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ytage Open Lecture
 

영미문학연구회 2016 봄 학술대회 발제문

 

박찬길(이화여대)

 

융합, 인문학의 살 길인가?

 

 

1. 배경

 

          “융합”은 영문학에서 매우 생소한 단어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영문학의 위기” 담론에도, Project Muse나 Jstore같은 영문학 관련 데이터베이스에도 “융합”(Convergence)은 딱히 의미 있는 키워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회에서 봄 학술대회의 주제로 이런 낯선 단어를 주제로 선정한 이유는 두 말할 필요 없이 최근에 진행된 일련의 교육부 프로젝트 때문이다. 대부분 대학을 직장으로 삼고 있는 우리 학회의 회원들 중 다수는 영문학의 족보에는 제대로 존재하지도 않는 그 이상한 단어 때문에 적어도 지난 6개월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았고, 마치 첩 집에 쳐들어 온 조강지처 마냥 기세등등하게 설쳐대는 이 괴이한 말의 횡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놓고 골머리를 앓아 온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이 말이 뭐 길래 갑자기 튀어나와 감히 우리의 직업적 정체성을 놓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 말이다. 우리 다 알다시피, 교육부의 “재정지원”이 문제다. 금년에만도 대략 다음과 같은 교육부 재정지원 사업이 있었다.1)

 

 

 

줄잡아 2조가 넘는 돈을 교육부가 대학에 직접 제공한다고 하니, 2011년 이후 등록금을 거의 올릴 수 없었던 대학들로서는 이러한 “사업”들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부의지원금은 현금의 가치로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으로 인해 축적되는 여러 가지 지표들이 곧바로 대학의 평가와 연관되기 때문에 더 문제인 것이다. 이미 기업화한 대학의 운영진에게는 이러한 사업의 “수주액”이 기업의 매출액만큼이나 결정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대학의 총장들에게는 이 사업의 “수주”여부가 그대로 경영실적에 해당하는 만큼, 그들이 이제는 부하직원 정도로 생각하는 “일반” 교수들에게 엄청난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그 결과가 발표된 프라임사업은 지원액규모가 “단군 이래 최대”라고 할 정도로 규모가 엄청나서(한 학교에 최대 1년에 300억원까지 지원가능-3000명 이상의 연간 등록금에 해당함) 평교수들에게 미치는 압력과 파장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이보다 조금 더 먼저 공모되었던 코아사업이라는 것도 한 대학에 최대 연간 37억원까지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에, 하나의 인문대학 단위로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부의 이런 “선물”은 물론 공짜일리 없다. 교육부의 메시지는 처음부터 분명했다. 대학에 입학할 고교졸업생의 숫자가 현재 대학정원보다 적어지는 시점이 곧 다가오며(2018년), 이때를 대비해서 대학정원의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청년실업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노동시장의 수급을 고려할 때, 현재 과잉 공급되는 인문사회계, 특히 인문계의 규모를 축소하고, 이공계, 특히 공학계의 졸업생을 시급하게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교육부의 정원축소, 정원이동 정책을 실행하는 대학에 정부 지원금을 우선적으로 지급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러한 정책방향에 따라, 지원금 획득에 사활을 건 각 대학들은 매우 급작스러운 방식으로 인문계 정원을 축소해서 여러 가지 현란한 이름을 가진 공학계열을 신설하거나 기존 정원을 확대하는 데 투입했다. 프라임사업에 선정된 대학의 인문대학은 교육부가 요구하는 수만큼의 정원(대형 200명이상, 소형 200명 미만)을 고스란히 정체불명의 신설 공학계열에 내줘야 했다.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인문계를 좀 달래기 위해서 급조된 듯한 코어사업이라는 것은 연간 600억원의 예산을 할당받았는데, 이 사업의 관건은 다른 무엇보다도 참여를 원하는 인문대학이 교과과정을 얼마나 창의적으로(혹은 “창조경제”적으로) 새롭게 구성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때 등장한 단어가 “융합”이다. 코어사업에 선정된 몇 개의 대학의 인문학은 지원액을 주되, 선정의 핵심적 관건은 예의 그 창의적 교과과정이 그들이 생각하는 “융합”의 취지를 얼마나 잘 구현했는가 하는 것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 그들이 말하는 융합이란?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융합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필자 역시 이런 저런 프로젝트의 신청서를 작성하거나 검토하는 일에서 참여했었기 때문에 그 개념을 오로지 교육부의 공고문을 통해서 이해할 뿐이었다. 이전에도 “융합”이라는 말이 쓰이긴 했었다. 그 이전에는 그 용어가 인문계의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인문계의 여러 학과들을 한데 합쳐 두루뭉술한 이름을 붙이기 위한 명분을 뜻하거나, “문학”을 좀 덜 인문학스러운 “문화”로 바꾼다든지, 아니면 외국어문학과를 그 지역의 문학이나 어학만이 아니라 그 지역 전체를 연구하는 지역학, 그러니까 좀 더 사회과학스러운 이름으로 바꾸는 것을 느슨하게 지칭하는 것이었다.2)   그 이전의 “융합”은 말하자면 인문학에게 요구하는 “창씨개명”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들이 말하는 “융합”은 호적상 이름만 바꾸는 것만 뜻하는 것 같지 않았다. 최소한의 명분을 위해 “기초학문심화”라는 영역을 하나 설정하긴 했지만, 다른 것들은 인문대의 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했다. “글로벌 지역학”은 외국어문학부의 어문학 중심의 교과과정을 아예 “지역학”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고, “기초교양모델”은 인문대학을 전교생에게 교양과목을 제공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교양대학”으로의 전면개편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는 모든 인문대교수들이 전공교수가 아니라 교양과목 전담교수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인문대학을 이런 식으로 개편하는 것은 인문대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몇몇 대학에서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왔던 일이었는데, 또 하나의 항목, “인문기반 융합전공”은 다른 항목들과는 질적으로 또 다른 측면이 있었다. 이 항목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인문학과 다양한 학문이 결합한 융합전공을 개발”함으로써 “창의인문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었다.

