열"은 이미 영국의 언론에 의해 실행되고 있으며, Channel 4의 "균형론"은 바로 그 증상이라는 것이 이 칼럼의 논지이다.

이 글에서 다시 확인되는 것은 날카로운 비판정신과 범세계적 시각 뿐만 아니라 정기간행물의 칼럼을 일간지의 기사와 구분해주는 심층적인 분석의 정신이다. 하나의 문제에 대하여 당면한 상황 안에서의 미시적인 분석뿐만 아니라 더 큰 역사적 맥락, 더 큰 사회정치적 맥락에서의 의미를 파헤치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칼럼니스트의 역량이겠지만, 이 글이 보여주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학구적/탐구적 글쓰기의 정신이다. 이 글은 표면적으로 한 연구서에 대한 서평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칼럼의 주된 관심은 물론 영국 TV와 자본의 밀월관계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이 "생략에 의한 검열"이라는 이 저서의 중심테제에 의해 얼마나 적절하게 매개되어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오도된 영국TV의 균형론에 의해 얼마나 잘 예증되는가. 문학평론의 글쓰기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문학 Text를 여러 가지 다른 맥락에서 정확하고도 풍성하게 읽어내는 것이다. 이 칼럼에서는 그의 글쓰기가 잘 훈련된 문학 학자/평론가의 글쓰기와 기본적으로 동질적인 것임이 잘 드러난다.

다이아나의 1주기를 맞아 쓴 최근의 또 다른 칼럼에서는 "부유하고, 한가하며, 버릇없고 자기중심적인 젊은 여인"에 불과한 다이아나를 핍박받는 현대여성의 전형으로 영웅시하는 영국여권론자들의 몰지각성을 따갑게 지적한다. 일반 대중의 정서를 고려할 때 그녀에 대한 이런 냉정한 평가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며, 진보적 "남성" 지식인이 여권론에 그런 식으로 도전한다는 것이 흔히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도전과 비판이 유효하게 들리는 것은 그것이 단지 다소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도발적인 주장을 담고있기 때문이 아니라, 페미니즘의 대의도 인류 전체의 운명을 염두에 두는 보다 큰 역사적 대의에 의해 포섭되지 않으면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것, 가령 제3 세계의 여인들이 매일 같이 겪고있는 고난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알고도 침묵하면서 다이아나를 그토록 열심히 추모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인간해방적 대의를 배반하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 역시 앞서 말한 "생략에 의한 검열"이 행사된 언론의 왜곡이라는 것 등 Pilger의 확고하고도 일관된 원칙적 판단에 입각해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Pilger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 그의 글들을 무작위적으로 선택하여 영국 잡지의 "지성적 글쓰기"의 한 모범으로 제시했다. 그렇다고 영국잡지의 모든 글들이 그러한 글쓰기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영국에서도 100만부 이상씩 팔린다는 대중적 잡지들, 가령, Him Magazine이나 Take a Break같은 잡지에 그런 글쓰기가 실행되고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다만, 소수의 고급 시사지에서는 필자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도 어렵지않게 그런 정도의 글들을 찾아낼 수 있고, 그것이 상업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 만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여전히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과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사후에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John Pilger는 1939년생의 호주출신 기자로 영국의 Daily Mirror에서 24년간 기자로 일했고, 그 기간에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종군기자를 지냈으며 1991년부터 New Statesman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는 베테랑 기자다. Glasgow에 서 언론을 강의하는 Ken Garner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보수적인 정객에게는 골칫거리로, 젊은 취재기사들 사이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원로 기자라고 한다. 현재 영국의 언론계에서도 이런 수준의 기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인데, IRA로 부당하게 몰린 피의자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석방시킨 Chris Mullin, 영국의 "비밀결사"라는 다큐멘타리로 보수당정부의 탄압을 받았던 Douglas Campbell, 영국의 가난과 범죄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로 충격을 던진 Nick Davis 정도를 Pilger 수준의 기자로 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명망있는 잡지의 대기자의 칼럼말고 다른 것은 어떠한가? 그것은 한국 잡지의 기사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비될 수 있을까? 1995년에 창간되어 노동당 정권하에서 한창 성가를 올리고 정치교양잡지 Prospect는 이런 점에서 참고가 될 만하다. 필자가 입수하여 훑어본 바로는 이 잡지에 실린 에세이와 논쟁, 시론들도 상당한 인문적 교양에 입각한 글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필자에게 흥미로왔던 것은 필자와 같은 영문과 교수들을 주로 염두에 두고 쓴 "학계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What is academia for)?"라는 기사였다. 이것은 최근 우리의 교육개혁의 맥락에서도 계몽적인 의의가 있는 글일 뿐만 아니라 신동아 최근호에 실린 "IMF시대 한국지식인의 자기고백: 지식인 너희 죄를 묻는다"라는 기사와 기본적으로 같은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특히 흥미로왔다.

