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ytage Open Lecture
 



자서전적 화자의 생성: 워즈워스의 초기시를 중심으로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모든 시쓰기 작업은 자신도 모르게, 결과적으로 『서곡』(The Prelude)이라는 자서전 쓰기로 수렴한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워즈워스는 코울리지의 권유로 인류의 모든 지적 유산을 포괄하는 철학시를 자신의 시적 작업의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한다. 『서곡』은 그 서론에 불과한 작업이었다. 워즈워스는 그 『서곡』을 통해 과연 자신이 그러한 철학시를 감당할 만한 시적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시험해보려고 했지만, 그러한 시험은 그가 80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워즈워스는 결과적으로 평생에 걸쳐 자서전 프로젝트에 매달려있었던 셈이고, 그의 모든 중요한 시적 작업은 결국 『서곡』이라는 자서전으로 수렴하게 되는 것이다.

워즈워스의 철학시 프로젝트는 “서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끝났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서전쓰기를 통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그 원래의 의도를 얼마간 실현했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서곡』을 통해 단순히 자신의 일생을 기술하거나 자기 인생의 의미를 개인적으로 깨닫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적 자아의 성장과정을 통하여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을 증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코울리지(S. T. Coleridge)는 철학으로 세계를 읽으라고 요구했지만, 워즈워스는 자신의 삶에서 인류 전체의 운명을 읽었다. 워즈워스에게 자신의 삶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역사의 축도였고 역사발전의 패러다임이었다. 워즈워스는 자신의 삶을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 세계를 포괄하는 인류전체의 전형으로 삼았으며, 이런 의미에서 코울리지가 염두에 두었던 철학시의 이념적 기반으로 삼았던 독일 관념철학과 결과적으로는 동일한 지향성을 갖는다고도 할 수 있다.

워즈워스의 『서곡』은 개인의 삶으로 세계를 포괄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원의 역사로 읽고자 했다. 워즈워스의 시적 자아의 성장과 완성을 기록한 서사는 인류의 구원을 약속하는 계시록적 서사(Apocalyptic narrative)의 등가물이어야 했다. 워즈워스의 자서전작업은 좌절된 혁명의 역사를 자신의 시적 자아의 확립과정을 범례로 하여 성공과 성취의 역사로 다시 쓰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워즈워스의 자서전은 어떠한 논리적 구조로 성취와 완성의 역사를 담보하는가? 필자는 이미 발표한 논문에서 『서곡』을 “근대적 자서전”의 한 예로 들면서 『서곡』의 자서전적 논리를 그의 시학과 관련하여 설명한 바가 있다(박찬길 2001, 173-198). “근대적 자서전”의 전범이 되는 것은 루쏘(Jean J. Rousseau)의 『고백록』(The Confessions)인데, 그것은 “회고”와 “재활성화”를 통하여 진행되는 발견적이고(heuristic), 수행적이며(performative), 해석적인(hermeneutic) 과정으로서 삶을 “재현”(represent)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construct)한다. 워즈워스의 『서곡』은 이러한 근대적 자서전의 특성을 공유하면서도 루쏘의 고백록과는 달리 시적 자아의 완성이라는 목적(telos)으로 향해 가는 당위적 과정이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당위를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가?

