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ytage Open Lecture
 

워즈워스의 "개암따기" 읽기(A Reading of Wordsworth's "Nutting")

 

글에서는 Wordsworth “Nutting” 가지 측면에서 읽으려고 한다. 하나는 시가 romance, 특히 chivalric quest라고 하는  romance framework 채용하여 그것을 패로디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패로디는 패로디의 수사법을 가로막는 도덕주의적 어법과 전례없는 강력한 성적 이미지들에 의해 왜곡되어있다는 것이 발표의 “Nutting” 이해의 기본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영국에서는 Burke-Paine 논쟁을 축으로 하여 일련의 “Pamphlet War” 벌어졌는데 여기에서 “Chivalry” 한편으로는 중세적 가치의 상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세력의 정치적 이상주의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정치적 논쟁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상 18세기 말에 오면 전형적인 기사도란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었고, Wordsworth 시도 그러한 유행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Chivalry 당대에 가졌던 정치적인 함의와 Wordsworth 묘한 정치적 입장은 애당초 의도했던 기사도 패로디를 어렵게 만들었고, 대신 그로 하여금 quest theme 자체가 담고있는 치열한 성적 경험에 탐닉하고 그것의 가치를 재발견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표현된 성적 욕망과 표현은 다른 워즈워스 시와 비교해볼 대단히 파격적이다. 어린 시절의 사소한 경험이 진지하고 심도있게 회고/탐구되고 있는 비슷한 류의 다른 에피소드들, 예컨대, Boat-Stealing Episode 같은 것과는 달리 여기서의 성적 경험은 어떤 다른 목적에 봉사하는 하나의 과정, 가령 자연의 섭리를 깨달아가는 계기라든지, 아니면 자신의 시적 자아의 성장을 위한 단초로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적 경험자체로서 추구되고 표현되며 긍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후반부에 도덕적 교훈이 끼어들긴 하지만 그것은 애당초 의도대로 일관성을 가지고 제시된 것도 아니었고, 과정의 경험에 제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소년의 자기반성으로서 납득이 가도록 제시되는 것도 아니다.  워즈워스가 이렇듯 romance 패로디라는 애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romance 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romance 아니고 패로디도 아닌 어정쩡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은 그가 새로 발견한 성적 경험의 가치가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chivalry 가치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chivalry 이상이란 내용이 성적 순결, 사랑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의리, 그것을 통해 이룩되고 유지되는 정치적 정의 , 그것들은 한결같이 인간 개개인의 구체적인 욕망과 육체적 필요에 근거한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집단으로서의 인간, 그들이 가졌으리라 믿어지는 추상적인 가치를 체계화한 것이었다. 워즈워스가 romance 패로디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그러한 패로디 양편에 위치한 가치의 빈곤한 추상성을 인지했음을 의미하고, 그것을 대치할 있는 다른 종류의 경험, 성적인 경험의 잠재력을 재발견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고 보면 워즈워스 시론의 핵심적 개념들, 가령, Pleasure, Love, Sensation, Stimulation, Feeling 보통 추상적으로 이해되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육체적이고 성적인 인간의 반응을 전달하기 위한 어휘라는 점을 새삼스레 상기하게 되고 나아가 훗날 Wordsworth 체계화하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것을 포괄하는 새로운 시학의 핵심적인 근거는 바로 그러한 성적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볼 있는 것이다

 