과연 우리 시사잡지는 한국의 지식인집단을 얼마나 제대로 비판할 수 있는가? 신동아기사의 출발점은 아주 명확하다. 흔히 6.25이래 최대의 국난이라는 외환위기가 어느날 갑자기 닥쳐왔는데 이땅의 지식인들, 특히 대학에서 경제학이나 사회학을 공부한다는 교수들은 그것 하나 예측하지 못하고 무엇을 하고있었느냐는 것이다. 그들의 학문탐구가 그토록 현실에서 무용한 것이라면 그야말로 "학계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학문이라면 본래부터 쓸모없는 것이거나 아니면 학문하는 자의 직무유기가 아니겠는가. 상식적이지만 이해할 만한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 기사의 출발점이며, 또 동시에 결론을 규정한다. 오늘날 이런 사태를 맞이한 것은 교수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않고 정치권에만 기웃거린 탓이며, 따라서 교수들이 한눈팔지말고 자기 본분에 좀더 충실해야 한다는 "직무유기론"이 이 글의 논지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인용한 유일한 "학문적" 저서인 어떤 교수의 "교수유형론"은 이러한 논지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기사의 내용은 그 선정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새롭게 알려주는 바가 전혀 없다. 문제의 원인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기자에게 없었을 뿐만 아니라, 취재의 결과(설문지조사도 취재라면)를 자기 나름으로 읽어내는 해석능력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만이 분명해질 뿐이다. 이 기사가 하고있는 일이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대답을 유도하는 설문을 몇몇 교수들에게 제시하고, 그 결과를 기계적으로 편집하여 제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글쓰기에 대한 이해가 어떠한 것인지는 이 기사의 형식에서 이미 잘 드러난다. 이 기사의 의의가 무엇인가? 대학교수들 정신차리라는 식의 단순한 대중적 분노를 조야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그러한 사회의 질책을 교수들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식으로 몰고감으로써 이번 사태에 대하여 그들이 져야할 진정한 책임을 은폐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기사가 과연 교수들 자신의 심각한 반성을 불러일으킨다고 보는가. 이 기사에 외환위기를 조기경보하지 못한 원인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가. 여기에는 너무나 익히 들어온 교수들의 직무태만에 대한 상투적인 판단이 교수들의 "자술서"라는 형식으로 안일하게 재생산되고 있을 뿐이며, 이러한 기사는 최근 교육부의 강압적인 교육개혁에 바람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지성적 판단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와 비슷한 취지로 쓰여진 Prospect의 기사는 정확하게 신동아 기사가 멈춰선 지점에서 출발한다. 신동아기사가 교수들이 본분으로 매진한다는 전공공부의 "내용"을 따지는 일을 겸손하게 포기하고 시종일관 대국적인 책임만을 거론했다면, Prospect의 기사는 교수들의 소위 "전문성", 그리고 그 "전문성"이 불가피하게 요구한다는 "난해성" 자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작년 미국에서 있었던 "Sokal scandal"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Alan Sokal은 최근에 횡행하고 있는 미국 탈구조주의 이론가들이 사용하는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언어가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폭로하기 위하여 자신의 과학적 지식을 아무렇게나 조합하여 "Transgressing the Boundaries: Toward a transformative hermeneutics of quantum gravity"라는 그럴듯한 제목으로 Social Text라는 인문사회분야의 대표적 잡지에 투고했다. 그것이 엉터리임을 알아볼 만한 안목이 없었던 편집자는 그것을 그대로 출판함으로써 미국의 일류 문학이론가들의 학문적 사기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 기사는 현대 인문학의 "전문성"과 "난해성"은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는 논지를 전개한다. 인문학자들은 그들의 학문의 실용성에 대한 사회의 요구를 "학문은 스스로를 정당화한다"는 고압적인 자세로 일축할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받아들여서 자기 학문의 존재의의에 대해 좀더 근본적으로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의 필자는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평이하고 명쾌한 스타일을 채용하면서도 매우 "전문적인" 인문적 식견을 동원하여 이러한 주장을 제시한다. 니이체와 몽떼뉴는 그들이 대단히 심오한 학문을 하면서도, 그들의 학문적 목적이 삶에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오늘날의 학자들을 그들의 학문의 현실적 의의는 묻지 않고 남의 글을 끌어다 대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계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학술연구가 편협한 것으로 간주된다면, 그것은 학자들이 죽은지 오래된 저자들의 텍스트를 엄청나게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당대에 그 저자들 자신이 씨름했던 주제들과는 상관도 없이 말이다. 영문과에서는, 키이츠가 사랑을 어떻게 했는지를 배우지만 그렇다고 키이츠를 통하여 사랑을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고전학과에서는 탐욕에 대한 에피큐러스의 생각은 공부해도 그를 통해 탐욕을 이해하려 하지는 않는다. 키이츠가 정확히 무슨 뜻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를 알아내고, 에피큐러스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를 발견하는 데에만 초점이 가있다. 그러한 말이나 뜻 자체가 궁극적으로는 매우 우둔하거나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말이다. 이것은 인용의 문화이다....성공적인 지적 탐구는 언제나 불경이라는 지적 도박을 요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재미있는 것은 그가 그 이전에 축적되어 있었던 지식의 대부분을 스스로 회의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회의는 플라톤이나 헤라클리투스를 읽지 않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강점을 알고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들의 약점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진정으로 아리스토텔레스적 정신으로 행동하는 것은...그와 지적으로 동조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If much academic work in the humanities is regarded as parochial, it is also because of the enormous respect academics have for the texts of long dead authors, as opposed to the themes with which these authors were themselves concerned. In an English department, you study what Keats thought of love, you do not try to understand love via Keats. In a classics department, you study Epicurus's thoughts on greed, not greed via Epicurus. The emphasis is on recovering exactly what Epicurus said, trying to understand precisely what Keats meant--with no thought that this might ultimately be quite dull or mistaken. It is a culture of quotation. ...Successful intellectual inquiry always requires an intelligent gamble with irreverence: what made Aristotle interesting was that he himself doubted much of the knowledge that had been built up earlier--not by refusing to read Plato or taking a look at Heraclitus, but by mounting a critique of their weaknesses premised on a knowledge and appreciation of their strengths. To act in a truly Aristotalian apirit...meant coming to intelligent disagreements with him.