          인문학, 특히 영문학의 연구는 원래 융합적이다. 영문학의 발전과정을 보면, 19세기 중반에는 문헌학 혹은 민속학과 결합된 형태로 하나의 독립된 연구분야로 확립되었었다.3)  20세기 초반에는 소위 “언어학적 전환”으로 인해 문학연구에 언어학과 철학이 깊이 개입되었으며, 프로이트의 정신의학, 에코비평에서는 환경학, 심지어 최근에는 뇌과학을 문학연구에 접목시키려는 시도까지 있을 정도로 영문학은 그 자체로 끊임없이 외연을 넓혀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융합”은 문학연구 본연의 융합적 본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을 “경영, 디자인, IT, CT등 다양한 실용학문을 융합하여 사회수요에 맞는 전문 인력 양성체제”로 “발전”시키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해외사례”로 제시한 부분인데, 그들이 예로 든 옥스퍼드대학의 PPE(Philosophy, Politics, & Economics)나 하버드대학의 SS(Social Studies), 코넬대학과 게이오대학의 프로그램들은 모두 전통적인 문학의 외연을 확대하는 성격의 프로그램들이지 그들의 아이디어대로 곧바로 “제품생산”을 위한 연구개발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융합에 대한 이들의 설명에는 “실용학문”이라는 말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기존의 복수전공과 부전공을 활용하면 학생 개인의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이런 종류의 “융합”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굳이 인문대학 내부에서 인문학을 “경영학, 디자인, IT, CT”와 내용적으로 결합시키라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발상인가? 그것도 대학원과정에서 독특한 연구분야로서 외연을 넓히는 차원이 아니라 기본적인 원전을 읽으면서 전공의 기초소양을 닦아야 할 학부에서 그러한 “융합”을 시도하라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물론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아이디어는 “창의적 인재의 양성”과는 애당초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고 졸업 후(많은 경우 졸업이전에도) 기업에서 일하기에 좋은 인력을 양성하라는 말이다. 그들에게 대학은 “취업”을 위해 잠시 거쳐하는 취업학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교육법에 엄연히 구분되어 존재하는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구분을 없애고, 모든 대학을 전문 대학화하는 시도를 “인문학 진흥책”의 이름으로 시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미국의 하버드대 드루 파우스트 총장은 그녀의 취임연설에서 대학은 “학생들이 졸업 때까지 어떤 사람이 될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곳이 아니다”고 엄숙하게 선언한 바 있다.4)  냉소적인 사람들의 말대로 그녀는 하버드대학의 총장이라서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한국의 교육부가 선도하는 공식적인 “인문학 진흥책”의 내용이 이 지경이라면, 우리말로 되어있어서 망정이지, 밖으로 알려지면 진짜 나라망신이 아니겠는가.

 

3. 그들의 “융합”은 어디에서 왔는가?