로맨스 패로디로서의 “Nutting”: 시는 The Prelude 다른 어린시절 일화들과 마찬가지로 어른 화자가 어린 시절 자연으로의 expedition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Nutting” 경우에는 이러한  expedition 으로 가서 열매를 따오는 episode 되어있어서 다른 경우보다 좀더 완결된 형태의 romance chivalric quest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있다.  시의 독특한 점은 Spenser The Faerie Queene II. xii Bower of Bliss allusion에서 있다시피, 전통적인 chivalric quest 문법을 사실상 전복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시를 내용 전개상 1-20, 20-44, 45-55 부분으로 나누었을 , 부분에서는 현재의 어른 화자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돈키호테와 같은 엉터리 기사로 parody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두번째  부분에 가면 화자와 소년기사와의 심리적 거리가 사라지고 갑자기 quest 과정 자체에 몰입하고, 세번째 부분에 가면 다시 어른의 입장으로 되돌아와 체험으로부터 도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부분의 묘사는 전형적인 기사의 출정장면을 흉내내며 기사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제시한 것임을 쉽게 있다. “sallied forth”라는 말도 앞으로 뛰어나갔다 말이지만 군사적 용어로 적을 갑작스럽게 덮쳐서 공격하다라는 뜻이기도 것을 보면 소년을 작은 기사로 설정했음을 있다. 손에는 창대신 “A nutting crook” 들고있는데, crook 역시 무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옳치 못한 행위 사술(詐術)” 뜻하기도 해서, 소년 기사의 출정 명분이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부터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소년의 모습을 준수한 미남 대신 괴상한 차림새(a figure quaint)”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의 차림새는 튼튼한 갑옷 대신 거렁뱅이옷(beggar-weeds)”으로 위장하여 가시덤불이나 수풀 따위는 웃어넘길 있는 용기를 갖췄지만, 알록달록 우스꽝스럽고, 사실상 nutting 하러가기에는 필요이상으로 거친(ragged) 복장이었다. 이러한 표현들을 보면 화자가 소년기사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풍자적인 거리를 견지할 뿐만 아니라, 일련의 도덕적인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시의 판본인 MS 15에서 이러한 소년의 일화가 숲을 거칠게 다루는 여인에 대한 훈계의 일부로서 활용되고 있음을 보면, 시가 소년기사를 하나의 기사적 인물로 설정하면서 동시에 악한에 해당하는 역할을 부여했음을 분명히 있다.  “Nutting” 흔히 비교되는 The Faerie Queene Sir Guyon 묘사를 비교해보라. “A goodly knight all armd in harnesse meete,/ That from his head no place appeared to his feete. / His carriage was full comely and upright,/ his countenaunce demure and temperate,/ But yet so sterne and terrible in sight,/ that cheard his friends, and did his foes amate.(II.i.st.5-6)  Spenser 여기에서 Sir Guyon the knight of temperance 설정하고, Odyssey Siren 신화를 차용하여 Acrasia라는 마녀가 기사들을 유혹하여 돼지로 만드는 Bower of Bliss 찾아가서 자신의 현명한 guide Palmer 도움으로 쾌락의 유혹을 물리치고 기사 Verdant 구해낸 돼지가 기사들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구나 절제 미덕을 잊고 성적인 쾌락에 탐닉하면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이라는 도덕적 교훈을 전달하는 Moral  Allegory 것이다.   Sir Guyon expedition 목표는 이성에 의한 성적 충동의 타도이고, 투쟁의 내용은 자신이 느끼는 성적 욕망의 억압인 셈이다.  “Nutting” 소년기사는 정확하게 반대의 임무를 수행한다.  Sir Guyon 같이 폭력을 행사하긴 하지만 욕망의 억압을 위해서가 아니라 파괴적인 발산으로서 행사하는 것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하듯 “Nutting” 두번째 부분은 Nutting 과정을 일종의 강간으로, 혹은 Sadism 성행위로 읽을 있다. Nutting 목적인 “hazels” “Tall and erect, with milk-white clusters hung,/ A virgin scene!”이라는 대목을 놓고 강간의 주체을 여성으로 보고 이것을 Female Sexuality 발현과 억압의 이야기로 읽는 경우도 있지만,  발표자가 보기에는 이것을 자신의 심리적(혹은 생리적) 상황의 투사로 본다면 소년기사를 male rapist 보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발표자가 보기에 특이한 것은 20행부터 화자의 시점이 소년의 그것으로 갑자기 고정되면서 성적 욕망이 촉발되고 발현되는 과정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마치 전체적인 그림을 파노라마로 잡다가 갑자기 특정부위를 클로즈업하여 슬로우비디오로 보여주는 것처럼 과정을 화자 스스로도 음미하고 독자에게도 그것을 공유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용이 성욕의 억제가 아니라 그것을 최대한으로 연장하여 즐기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Sir Guyon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고 있다. “such suppression of heart” 욕망의 억압이 아니라 욕망의 발생을 말하고 있고, “with wise restraint” The Faerie Queene에서는 Palmer 존재와 역할을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욕망의 부정이 아니라 욕망의 충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33행의 “And with my cheek on one of those green stones/ That, fleeced with moss, beneath the shady trees,/ Lay round me, scattered like a flock of sheep, I heard the murmur and the murmuring sound,..” sexual intercourse(“rude intercourse”라는 말이 MS 15 나옴) 과정을 묘사한 것이기도 하고, 살아있는 자연과의 교감을 묘사하는 전형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단지 전형적인 워즈워스시와 다른 것은 묘사가 노골적으로 성적인 에너지로 충만한 맥락에 놓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같으면 이러한 묘사가 자연과 하나가 되는 방식으로 제시되겠지만,  여기에서는 Murmuring하는 자연이 “indifferent things” 불과함이 드러나고, 좀더 자극적인 교감의 방식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merciless ravage” 부정적인 도덕적 단죄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자행된다.  Sir Guyon 경우에는 Bower of Bliss 가는 도중에 꽃으로 장식된 연못에서 목욕하는 벌거벗은 여인에 대하여 욕망을 느끼지만 그의 욕망은 그의 종자인 Palmer 의해 즉시 제지당하고, 결국 Acrasia Bower of Bliss 나아가 쾌락의 소굴을 단숨에 쳐부수고 도덕적 승리를 거두게 된다.  “Nutting”에서도 똑같이 폭력을 쓰지만 쾌락의 파괴가 아니라 쾌락의 최종적인 완성으로서 행사되는 것이다.  “Nutting”에서는 Chivalric knight 쾌락을 쳐부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폭력적으로 탐닉하고, 아예 편이 되어버린다. The Faerie  Queene에서처럼 Temptation Seduction 이기고 Quest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Quest 목적이 어느새 Temptation 자체와 동일시되고있다. Quest 표면적인 목적인 nut 획득은 고난의 과정이 아니라 쾌락의 과정이고, 기사는 그것에 철저히 탐닉하고,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버린다.  Chivalry 대한 풍자를 통해서 정신을 비판하려는 것이 시의 목적이라면 이야기의 이러한 전개는 이해할 만한 것이다. “악한 기사가 expedition 통하여  Sir Guyon 도덕적 승리와는 반대되는 것을 성취하게 되니까. 사실 “from the bower I turned away/ Exulting, rich beyond the wealth of kings”에서 있듯이 결과가 어른 화자의 도덕주의적 관점과 충돌한다 하더라도 소년 자신이 자신의 원정의 목적 달성을 기뻐하는 것은 패로디로서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면에서는 당연하다. 그리고 “Touch – for there is a Spirit in the woods”라는 이상한 도덕적 결론은 화자가 소년기사에게 부과하는  “sense of pain”, 자연을 욕보인 것에 대한 도덕적 반성에 근거한 교훈으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지만, 그것이 결국 쾌락의 원천인 Acrasia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유혹에 넘어가버림으로써 quest 목적을 달성하는 악한기사의 expedition 결론으로서는 오히려 적절해 보인다.  Nutting 실용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장려하는 “my frugal Dame” 관점과도 결과적으로는 들어맞지않는가.