 

인문학자들이란 "전문성"과 "난해성"의 이름으로 학문의 진정 존재의의를 외면하면서 실제로는 학계라는 제도적 테두리안에서 고전 작가들이나 안일하게 인용하며 지적 게임이나 자기방어에만 몰두해 온 것은 아니냐는 그의 비판은 비단 영국과 미국의 교수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그들의 "전문성"에도 이르지 못하는 교수들이 더 많은 한국의 학계에서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신동아의 "직무유기론"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유효한 비판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신동아의 글은 학자들이 “무슨” 공부를 하는지, 또는 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았고, Prospect의 글은 바로 그것을 문제삼았다. 전자는 통념을 재생산했고, 후자는 통념에 도전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비판적 지성이 있는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신동아기사는 "기자"가 썼고, Prospect의 기사는 학술적 훈련을 받은 "연구원"이 썼으니 그러한 차이는 당연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기자가 스스로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기자와 "전문가"를 구분함으로써 스스로의 영역을 축소하는 것, 기자를 남의 말을 전하는 일종의 "기능인"으로 평가절하 하는 것, 스스로 인문적 지식인이 되기를 포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잡지의 지성적 빈곤을 자초하는 것 아니겠는가.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몸'은 빌릴 수 없다며 열심히 조깅을 하던 사람이 외환위기를 불러온 것이 아니었던가.

 

 

3. 영국잡지와 문학적 전통

 

오늘날의 영국잡지는 3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가장 훌륭하게 채워넣은 것은 영국의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소위 '문필가(Man of Letters)'라고 불리는 문학적 교양인이었다. 앞서 언급한 영국 최초의 잡지 A Review의 편집인은 "로빈슨 크루소"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Daniel Defoe였다. 그는 소설가로서 보다는 "영국 잡지의 아버지"로 더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주 3회 간행하던 A Review의 지면을 9년 동안이나 혼자서 메워갔다. 영국에는 이러한 정기간행물이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정치논설의 전통이 있었는데 이것은 주로 "소책자(Pamphlet)"의 형태로 출판되었다. 언론자유에 대한 기념비적 문서인 "실락원"의 시인 John Milton의 Areopagitica도 "소책자" 였고 19세기에 들어와 잡지가 대량유통되기 이전에는 "소책자"가 정치적 논쟁의 주된 매체였다. Defoe도 잡지를 만들기 이전에 이미 휘그의 입장에서 토리의 비국교도 탄압을 풍자한 "The Shortest Way with Dissenters"(1702)라는 소책자를 써서 집권세력의 맹렬한 분노를 샀고, 결국 체포되어 상당기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에게 동정적이었던 온건한 토리당 정객 Robert Harley의 도움으로 겨우 옥살이를 면하고 언론인으로서의 경력을 쌓아나갈 수 있었다. Defoe가 소설가가 된 것은 그의 나이 60세때 였고 그의 주된 활동은 잡지편집자/ 정치평론가였다.