 

          앞에서 말했듯이, 기조발제의 본래의 의도는 그들이 말하는 “융합”의 심오한 뜻을 인문학연구자의 입장에서 좀 차분하게 검토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융합”이라는 개념에 “심오한 뜻” 따위는 애당초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정부부서의 정책입안은 국책연구소나 자문교수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이루어지지만, 더 결정적으로는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곳에서 발행한 기업의 연구보고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5)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삼성경제연구소의 자료창고에서 찾은 보고서 한 편이 코어사업 공고안에 나오는 “융합”의 모든 것을 다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라는 연구소에서 발행한 “2010 세상을 바꾸는 생각들: 학문간 융합 포럼 리포트”라는 문건이다. 6)  발제를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통독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보아도, 그 내용은 어떻게 하면 인문학 커리큘럼을 “엔트리연봉 이십만불”짜리 양성프로그램으로 만들까 하는 그들의 궁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저런 유식해 보이는 얘기들을 늘어놓고 있지만, 핵심은 이런 것이다. 과거에는 그냥 전화만 만들어서 팔았지만, 세계에 팔리는 제품을 만들려면 카메라도 되고, TV 리모콘도 되고, 시계도 되도록 이런 저런 신기술을 “융합”해야 되는 것이고, 이런 제품을 남들보다 빨리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융합적 상상력”이 필요하며 여기에 인문학적 사유가 한 몫 한다는 것이다. 이건 그냥 스티브 잡스가 애플 만들어낸 얘기의 지루한 반복일 뿐이며, 그들이 말하는 “융합”은 기본적으로 기술기반의 융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림출처: 『세상을 바꾸는 생각들: 학문간 융합 포럼 리포트』 10면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이, 그들이 말하는 “융합”에 이론적 배경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코어사업의 공고문에 등장하는 “인문기반 융합전공”은 말이 “인문기반”이지 실제로 뜻하는 바는 위의 그림이 보여주는 “기술기반 융합전공”과 전혀 다르지 않다. 좀 더 큰 그림에서 보면 그들이 말하는 “융합”의 요구는 사실상 인문학의 “실용적 가치”를 증명하고, 없으면 만들어 내라는 식의 과학주의/공리주의의 입장과 그리 다른 것이 아니다.

          알고 보면 18세기의 독일의 계몽군주들도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대학에서 전통적인 인문학 대신 경영학(Management)이나 창업(Entrepreneurship)를 가르칠 것을 강요해서 칸트(Kant)같은 철학자나 쉴러(Schiller)같은 작가도 그러한 대학개혁의 피해자였다.7)  19세기 초반 옥스브릿지(Oxbridge)에 대항해서 런던대학(University College)을 창설했던 공리주의자들의 주장도 기본적으로 같은 맥락이었다.8)  우리가 모두 잘 아는 “두 개의 문화”에서 스노우(C.P. Snow)가 했던 주장도 마찬가지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부호 카아네기(Carnegie)는 한 대학의 졸업식 치사에서 “졸업생들이 셰익스피어나 호머와 같은 죽은 언어를 읽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속기와 타이핑을 배웠다는 사실에 대해 큰 기쁨을 느낀다”는 망언을 서슴치 않았는데,9)  이러한 사고방식도 인문학의 가치를 부인하는 공리주의적 사고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며, 내가 보기에는 요즘 경영학자들과 관료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 의 뜬금없는 인문학 찬가도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4. 그들이 말하는 “융합,”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들이 말하는 “융합”이 인문학의 실용성을 입증하라는 과학주의/공리주의의 전통적인 주장의 현대적 표현이라면,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도 현대적 상황에 걸맞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스노우(C.P. Snow)의 요구를 고압적 태도로 일관한 리비스(F.R. Leavis)처럼 우리 역시 냉소와 경멸로만 대응한다면 우리는 리비스보다 훨씬 혹독한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 뻔하다. 그들의 융합, 즉 “기술융합적 인재양성”이라는 그들의 교육프로그램은 매우 기능주의적이고, 탈정치적이며, 공리주의적이고, 또한 자본친화적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인적자원을 길러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대학 교육과정에서 관철하려는 자본가/기업가들의 노력은 우리 생각보다 그 역사가 길고, 앞으로도 쉽게 멈춰지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잘 알다시피, 서양의 고전 인문학의 역할은 인문적 고전의 학습을 통해 사회를 이끌어나갈 지도자의 자질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카네기 같은 기업가들이 오로지 이윤의 극대화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바로 그들의 교육프로그램에 없는 요소, 즉 이상주의적이고, 가치지향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해야한다. 그들이 사회에 대한 우리의 기여를 묻는다면, 우리는 건강한 비판적 지성과 역사적 통찰력, 예술적 감성, 세계시민적 도덕성을 두루 갖춘 민주주의사회의 시민을 키워내는 것이 우리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가령 미국의 인문학도 수십년째 “위기”라며 아우성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들의 인문학이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내면화한 건전한 미국시민을 키워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미국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그것이 미국사회의 건강성을 지켜나가는 첩경이라는 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10)가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같은 인사가 왜 대통령이 되면 안되는가를 알려면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적 이익을 가져온다며 터무니없는 인종주의, 일방적인 보호무역주의, 맥락없는 외교적 고립주의로 대중을 선동하는 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의 재앙이 되지 않겠는가. 오로지 “엔트리연봉 20만불” 만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이러한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시민을 길러낼 수 있겠는가?