 

기사도에 대한 패로디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부분에 대한 분석에서 이미 분명하게 드러났고, 소년의 expedition 자연에 대한 능욕이라고 파악하는 화자의 도덕주의적 자세이다. 자연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자연보호주의자적 메시지가 화자의 표면적인 주장이지만 이것은 기사도에 대한 패로디라는 시의 구조적 특성과 시종일관 충돌한다. 뿐만 아니라 시의 두번째 부분에서는 어른 화자 자신이 “merciless ravage”자체에 너무나 몰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덕주의의 일관성을 잃고 있다. 부분에는 패로디에 있어야 하는 화자와 소년간의 비판적 거리도 없고, 도덕적 관점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절제도 없다. 부분은 Wordsworth 패로디 작가로서도, MS 15 도덕적 설교가로서도 일탈하는 부분이다.  “unless I now/ Confound my present feelings with the past” 시점을 관찰자 시점으로 되돌리는 동시에 강간 장면 대한 화자 자신의 탐닉에서 벗어나면서 화자의 도덕적 관점을 회복하는 지점인데,  이를 위해 화자가 소년 기사에게 부과하는  “a sense of pain” 소년기사의 반성으로서 설득력을 갖기 보다는 화자 자신의 일탈에 대한 반성의 표현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  화자의 일탈은 일차적으로 자신이 심정적으로 가담한 소년 기사의 능욕 대한 화자의 도덕적 판단이요, 그것에 자기도 모르게 동조한 자신에 대한 도덕적 반성이다. 이것은 결국 자신이 수행하고있는 Chivalry 패러디의 유효성에 대한 회의과 자신의 문학적 기획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자의식적인 반성의 표현으로 수도 있을 것이다.