Defoe와 함께 18세기 영국소설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작가 Henry Fielding 역시 Defoe 못지 않은 잡지편집인 겸 기고가였다. 풍자작가 Jonathan Swift가 창간한 Craftman의 필자였으며 스스로 Champion, A True Patriot 등 잡지를 창간하여 편집하기도 하였다.

이 당시의 대표적 문인 겸 잡지편집인/ 기고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18세기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최초의 현대적 문학평론가인 Samuel Johnson이 있다. 그는 또 최초의 영어사전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잡지(Magazine)"라는 용어를 최초로 도입한 Edward Cave의 Gentleman's Magazine의 기고자로서 언론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하여 1750년에는 The Rambler라는 자신의 잡지를 시작했다. 잡지의 편집인 겸 필자로서 Johnson이 가지고 있던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잡지의 필자는 교양있는 문인으로서 뉴스나 전하는 "기자"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신문기자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뉴스를 쓰는 자들은 덕목이라고는 없는 자들로서 스스로의 이익을 위하여 거침없이 거짓말을 써댄다. 이런 글들을 쓰는데는 재능도, 지식도, 근면도, 활기도 필요없다. 그 대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부끄러움에 대한 경멸, 진실에 대한 무관심이다.

 

A news-writer is a man without virtue who writes lies at home for his own benefit. To these compositions is required neither genius nor knowledge, neither industry nor sprightliness, but contempt of shame, indifference to truth are absolutely necessary.

 

18세기를 대표하는 문인의 이러한 언급은 당시의 맥락에서 잡지필자와 신문기자의 사회적 위상이 어떻게 달랐는가를 짐작케 한다. 잡지의 필자는 그 시대의 정치와 문화를 선도하는 교양있는 지식인이며, 신문기자는 한갖 글쟁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영국잡지의 이러한 문학적 전통 때문에 당대의 문인들은 잡지나 소책자의 글쓰기를 문학의 본령은 아니라 하더라도 언제라도 넘나들수 있는 직업적 영역의 일부로 간주했다. "무지개"로 유명한 낭만주의 시인 William Wordsworth도 사실은 잡지편집인을 꿈꾸었었다. 그는1793년 최초의 시집을 간행한 직후에 프랑스혁명에 대한 자신의 열렬한 지지와 공화주의적 신념을 피력한 소책자 "랜다프주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익명으로 썼던 적이 있었다. 당시 영국 정부의 탄압정책은 그것의 출판을 막았지만 Wordsworth는 그 이후에도 Mathews라는 친구와 함께 "자선가(Philanthropist)"라는 잡지의 창간을 계획한다. 그것을 논의하는 편지에서 개혁가겸 잡지편집자로서 자신의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대중들이 암흑속에 걷고있음을 나는 알고있다. 나는 그들 하나 하나에게 그들을 인도해 줄 등불을 건네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다시는 순식간에 꺼져버리는 번개불빛이나 금새 스러지는 별똥별의 번뜩임으로 길을 밝히며 여행을 나서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I know that the multitude walk in darkness. I would put into each man's hand a lantern to guide him and not have him to set out upon his journey depending for illumination on abortive flashes of lightening, or the coruscations of transitory meteors.

 

Wordsworth의 이러한 포부는 끝내 실현되지 못했지만 대중을 계도하겠다는 개혁가로서의 신념은 그의 문학적 기획, 즉 민중의 고통에 주목하고, 그들의 감수성에 호소하며, 그들의 언어로 가장 철학적인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적 시론으로 열매를 맺는다. 이러한 Wordsworth의 행적이 시사하는 것은 당시에는 잡지의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가 범주적으로 구별되지 않았으며, 그만큼 잡지의 글쓰기의 사회적 위상과 영향력이 컸다는 것이다.

Wordsworth가 잡지편집자를 꿈꾸며 낭만주의시인으로 자라나고있을 때인 1790년대는 오늘날 잡지의 정치논설의 원형인 소책자의 전성시대였다.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영국은 혁명의 열기로 들떠있었고, 보수세력과 개혁세력간에는 이른바 "소책자 전쟁(Pamphlet War)"가 벌어지고 있었다. 근대사회의 태동기에 벌어진 이 이념논쟁은 그 유명한 Edmund Burke와 Thomas Paine간의 논쟁으로 촉발되었는데, 이것은 영국의 문학비평가 Terry Eagleton이 서구의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의미있는 정치논쟁이라고 일컬을 만큼 유명한 사건이었다. Burke의 The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봉건지주계급의 가장 강력한 비판이었고, 이에 대항한 Thomas Paine의 The Rights of Man은 개혁세력의 가장 효과적인 반론이었는데, 정치논설의 문학적 성격이라는 관점에서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이념적 노선의 대립이 단순히 정치적 주장의 대립 뿐만이 아니라 문학적 수사의 대결로 드러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가령 Burke의 다음과 같은 대목은 그 이념적 내용보다도 아름다운 문학적 수사로 인해 Burke 산문의 백미로 꼽힌다.