그것을 납득시키는 것은 사실에 입각한 합리적 설명이나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자서전 작가 워즈워스가 자신의 삶에 대해 보여주는 “해석”의 힘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서곡』에는 “시간의 점들”(Spots of Time)이라는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작품 전체에 흩어져 있고, 외면적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이러한 경험들에는 시적 화자 “나”의 해석이 이루어지고, 그것은 『서곡』의 자전적 서사를 깨달음과 성취라는 목적으로 추동한다. 문제의 “시간의 점들” 구절을 포함한 11권의 봉화대 에피소드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소재로 하여 이루어지는 “나”의 해석이 어떤 역학을 가지고 있는지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워즈워스 연구에 있어서 『서곡』의 “내용”에 대한 수많은 연구들은 이러한 “해석”의 역학을 자기 나름으로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본 발표에서는 워즈워스의 자서전적 논리를 『서곡』 내부의 맥락에서 설명하기 보다는 작품 외부에서 워즈워스가 시인으로서 『서곡』을 완성해가는 집필과정, 특히 초기 워즈워스의 습작시기에 『서곡』의 화자 “나”를 생성해 나가는 과정과 관련하여 설명해보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서전의 화자 “나”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워즈워스가 프랑스혁명에 대한 이념적 헌신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전유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고, 당대의 민중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하여 개혁적 지식인 워즈워스가 느꼈던 도덕적 딜레마로부터 시인 워즈워스가 어떻게 낭만적 주체성을 형성해 갔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이기도 하다. 이것은 낭만주의 자서전의 저자가 자신의 삶의 서사 속에 거대한 인류의 역사를 포섭하는 과정이기도 할텐데, 범박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역사의 내면화 혹은 관념화, 정치적 보수화의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러한 내면화와 관념화는 워즈워스가 자신의 실제 삶에서 느꼈던 가장 내밀한 도덕적 고뇌와 맞닿아 있으며, 객관적으로는 보수화라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은 당대 민중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이를 문학적으로 전유하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아울러 감안해야 한다.

『서곡』이 워즈워스의 시적 자아의 성장사를 다룬 자서전이라면, 그것은 매우 실제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서곡』은 워즈워스의 실제 삶의 경험을 재료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자서전적이지만, 그 서사가 그가 실제로 시인으로 쌓아온 시적 경력, 즉 워즈워스가 실제로 『서곡』 “나”라는 화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행했던 시적 실험과정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자전적이다. 『서곡』의 화자 ‘나’는 갑자기 설정한 것이 아니라 『서곡』 이전의 시적 습작과정에서 다양한 시적 인물들이 합쳐져 만들어졌음은 『서곡』의 집필과정에 대한 면밀한 원문연구의 결과가 입증하고 있다(Parrish, "Introduction").

가령 『서곡』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한 「틴턴 사원」의 화자도 『서곡』의 화자의 중요한 원천이다. 필자는 이미 발표된 또 다른 글에서 「틴턴 사원」의 화자를 다양한 시적 장르의 화자들과 연관하여 분석한 바 있다(박찬길 2004). 「틴턴 사원」의 화자는 그 시를 쓴 시점인 1798년 7월로부터 그 이전 5년간의 시간을 회고하고 있는데, 워즈워스가 프랑스로부터 돌아와 『저녁산책』(An Evening Walk)과 『소묘』(Descriptive Sketches)를 출판한 1793년부터 「틴턴 사원」를 다시 방문한 그 시점까지 그가 시인으로서 실험했던 다양한 습작와 실험의 과정을 염두에 두고 읽어보면, 워즈워스가 「틴턴 사원」에서 “회고”하고 있는 것은 개혁적 지식인으로서의 워즈워스의 실제 삶이기도 했겠지만, 지난 5년간 그가 습작했던 몇 가지 시의 내용이기도 했다. 가령 「틴턴 사원」에는 저녁산책과 소묘처럼 풍경시도 있고, 「쏠즈브리평원시편」(Salisbury Plain Poems)에서 나오는 사회비판시도 있으며,자신의 삶을 서사로 정리하는 자서전적 시도 있고, 미래의 시점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축복하는 엘레지적(Elegy) 시도 있다. 결국 필자의 주장은 워즈워스가 이 시에서 되돌아보는 것은 최근 5년간의 습작과정과 그를 통해 성장한 자신의 시적 자아였고, 그런 의미에서 「틴턴 사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서전적 시일 뿐 아니라, 아주 특정한 의미에서 문학적 자서전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박찬길 2004, 311-334). 「틴턴 사원」에서 환기되는 여러 가지 시적 화자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문제들의 한 가운데에는 인간의 고통(human suffering)이라는 다소 애매한 어휘로 표현된 당대 민중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그것을 대면하고 있는 개혁적 지식인 워즈워스의 도덕적 공감과 고뇌가 자리잡고 있다.