 

1790년대의 영국에서 기사도에 대한 parody 정치적인 색채를 피할 없었다.  논쟁의 단초는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에서 Burke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것에서 주어졌다.

 

It is now sixteen or seventeen years since I saw the queen of France, then the dauphiness, at Versailles; and surely never lighted on this orb, which she hardly seemed to touch, a more delightful vision.  I saw her just above the horizon, decorating and cheering the elevated sphere she just began to move in, --glittering like the morning-star, full of life, and splendor, and joy.  Oh! What a revolution! And what an heart must I have, to contemplate without emotion that elevation and that fall!… Little did I dream that I should have lived to see such disasters fallen upon her in a nation of gallant men in a nation of men of honour and of cavaliers.  I thought ten thousand swords must have leaped from their age of chivalry is gone. –That of sophisters, oeconomists, and calculators, has succeeded; and the glory of Europe is extinguished for ever.  Never, never more, shall we behold that generous loyalty to rank and sex, that proud submission, that dignified obedience, that subordination of the heart, which kept alive, even in servitude itself, the spirit of an exalted freedom.  The unbought grace of life, the cheap defence of nations, the nurse of manly sentiment and heroic enterprixe is gone!  It is gone, that sensibility of principle, that chastity of honour, which felt a stain like a wound, which inspired courage whilst it mitigated ferocity, which ennobled whatever it touched, and under which vice itself lost half its evil, by losing all its grossness.(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Penguin, 1969, 169-170)

 

Burke에게 Chivalry 프랑스혁명이 파괴하고있는 기존 체제의 정신이요, 자체가 자연질서의 표현이었다.  이것에 대한 가장 극적인 반론은 Thomas Paine으로부터 나왔다.

 

Wen we see a man dramatically lamenting in a publication intended to be believed, that, ‘The age of chivalry is gone!’ that ‘The glory of Europe is extinguished for ever!’ that ‘The unbought grace of life’(if any one knows what it is), ‘the cheap defences of nations, the nurse of manly sentiment and heroic enterprise, is gone!’ and all this because the Quixote age of chivalry is gone, what opinion can we form of his judgement, or what regard can we pay to his facts? In the rhapsody of his imagination, he had discovered a world of windmills, and his sorrows are, that there are no Quixotes to attack them. But if the age of aristocracy, like that of chavalry, should fall, (and they had originally some sonnection), Mr Burke, the trumpeter of the Order, may continue his parody to the end, and finish with exclaiming, ‘Othell’s occupation’s gone!…Not one glance of compassion, not one commiserating reflection, that I can find throughout his book, has bestowed on those who lingered out the most wretched of lives, a life without hope, in the most miserable of prisons….He pities the plumage, but forgets the dying bird. (“The Rights of Man”, in The Thomas Paine Reader, Penguin, 1987, 211-213)

 

결국 1790 프랑스혁명 논쟁이라는 맥락에서는 chivalry 대한 parody 기본적으로 Paine Burke 비판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런 뜻에서 “Nutting” 기본적으로 그의 radical sympathy 드러내는 시이지만,  David Duff 지적대로 Radical들이 로맨스를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그들의 정치적 이상주의 역시 로맨스의 Utopianism 계승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Wordsworth 자신이 후일 기술한 프랑스혁명의 정신은 이러한 측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Bliss was it in that dawn to be alive,/ But to be young was very heaven! Oh! Times,/ In which the meagre stale forbidding ways/ Of custom, law, and statute, took at once/ The attraction of a country in Romance!/ When Reason seem’d the most to assert her rights,/ when most intent on making of herself/ A prime Enchanter to assist the work,/ Which then was going forward in her name!(The Prelude, 1850, XI, 105-116)

 

Burke에게는 프랑스혁명이 chivalry 가치를 일거에 파괴하는 것이었고, Paine Burke 논리를 chivalry 대한 parody Quixote 인용하면서 일거에 무너뜨렸지만, Wordsworth 프랑스혁명의 원동력인 “Reason” romance 나오는 “Enchanter” 비유하며 당대의 환희에 자신의 혁명적 열정을 회고한다.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Beaupuy 대한 묘사에서도 그를 로맨스의 주인공처럼 제시한다.