 

내가 당시엔 왕세자비셨던 프랑스 왕비를 베르사이유에서 알현한지 벌써 16-7년이나 되었다. 왕비께서는 내게 거의 눈길을 주시지 않았지만, 나는 그분보다 더 보기좋은 모습을 내 눈에 담아본 적이 없었다. 그분이 내 눈에 들어와 맺혀서 그것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즐겁게 하는 동안 나는 그분을 내 눈 바로 위에서 뵌 것이다. 활기와 광채, 즐거움으로 가득찬 새벽별처럼 빛나는 그 분의 모습을. 아, 혁명이라니! 그렇게 고양되고, 그렇게 스러지는 것을 이처럼 담담하게 되새기게 되는 나는 얼마나 인정없는 인간인가.명예를 아는 남자들과 기사들의 나라에서 그분에게 그런 재앙이 덮쳐오는 것을 살아남아 보게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분을 모욕하는 무서운 시선을 한번 던지기만 하더라도 그 원수를 갚기위해 수만의 칼들이 칼집에서 뽑혔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기사도의 시대는 갔다. 그리고 궤변가와 경제학자와 계산 잘하는 자들의 세상이 왔다. 유럽의 영광은 영원히 사라졌다.

 

It is now sixteen or seventeen years since I saw the queen of France, then the dauphiness, at Versailles; and surely never lighted on this orb, which she hardly seemed to touch, a more delightful vision. I saw her just above the horizon, decorating and cheering the elevated sphere she just began to move in, --glittering like the morning-star, full of life, and splendor, and joy. Oh! What a revolution! And what a heart must I have, to contemplate without emotion that elevation and that fall! Little did I dream that I should have lived to see such disasters fallen upon her in a nation of gallant men in a nation of men of honour and of cavaliers. I thought ten thousand swords must have leaped from their scabbards to avenge even a look that threatened her with insult. But the age of chivalry is gone. That of sophisters, oeconomists, and calculators, has succeeded; and the glory of Europe is extinguished for ever..(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Penguin, 1969, 169-170)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의 모습을 로망스의 여주인공처럼 봉건적인 가치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존재로 이상화하고, 혁명세력을 주인공을 납치하는 괴물 같은 존재로 형상화함으로써, 혁명의 부도덕성과 파괴성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Burke의 이러한 문학적 수사는 당시에 실제로 수많은 일시적 동조자들의 마음을 되돌려 놓았을 만큼 효과적이었다. 혁명이 파괴하려는 아름다운 왕비는 완벽하게 조화된 자연적 질서의 표현이었고, 따라서 혁명은 자연법칙을 파괴하고 혼돈과 무질서를 가져올 뿐이라는 Burke의 보수적 주장은 직설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왕비의 부당한 죽음을 비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문학적 수사에 대항하는 것은 날카로운 비평가의 눈을 가진 Paine의 냉소적인 분석이다.

 

우리에게 읽어보고 믿으라는 어떤 출판물에서 "기사도의 시대는 갔다," "유럽의 영광은 영원히 사라졌다"며 연극적으로 개탄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돈끼호테의 엉터리 기사도 시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을 때, 어찌 우리가 그런 사람의 판단에서 (사리에 맞는) 의견을 기대할 수 있으랴? 그가 제시하는 사실들을 어떻게 존중할 수 있으랴? 그는 자신의 상상력의 광시곡안에서 풍차의 세계를 발견했고, 그의 슬픔이란 그 풍차를 공격할 끼호테가 없기 때문에 생겨났다니. 만일 기사도의 시대처럼 귀족의 시대가 간다면(그 둘은 원래 서로 연관이 있었다), 구질서의 수호자 버크씨는 그의 기사도 풍자를 끝까지 밀고나간 다음 이렇게 외치며 마무리할지도 모르겠다. "오델로의 임기가 끝나고 말았도다! 그의 책에는 어디를 둘러봐도 가장 비참한 감옥에서 절망속에 고난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 한차례의 동정어린 시선도, 단 한차례의 동정어린 생각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깃털을 동정한다, 하지만, 죽어가는 새는 잊고 있다.