 

5. 정부의 재정지원, 어떤 입장이 필요할까?

 

          사실 우리가 아무리 비판을 하고, 비분강개를 한다고 해도, 아무리 그 비판이 옳고, 우리의 분노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하더라고, 그것이 현실을 바꿔놓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고등교육정책, 그리고 구조조정과 연계된 재정지원은 우리의 의견과 별 상관없이 계속 진행될 것이다. 우리가 대학이라는 기관에 속한 채로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는 한, 그러한 정책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분노와 냉소로 모든 것을 외면하는 학문적 러다이트(Luddite)가 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실행할 수 있는 보편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요컨대, 우리는 우리의 교육과 연구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인문학과 연관된 정책적 사안들에 대해 각각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러한 전략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되는 이러한 “소동”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우리 나름의 인문학적 통찰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러한 통찰을 하려면,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 우리가 하는 일의 사회적 쓰임새, 우리의 존재나 행위에 대해 “저들”이 갖는 불만, “저들”이 제시하는 해결책 등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변화하는 사회적 조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따라가면서 우리의 연구와 교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또 기회가 있을 때 비판적인 개입을 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방향이 기본적으로 친자본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개별적인 사안에 있어서는 우리의 비판적 개입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가령 인문학 교수들의 연구업적 평가의 방식을 인문학의 특성에 맞게 바꾼다든지, 또는 인문학의 “진흥”이나 “지원”의 핵심을 기업처럼 예산을 지원하고 단기적 성과를 계량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문학 교수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와 교육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인프라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바꿔나간다든지 하는 것들이다.11) 교육부는 인문학과는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 이상한 “사업”들을 자꾸 만들어내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인문학 학계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동의하는 우수한 연구들에 대해 사후적으로 보상한다든지,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안정적으로 국가장학금을 제공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인문학 지원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가령, 독일정부의 교육부가 “인문학에 대한 지원은 연구자들에게 현금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선언한 것은12) 훔볼트가 말했던 학자들에게 필요한 “고독과 자유”라는 말을 쉽게 표현한 것인데, 우리의 경우에도 백번 옳은 말이다. 기본적으로 학술적 연구와 교육은 경쟁이 아니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을 평가하고, 그 무엇보다 그러한 비교-평가에 근거한 무제한의 “경쟁”을 학술-교육의 기본적 원칙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인문학과 인문교육을 죽이는 일이다. 게다가 그러한 “경쟁”의 조건들조차 인문학과는 인연이 없는 행정관료나 기업연구원에서 정하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은 더욱 더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당연히 인문학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또 다시 훔볼트의 말처럼, “지원”은 하되 절대로 그 내용에 “개입”해서는 안된다.13)  우리는 그 점을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환기하고 우리의 학술적 활동의 현실적 조건들을 우리 스스로 정해나갈 수 있도록 서로 연대하고 대화하며, 결코 끝나지 않을 이 긴 싸움에 인내심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각주

 

1) 중앙일보, “연 2조원 대학 지원, ‘독이 든 성배’되면 안된다,” 2016년 4월 21일,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19921688. 본 발제문의 도표들은 이 기사에서 인용했음.

2) 졸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문학, 어디로 가고 있는가」,『안과밖』26(2009), 287-288면.

3) 졸고, 「초기 영문학의 발생과 전개」,『안과밖』22(2007), 19-21면.