워즈워스 시학에서 공감(sympathy)은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문제는 실제의 삶에서 조우하는 고통받는 민중에 대한 현실적인 공감을 문학적으로 어떻게 전유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여러 종류의 소외된 민중들이 소재로 등장하는 서정담시집의 여러 시편에서 구체화된다. 가령 「사이먼리」같은 시의 마지막 대목은 담시의 화자 자신이 갑작스럽게 서사의 주체에서 객체가 되면서(그러니까 담시를 갑자기 자서전으로 만들면서) 시적 주체가 민중과 교감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묻는다. 화자가 스스로 보여주는 답은 민중에 대한 공감이 그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곤경을 벗어나게 하는데 별무소용이라는 뼈아픈 자의식이 “슬픔”(mourn)을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민이 이루어지는 차원은 현실적인 맥락이 아니라 분명히 문학적인 맥락이다. 「사이먼리」의 화자가 보여주는 도덕적 관심은 어떻게 사이먼리를 제대로 구호할 수 있느냐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초점이 가기 보다는 그의 곤경을 문학적으로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것에 가있다. 그의 답은 “슬픔”이 도덕적 반응과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고통받는 민중에 대한 시적 화자의 공감과 도덕적 반응의 문제는 「무너진 오두막」(The Ruined Cottage)에서 좀 더 분명해진다. 이 시에는 마가렛이라는 전쟁미망인의 고통스러운 삶이 소개된다. 여기에는 도붓꾼(pedlar)이라는 유명한 화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이제는 죽고 없는 마가렛의 고통스러운 사연을 이 시의 형식적인 화자인 “나”에게 전해준다. “나”는 시 전체의 화자임이 분명하지만 실질적인 화자 도붓꾼이 전해주는 얘기의 독자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시는 마가렛의 사연을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서사의 핵심은 마가렛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좋은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마가렛의 인간적 고통을 문학적으로 어떻게 전유할 것인가, 또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문학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옳은가 하는 문제에 있다. 도붓꾼은 자신의 서사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엘레지의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분명히 하지만, 슬픔에 무책임하게 탐닉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건전한 반응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엘레지들과 다름을 강조한다(MS D 73-82행). 형식적 화자 “나”는 도붓꾼으로부터 인간의 고통에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반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사이먼리」에서도 서사의 주체였다가 갑자기 객체가 되는 시점의 전환을 보여주지만, 여기에서도 “나”는 형식적으로는 서사의 주체이지만 그 자신의 서사의 일부가 되어 마가렛에 대한 반응의 한 방식을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나”는 마가렛의 고통스런 삶에 깊이 공감하고 진실한 슬픔 속에 깊은 유대감을 느끼지만(이러한 반응은 엘레지가 가진 본래의 시적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붓꾼은 “나” 못지 않은 공감과 고뇌를 느끼면서도 그 도덕적 고민을 아름다운 자연의 미학적 인식으로 간단하게 넘어선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은 다양한 종류의 가난한 민중을 시적 묘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워즈워스 스스로 제기했던 질문이기도 했는데, 이에 답하기 위하여 워즈워스는 도붓꾼의 성장과정을 묘사한 시를 쓴다. 말하자면 도붓꾼의 특별한 성장과정을 설명함으로써 그에게 그러한 미학적 인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어떤 철학적 권위를 부여하려고 한 것이다(Butler 3-35). 이것은 워즈워스 자신이 『서곡』이라는 자서전을 통해 철학시의 저자가 될 수 있는 권위를 확보하려고 한 것과 상동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워즈워스가 도붓꾼의 성장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썼던 원고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시로 되었다가 결국에는 『서곡』의 “나”의 성장과정을 설명하는 대목으로 편입된다.