 

When we see a man dramatically lamenting in a publication intended to be believed, that, 'The age of chivalry is gone!' that 'The glory of Europe is extinguished for ever!' and all this because the Quixote age of chivalry nonsense is gone, what opinion can we form of his judgement, or what regard can we pay to his facts? In the rhapsody of his imagination, he had discovered a world of windmills, and his sorrows are, that there are no Quixotes to attack them. But if the age of aristocracy, like that of chivalry, should fall, (and they had originally some connection), Mr Burke, the trumpeter of the Order, may continue his parody to the end, and finish with exclaiming, 'Othello's occupation's gone!Not one glance of compassion, not one commiserating reflection, that I can find throughout his book, has he bestowed on those who lingered out the most wretched of lives, a life without hope, in the most miserable of prisons.He pities the plumage, but forgets the dying bird. ("The Rights of Man", in The Thomas Paine Reader, Penguin, 1987, 211-213)

 

Paine이 Burke의 강력한 문학적 수사에 대항하는 방법은 Burke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사용한 권선징악적이고 중세적인 로망스의 구도를 돈끼호테라는 로망스의 패로디의 구도로 슬쩍 바꾸어 놓음으로써 Burke의 감상적인 호소를 단숨에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Burke 자신을 시대착오적인 돈끼호테적 인물로 동일시하면서 그의 주장의 신뢰성을 근원적으로 제거해 버렸다. Burke의 극적 호소를 떠받치던 로망스의 구도는 오히려 그의 주장을 오도된 감상주의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Paine은 거기에 더하여 Burke 못지않는 유려하고 생동감있는 산문 속에서 핵심을 찌르는 은유(mataphor)로 Burke의 동정심의 부조리성을 독자의 마음에 강력하게 각인하고 있다. "그는 깃털을 동정한다, 하지만, 죽어가는 새는 잊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것이 학자들끼리의 한가한 갑론을박이 아니라 혁명의 전야에 자신이 속한 체제의 운명을 놓고 벌인 절박한 정치논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도의 문학적 수사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Paine은 Burke와 같은 대정치가도 문필가도 아니고, 독학으로 입신한 전형적인 언론인이었다. 그는 정규교육을 거의 못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학적 교양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단 하나의 소책자(Common Sense, 1776)로 미국독립전쟁의 불을 당겼고, 여기에 인용한 또 다른 한편의 글(The Rights of Man)로 온 영국을 혁명적 분위기로 몰아 넣은 것이다.

현대 영국잡지의 "지성적" 글쓰기는 이처럼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또 영국에서조차 실제 정치현실에서 예전만한 명성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앞서 인용한 고급 시사잡지의 판매부수가 The Radio Times 같은 잡지의 5% 에도 미달한다는 것은 현대의 시사잡지 편집자들은 200년전과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모국어로 신문과 잡지를 찍어낸지 100년 남짓밖에 않되는 우리에게는 그러한 글쓰기가 아직도 존재하고, 그러한 글을 읽고, 사회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선진국의 예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비록 단절된 것이기는 하나 오랜 인문적 전통이 있고, 누구에 못지않은 문학적 유산이 있으며, 경륜있는 지식인들이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 나름의 "지성적 글쓰기"가 생각보다 쉽게 보편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잡지에 나가는 한 편의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예전 문필가들의 야심과 자신감, 그리고 지식인으로서의 역사적 책임감을 되찾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제일 필요한 일이 아닐까.

 

 

 

참 고 문 헌

 

*현재 영국 잡지계의 현황을 파악하는데 Glasgow Caledonian University의 언론학과 교수 Dr Ken Garner의 상세한 조언이 큰 도움을 주었음.

 

New Statesman, July 24, 1998; August 7,1998

Prospect, August/September 1998

신동아 9월호

 

Brake, Laurel, and Aled Jones and Lionel Madden, eds., Investigating Victorian Journalism, Macmillan,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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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ffiths, Dennis, ed., The Encyclopedia of the British Press 1422-1992, St. Martin's Press,1992.

 

Gross, John, The Rise and Fall of the Man of Letters, Penguin, 1969.

 

Herd, Harold, The March of Journalism: The story of the British Press from 1622 to the Present Day, George Allen & Unwin Ltd,1952.

 

Sullivan, Alvin, ed., British Literary Magazines, 4 vols, Greenwood Press, 1983.

 

부록

 

 

John Pilger

New Statesman; London; Jul 24, 1998

 

Abstract:

South African Pres Nelson Mandela received 80th birthday greetings from world leaders like Pres Clinton and Prime Minister Blair. Their honeyed words belied the economic apartheid the West is imposing on South Africa.

 

 

Johannesburg

 

When Nelson Mandela celebrated his 80th birthday he received greetings from the voices of hypocrisy. "Many affectionate wishes to you, Mr President," wrote Bill Clinton on the same day that his administration penalised a range of South African imports with a special duty. This will remain in force until the US drugs industry is allowed its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in South Africa - that is, the right to dominate the local market and deny affordable medicines to the poorest.