 

Man he loved/ As man; and, to the mean and the obscure,/ And all the homely in their homely works,/Transferred a courtesy which had no air/ Of condescension;/ but did rather seem/ A passion and a gallantry, like that/ Which he, a soldier, in his idler day/ Had paid to woman: somewhat vain he was,/ Or seemed so, yet it was not vanity,/ But fondness, and a kind of radiant joy/ Diffused around him, while he was intent/ On works of love or freedom, or resolved/ Complacently the progress of a cause,/ Whereof he was a part(IX. 306-316)

 

이러한 묘사속에 이미 Burke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평하는 학자도 있지만, 워즈워스에게 있어서도 로맨스의 parody 하나의 문학적 작업 이상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Nutting” 처음 쓰여진 1798 겨울은 워즈워스가 영국에서 현실적인 혁명적 전망을 완전히 포기한 직후이며, 그의 정치적 열정을 시적 열정으로 옮아가던 시점이고, 자신의 시적 자아의 탐구를 본격화 무렵이었다.  당시의 워즈워스는 자신의 혁명적 열정을 완전히 부정할 만큼 변절하지는 않았지만 Paine-Godwin류의 정치적 이상주의의 추상성과 정치적 비실효성을 깨달을 만큼은 변해있었다.  Paine류의 로맨스 패로디을 그대로 따르기에는 Burke 시대착오적 Chivalry 예찬만큼이나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radical들의 이념적 문제점을 인식할 단계에 있었다. “Nutting”에서 Romance Parodist로서의 화자가 Paine적인 워즈워스였다면, 시종일관 소년 기사의 행위를 도덕적 어휘로 단죄하는 화자는 Burke적인 워즈워스였다. 그러나 당시의 워즈워스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romance 추상성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진영의 공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양쪽 모두에 속하지 않는 소년의 성적 행위에 열렬히 동조하는 어른 화자의 모습이었고 그것은 워즈워스가 새롭게 발견해가고 있었던 시적 창조성의 원천이었다.

 

“Nutting” 원래 The Prelude 부분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쓰여졌다가 후일 독립적으로 출판되었다. 자신의 시적 자아를 설명해 내기위한 하나의 자료로서 어린 시절의 다른 일화들과 함께 구상되었는데, 워즈워스가 그러한 일련의 일화들을 통하여 재구성하고자 했던 어린시절의 경험은 Tintern Abbey 대목에서 현재자신의 관점과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당시는 “like a roe/ I bounded o’er the mountains, by the sides/ Of the deep rivers, and the lonely streams, Wherever nature led: more like a man/ Flying from something that he dreads, than one/ Who sought the thing he loved./ For nature then/(The coarser pleasures of my boyish days,/ And their glad animal movements all gone by)/ To me was all in all – I cannot paint /What then I was.  The sounding cataract/ Haunted me like a passion: the tall rock,/ The mountain, and the deep and gloomy wood,/ Their colours and their forms, were then to me/ An appetite: a feeling and a love/ that had no need of a remoter charm, /by thought supplied, or any interest/ Unborrowed from the eye.(67-83)

 

시기가 어땠었는지를 그릴 없다고 했지만 워즈워스는 The Prelude 1-2권에서 그것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처럼 현재의 원숙한 관점과 구분되는 미숙한 경험의 예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은 가능하지 않은 어떤 신비로운 힘에 대한 암시를 담고있는 원형적 체험으로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Boat-stealing Episode, Snare-Snatching Episode “the characters of danger and desire” 담고있는 일화들은 워즈워스의 서술적 통제하에서 그의 시적 영혼의 중요한 재료로서 시적 성장의 단초로서 제시되고있다. 위에서는 “coarser pleasures of my boyish days”라고 사소하게 얘기했지만 여기서 제시된 동물적 생기, 본능적이고 구체적인 욕망 그리고 그러한 생기와 욕구의 가차없는 발현이 현재의 화자에게 불러일으키는 도덕적(인간중심적) 갈등과 죄의식이 “Nutting” 포함하는 일련의 어린 시절episode들의 내용이다. 그러나 “Nutting” “Boat-Stealing” Episode 다른 것은 성적 체험 자체가 parody라는 형식적 논리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억압없이 가장 솔직한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점이다. 가령 “Boat-Stealing” Episode 같은 곳에서는 “Nutting” 비견할 만한 성적 흥분과 기대감이 불러일으켜지지만 그것은 “Nutting” 경우보다 훨씬 구체적인 죄의식과 도덕적 가책에 의해 완전하게 포장된다.