재미있는 것은 장차 『서곡』의 “나”도 되고, 『서곡』의 본론격인 은둔자의 철학적 화자로 발전하기도 하는 이 “도붓꾼”은 실상 그 자신이 민중이기도 했거니와 워즈워스의 시에서는 마가렛과 같은 인간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인물들과 깊은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전형적인 인물이 「컴버랜드의 늙은 거지」(Old Cumberland Beggar)라는 시의 “늙은 거지”이다. 이 시의 화자는 공감과 구호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매우 인상적으로 묘사하는데 가장 특이한 점은 사이먼리처럼 절대적인 빈곤과 고통에 시달리는 “늙은 거지”에게서도 인간적 위엄을 발견하고, 나아가서 거기에서 시적 창조성의 연원을 발견한다는 점이다(“기쁨의 저자” 구절 99행). 절대적 가난과 절대적 고통 안에서 거의 통상적인 인간성을 잃어버린 상태, 그러면서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게 사는 그러한 존재에게서 이상적인 시인의 자질과 시적 자아를 구성할 수 있는 토대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물군은 『서곡』에서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나”와의 의미심장한 조우를 통해 깨달음과 성장의 계기로 작용하지만, 그들이 “도붓꾼”과 갖는 친연성이 말해주는 것은 워즈워스의 자전적 화자는 시적 화자가 고통받는 민중에 대해 느끼는 깊은 공감과 도덕적 고뇌를 문학적으로 전유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점이다. 시적 화자가 「무너진 오두막」의 “나”처럼 고통받는 민중과 공감하고 슬픔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유를 통해 그 대상과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엘레지(Elegy)의 단계이며, 도붓꾼처럼 그 자신이 시적화자이면서 그 자신이 스스로 민중이 되어 공감과 슬픔의 대상이 된다면 그 순간 자서전적 화자(autobiographic narrator)가 되는 것이다. 엘레지의 화자가 엘레지의 대상이 되는 순간 엘레지는 자서전이 된다.

엘레지의 화자가 서사의 주체에서 객체가 되는 현상은 토마스 그레이(Thomas Gray)의 「시골교회에서 쓴 엘레지」(An Elegy Written in a Country Churchyard)에서도 볼 수 있고, 「틴턴 사원」의 “도로시(Dorothy) 부분”(112-159행)에서도 볼 수 있다(박찬길 2004). 또 『서곡』의 많은 “시간의 점들” 에피소드는 자서전적 화자가 고통받는 민중 혹은 그에 대한 생생한 기억과 조우하며 그들과의 신비로운 교감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자아를 성장시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민중의 고통을 문학적으로 전유하는 방식이다. 이것을 당대의 정치적 맥락에서 도덕적으로 냉혹한 처사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시적 자서전에서의 시적 화자가 기본적으로 당대 민중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에 대한 정직한 슬픔, 그리고 그에 대한 도덕적인 사유라는 맥락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서곡』의 시적 화자는 이처럼 매우 구체적인 의미에서 역사를 개인적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문학적으로 전유함으로써 형성되었고 그것만이 워즈워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구원의 역사로 제시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인용문헌)

Parrish, Stephen, ed. The Prelude, 1798-1799. Ithaca, Cornell UP, 1977.

Butler, James, ed. The Ruined Cottage and The Pedlar. Ithaca, Cornell UP, 1979.

박찬길.「근대적 자서전과 시적 고백」. 『안과밖』 11(2001): 173-198.

박찬길. 「근대적 자아와 낭만적 자서전: 『틴턴사원』다시 읽기」. 『지구화시대의 영문학』. 설준규, 김명환 엮음. 서울: 창비, 2004: 311-334.

 

2008년 11월 22일 영어영문학회 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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