 

"Dear Nelson," wrote Tony Blair. "Many happy returns and congratulations. It was a pleasure to see you in Cardiff recently." When Mandela visited Cardiff last month, his mission was to remind the European Union that its leaders had pledged to allow South African products "concessionary access" to the great cartel's market. This, it was said, would assist South Africa's emergence from the long night of apartheid.

 

Blair, as Prime Minister of the government holding the presidency of the EU, told Mandela, in so many words, to jump in the wine lake. Murmuring his disappointment, Mandela chose not to embarrass his host; and the betrayal was immersed in unctuous news images of the great man leading Welsh schoolchildren in "Twinkle Twinkle Little Star".

 

This, of course, is the media's designated role for Mandela; he is royalty, a celebrity greater than Diana. It is Mandela's enduring enigma that he goes along with this, performing with the sycophantic and patronising a new, enriched elite rather than using his moral authority to speak out against the economic apartheid imposed on his people. A Public blast by him at hypocritical policies that ensure protectionism in the west, while demanding "free trade" of the rest of the world would have not only served the increasingly desperate needs of his people; it would have spoken for the majority of humanity.

 

Global apartheid is the system under which most people now live. Eighty per cent of the world's population have access to less than 20 per cent of its resources, while the west controls more than 70 per cent of all wealth and resources. This almost exactly reflects the distortion in South Africa, the result of apartheid. Patterns of business investment also follow the South African model. Less than 20 per cent of direct foreign investment ends up in the third world, while the majority remains in the west; western Europe draws 60 times a head more in foreign investment than Africa. In economic and class terms, the parallel is that of white supremacist South Africa and its colonies, the "homelands".

 

"We will reintroduce the market," Mandela reassured American bankers prior to his election, while at home he promised the majority of his people a New Deal, based on the ANC's Freedom Charter. This was an article of faith, which Mandela called "the fundamental policy of the ANC, and it is inconceivable we will ever change it". Without consulting the electorate, the ANC replaced this with a policy known by its acronym, Gear("growth, employment and redistribution"). It is orthodox monetarism offering nothing to the majority other than the theory of "trickle-down".

 

Now the gloss has worn off. "Social delivery", as they say here, has effectively stopped. The late Joe Slovo's housing programme is moribund, leaving more than a third of the population without a secure roof over their heads and whole communities in jerry-built matchboxes. Land restitution is virtually non-existent, with the majority of arable land in the hands of white farmers whose existing property rights are protected in the constitution. Not even the vast areas of state land, much of it controlled by the military, have been opened up to African farmers.

 

Water supply, one of the government's successes, is to be subjected to creeping privatisation under a bill published last week and hailed by the water resources minister Kadar Asmal as a "showcase of participative formulation". Shell, the rapacious oil company, is running the water ministry's "information campaign", which the minister describes proudly as "a South African first". This cosiness with, and dependence on, international business, including firms that profited during the apartheid era, stems partly from the ANC government's selfinflicted penury. Almost a quarter of the national budget goes on paying the interest on the apartheid debt, which paid for the "homelands", the war in Angola and busting UN sanctions.

 

The implication of these policies, which allow the haemorrhage of 100,000 jobs a year, was spelt out in a recent report by the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Based on an official study by the National Institute for Economic Policy in Johannesburg, it says monetary policy has not changed since the apartheid era; that the policy of Gear is little better than an IMF structural adjustment programme; that "trickle-down" is entirely inappropriate for South Africa; and the reduction of poverty and the creation of labour-intensive production ought to be at the heart of government planning.

 

Mandela's silence at Cardiff does not extend to the ANC's restless allies, the Congress of South African Trade Unions and the South African Communist Party, which oppose the government's monetarism. Wagging his finger from the platform of the recent SACP Congress, Mandela and his successor, Thabo Mbeki, sought to blunt a growing opposition from within the tripartite alliance. Soon after they spoke, delegates were treated to the spectacle of security guards hired by the ANC-run Johannesburg Council removing homeless squatters from nearby state land. Nothing had changed.

 

In the Eastern Cape, the poorest province, support for the ANC has fallen from 77 to 57 per cent. In Gauteng, which includes the great industrial belt of Johannesburg, it is less than 50 per cent. The ANC will undoubtedly win next year's election. After that,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new generation in the SACP and in the biggest unions, such as the chemical workers, will break away and form a new party. South Africa remains an unusually politicised nation. That is the hope. As Shelley wrote in "The Mask of Anarchy": And that slaughter to the nation

Shall steam up like inspiration,

Eloquent, oracular

A volcano heard afar.