4) 역사학자인 파우스트총장의 취임사 역시 대학과 인문학에 대한 우리의 우려와 맥락을 공유하는 면이 있다. 일독에 값하는 명연설문이며, 관련대목을 좀 길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대학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는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우리가 과연 무엇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우리는 졸업률, 대학원 입학통계, 대학교육에 의해 ‘증가된 가치’를 측정한 계수, 연구비 액수, 교수 업적출판물 수 등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그러한 통계들은 그 자체로서 대학의 성취를 보여주지 못한다. 대학이 품어야 할 이상과는 더욱 더 무관하다. 그런 수치들을 아는 것은 중요하고, 그것은 우리가 하는 일들의 특정한 부분들을 잘 조명해준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그보다 훨씬 더 야심차고, 우리가 책임지는 바는 그보다 훨씬 더 설명하기 어렵다. 감히 정의를 내려 보자. 대학의 본질은 독특한 방식으로 과거와 미래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다. 단순히, 혹은 심지어 일차적으로 현재에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대학은 다음 분기의 결과들에 관심을 갖는 곳이 아니다. 대학은 심지어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관심을 갖는 곳도 아니다. 대학은 개인의 일생 전체의 틀을 만들어가는 학문, 수백만년에 걸친 유산을 전파하는 학문, 미래를 만들어가는 학문에 관여하는 곳이다. 대학은 독특한 방식으로 뒤로 또 앞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 방식은 대중들의 당장의 관심이나 요구와 맞지 않고, 심지어 맞지 않아야 한다. 대학은 영원한 것에 투자해야 하며, 이러한 투자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측정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대학은 살아있는 전통을 관리하는 집사와 같은 것이다.” Drew Faust, "Inaugural Address," http://www.harvard.edu/president/speech/2007/installation-address-unleashing-our-most-ambitious-imaginings.

5) 코어사업 공고문의 맨 첫 부분 “추진배경 및 필요성”, 그중에서도 제일 첫 항목의 주석이 바로 삼성경제연구소이다. 인용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등 통계적 분석기법으로는 예측이 곤란한 현상에 대해 인문학적 통찰력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인문학은 미래 경영환경 예측 활용에 매우 위력적인 도구”라고 규정하고 있다. 바로 이 연구소 소장이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전체교수회의의 특강에 와서 우리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오로지 “엔트리연봉 이십만불을 받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을 해서 필자의 분노를 산 바 있다. 졸고,「신자유주의 시대의 인문학, 어디로 가고 있는가」, 286면.

6) 한국산업기술진흥원,『2010 세상을 바꾸는 생각들: 학문간 융합 포럼 리포트』, 한국산업기술진흥원, 2010.

7) Frederick C Beiser, "Romanticism" A Companion to the Philosophy of Education. ed. Curran, Randall R, Wiley-Blackwell, 2003, pp. 130-141.

8) 졸고, 「초기 영문학의 발생과 전개」, 15-18면.

9) Frank Donoghue, The Last Professors: The Corporate University and the Fate of the Humanities, Fordham University Press, 2008, p. 4.

10) Martha C. Nussbaum, Not For Profit: Why Democracy Needs The Humanities, Princeton UP, 2010.

11) 졸고, 「인문학 평가, 어떻게 할 것인가」,『안과밖』37호(2014), 48-109면.

12) 독일은 2007년을 인문학의 해로 선포하고 대대적인 인문학 캠페인을 벌였다. 이것도 사실은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우월한 대학”(Excellent Universities) 지원정책에서 소외된 인문학 부문을 달래기 위한 성격도 있어서, 우리의 프라임-코어사업의 전초전을 보는 느낌도 없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의 인문학지원의 기본정신은 진지하게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The Year of the Humanities-An Overview. Federal Ministry of Education and Research, Germany. http://www.bmbf.de/en/7189.php, 2007. 졸저, 『미국과 독일의 인문학 지원정책연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11, 89면.

13) 졸저, 『미국과 독일의 인문학 지원정책연구』, 3-6면.

 

 

참고문헌

 

박찬길.「인문학 평가, 어떻게 할 것인가」.『안과밖』37(2014): 84-109.

-----.『미국과 독일의 인문학 지원정책연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11.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문학, 어디로 가고 있는가」.『안과밖』26(2009): 281-299.

-----.「영문학의 발생과 전개」.『안과밖』22(2007): 10-35.

중앙일보. “연 2조원 대학 지원, ‘독이 든 성배’되면 안된다.” 2016년 4월 21일.『중앙일보』사설인사이트.http://news.joins.com/article/19921688.

한국산업기술진흥원.『2010 세상을 바꾸는 생각들: 학문간 융합 포럼 리포트』. 한국산업기술진흥원, 2010.

Beiser, Frederick C. "Romanticism.." A Companion to the Philosophy of Education. Ed. Randall R Curran. Wiley-Blackwell,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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