 

But huge and mighty forms, that do not live/ Like living men, moved slowly through the mind/ By day, and were a trouble to my dreams./ Wisdom and Spirit of the universe!/ Thou Soul that art the eternity of thought,/ That giv’st to forms and images a breath/ And everlasting motion, not in vain/ By day or star-light thus from my first dawn/Of childhood didst thou intertwine for me/ the passions that build up our human soul.(I. 398-407)

 

이후 Coleridge 의해 주어지는 One-Life Philosophy The Prelude 필두로 “The Recluse” 프로젝트를 지배하는 공식적인 이념으로 자리잡지만 워즈워스가 실제로 발견한 자신만의 창조적 원천은 “coarse pleasure” 세계였는지도 모른다. 발표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발표자의 가장 궁극적인 관심은 “coarse pleasures of my boyish days” 대한 워즈워스의 부정적(혹은 제한적자연의 신비로운 가르침을 촉발하는 계기로서만 해석한다는 면에서 제한적이라는 )해석과는 상관없이(혹은 반대로) 우리가 흔히 전형적인 워즈워스적 초월의 경험, 가장 추상적이고 도덕적이며 영적인 체험조차도 사실은 “coarser pleasure” 체험에 입각한 , 쾌락의 언어로 되어있다는 것을 가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워즈워스가 자연시인인 이유이고, 그의 시가 갖는 구체성의 정체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점이 설득력있게 주장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Annette Vallon 대한 육체적 정열과 프랑스혁명에 대한(혹은 Beaupy 대한) 정신적(이데올로기적) 정열이 같은 시기에 발현된 이유를 설명할 있고, “Preface to Lyrical Ballads” 제시된 시론의 기반에 Passion Pleasure 자리잡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라.

 

Nor let this necessity of producing immediate pleasure be considered as a degradation of the poet’s art.  It is far otherwise.  It is an acknowledgement of the beauty of the universe, an acknowledgment the more sincere, because it is not formal, but indirect; it is a task light to him who looks at the wolrd in the spirit of love: further, it is a homage paid to the native and anked dignity of man, to the grand elementary principle of pleasure, by which he knows, and feels, and lives, and moves.  We have not sympathy but what is propagated by pleasure:  I would not be misunderstood; but wherever we sympathize with pain it will be found that the sympathy is produced and carried on by subtle combinations with pleasure. We have no knowledge, that is, no general principles drawn from the contemplation of particular facts, but what has been built up by pleasure, and exists in us by pleasure alone.

 

이러한 대목은 물론 Pleasure/ Pain이라는 Bentham적인 binary opposition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문학의 구체성과 문학적 지식의 진정성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워즈워스가 “Nutting” 같은 시을 쓰면서, 그것을 The Prelude 맥락에서 잘라내면서 새로이 발견하게 성적인 경험의 창조성과 역동성을 이론화했다고 말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맥락에서만 Hagsrum같은 사람이 snowdon episode 성적인 담론으로 읽는 방식이 일정한 정도의 설득력을 가질 있을 것이다.  Chivalry 대한 불완전한 parody안에 강력한 성적 체험기가 불안정하게 포섭되어있는 “Nutting” 양상은 워즈워스가 급진적인 개혁가의 전망을 포기하고 시인의 전망을 획득하게 되는 과정의 반영이라고 만하다.  Romance 둘러싼 추상적이고 비현실적 가치체계 혹은 정치이념의 공방이 인간의 성적 욕구와 동물적 본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에 입각한 인간정신의 개혁이라는 새로운 예술적 목표로 대치되었음을 “Nutting” 증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

 

David Duff, Romance and Revolution: Shelley and the Politics of a Genre, Cambridge UP, 1994.

Jean H. Hagstrum, The Romantic Body: Love and Sexuality in Keats, Wordsworth, and Blake, Tennessee UP, 1985.

Gregory Jones, “’Rude intercourse’: uncensoring Wordsworth’s ‘Nutting’”, Studies in Romanticism 35(Summer 1996), 213-43.

David D. Joplin, “The deep ecology of “Nutting”: Wordsworth’s reaction to Milton’s antnropocentrism.”, English Language Notes 35(December 1997), 18-27.

Robert Burns Neveldine, “Wordsworth’s “Nutting” and the Violent End of Reading”, ELH 63(1996), 657-680.

Jonathan Arac, “Wordsworth’s “Nutting””: Suspension and Decision, in Critical Genealogies: Historical Situations for Postmodern Literary Studies,  Columbia UP, 1987.

 

 

 

 

   Related Keyword : Wordsworth Nutting parody chivalry romance
 

 

 
 
© 2014 ARMYTAGE.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