 

John Pilger

New Statesman; London; Aug 7, 1998; John Pilger;

 

While Monica Lewinsky and other circuses occupy precious time and space in the news, an invisible censorship becomes entrenched. This is seldom discussed in this country because it is censorship by omission, the most virulent form. In France, the same taboo has become a j'accuse against journalism by Pierre Bourdieu, a professor at the College de France, whose lectures have become a best-selling book, On Television and, Journalism (published in English by Pluto Press).

 

He defines invisible censorship as the "formidable effect of mental closure" arising from a "vicious information circle" of repetitive, trivial and establishment-approved information, "almost a nothingness, shunting aside relevant news that all citizens ought to have in order to exercise their democratic rights". News has become surreal, "with an earthquake in Turkey turning up next to proposed budget cuts, and sport alongside a murder trial... events reduced to the level of the absurd, cut off from their antecedents and consequences".

 

His basic charge is that journalism claiming to be free has become merely another outlet of "cultural fast food", whose predigested conformity is guaranteed by journalists feeding off the work of each other so that, in the end, "everyone thinks in cliches, in the received ideas of the banal and the conventional". He does not doubt the good faith of many journalists, but says that what is different today is "the growth of a vast journalistic sub-proletariat, forced into a kind of selfcensorship by an increasingly precarious job situation".

 

Television is his main target; the more you watch it, the less you know. With political debate reduced to sound-bites, "television has gradually done away with public discourse [which] remains one of the most authentic forms of resistance to manipulation and a vital affirmation of the freedom of thought." The result is a relentless Big Brother message that the "free" market is good for you, and that there is no alternative.

 

Around this time of year, the great and good and career-minded of British broadcasting stage the annual Edinburgh Television Festival. Censorship by omission is never on the agenda; nor the undeclared pact between much of broadcast journalism and the ideology of power. There is a defensiveness among many of the media's celebrities and managers, who retreat into what Bourdieu describes as "narcissistic complacency" and are "all too inclined to pseudo-criticism" while protesting that they are merely giving the public what it wants.

 

In Britain, the writer David Edwards is one of the few media critics outside the media and its fringes who, like Bourdieu, challenges its received wisdoms. In the current Ecologist he quotes from a letter he received from Michael Jackson, the chief executive of Channel 4, in response to criticism of the series Against Nature, which attacked the environmental movement. "The small but significant group of people who hold views opposed to the environmental lobby have rarely been seen on British television," wrote Jackson.

 

To Edwards, this was "a revealing version of what constitutes 'balance' in the media today". He asks: "Can we assume, then, that the TV advertisers say, petrochemical, automobile, atomic energy, fast food and retail corporations - are not expressing views opposed to the environmental lobby? Channel 4 doesn't seem to feel duty-bound to balance each corporate TV commercial with a 'sub-advertisement' by environmentalists." The reason, he writes, is that business dominance is so total that any challenges to it are seen as "biased" and "strange".

 

Twenty years ago Alex Carey, one of the pioneers of the study of corporate propaganda, wrote: "The 20th century has been characterised by three developments of great political importance: the growth of democracy; the growth of corporate power; and the growth of corporate propaganda against democracy." At the core of "globalisation" is the American model of corporate propaganda, whose roots can be traced back to the 1930s when American business looked to the media and the growing public relations industry to counter the radicalising effects of the Great Depression. Business propaganda promoted the "red scare" and the "American way of life", which by the 1950s had spawned the witch-hunting of dissent known as McCarthyism.

 

In his memoirs, the great American reporter Edwin P Bayley revealed and regretted how he and the majority of his colleagues became the tools of McCarthyism by "going along with the propaganda" and seldom challenging its assumptions or identifying the power that lay behind it. "All the while we believed we were being objective," he wrote.

 

Modern McCarthyism, based on business propaganda, is infinitely more subtle, pervasive and powerful. Instead of railing against "communists", it sets out to depoliticise fundamental human rights, such as the right to secure work for a decent wage, and denigrates those who defend these principles as relics of a distant, discredited past.

 

The Blair government is the apotheosis of this renewed power. Occasional tiffs aside, it is backed by a media concerned mainly with personalities and gossip and which excludes almost anything that might identify the government in its true role as the political wing of the City of London.

 

That, for example, is why Gordon Brown's recent spending review was hailed in the liberal media as a "magical act of redistribution" - when the opposite is true. Some 440 billion was said to be released for hospitals and schools. In fact, once inflation is calculated, the actual increases in cash terms are an average of less than 22 billion a year, which is barely enough for the NHS to survive. The spending on education will be about the same and lower, as a proportion of gross domestic product, than during the Tories' last term. That is the real news.

 

I recommend Pierre Bourdieu's lively book. "I hope," he writes, "that real criticism will provide weapons to all those in the image professions who are struggling to keep what could be an extraordinary instrument of direct democracy from turning into an instrument of symbolic op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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