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ytage Open Lecture
 

 

『서정담시집』해설

 

I.『서정담시집』은 어떤 시집인가?

 

1798년 가을에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와 사무엘 테일러 코울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에 의해 익명으로 출간된 『서정담시집』은 영국 낭만주의문학의 단초를 이루는 상징적인 시집이다. 이 시집의 초판 「발문(Advertisement)」에서 저자들이 분명히 밝혔듯이 이 시집은 당대의 시적 관습을 의도적으로 거스르는 일종의 시적 실험으로

의도되었고, 그 실험의 성격은 "서정담시"라는 일종의 모순어법적 제목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18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크게 유행하던 여러 종류의 "담시(Ballad)"에 "서정시(Lyric)"를 덧씌우려는 워즈워스와 코울리지의 시도는 체제와 전통을 거스르는 낭만주의의 반역적 성격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시적 실험은 좀더 넓은 의미에서 낭만주의운동의 정치적 동력인 프랑스혁명에 대한 지지와 좌절이라는 그들의

정치적 경력을 문학적으로 반영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1800년 판에 덧붙여진『서정담시집』「서문」은 이러한 실험적 의도를 하나의 독립된 시 이론으로 체계화하면서 낭만주의문학의 강령으로 간주되기 시작했고, 그 이래 『서정담시집』은 그 자체로 영국 낭만주의문학의 시발점으로 인식되었다.『서정담시집』이 가지는 이러한 문학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 시집은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도 없고, 대학의 강단에서도 워즈워스와 코울리지의 시적 실험의 핵심인 "서정담시" 즉 「구디 블레이크와 해리 기일」("Goody Blake and Harry Gill"),「가시나무」("The Thorn") 같은 작품보다는 「틴턴사원」("Tintern Abbey") 같은 자기고백적 서정시를 중심으로 강의해 왔다. 그 이유는 코울리지가 훗날 자신의 󰡔문학평전󰡕 Biographia Literaria에서 「서문」에서 천명된 시적 원칙들을 비판한 이래 많은 낭만주의 연구자들은 「서문」에 천명된 시적 원칙의 획기적 성격과 문학사적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실험적 원칙들이 정작 작품집에 실린 개별 작품들에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실천되었는가, 또 워즈워스 시 전체에서 "서정담시"라는 실험적 성격의 시들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가에 관해서는 대단히 인색한 평가를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 작품집은 초기 워즈워스의 경향을 보여주는 몇몇 시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틴턴사원」과 같은 위대한 예외 말고는 하나의 작품집으로서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고, 따라서 「서문」에서 언명한 시적 실험은 단지 시적 전통에 대한 반역이라는 전형적으로 낭만적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뿐, 실험과 실천으로서의 의미는 대단히 제한적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이번에 제시하는 서정담시집 완역본은 1800년 판으로서 유명한 워즈워스의 󰡔서문󰡕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워즈워스가 재판을 찍으면서 단행한 구성의 개편과 II권의 첨가가 반영되어 있는 판본이다. 1805년판이 작가가 개입된 최종판본이긴 하지만 배열과 구성만 조금 바뀌었을 뿐 1800년판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800년판은 그 󰡔서문󰡕을 포함한 󰡔서정담시집󰡕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최초의 완성판본이며, 따라서 󰡔서정담시집󰡕의 전모를 파악하고 그 문학사적 의의를 파악하도록 하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다.

 

II. 작가소개: 워즈워스와 코울리지

"우리는 그가 도착하는 광경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는 큰 길로 오지 않고,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길도 없는 풀밭을 가로질러 껑충껑충 뛰어내려왔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자신과 여동생 도로시(Dorothy)를 처음 방문한 코울리지의 모습을 이렇게 회고한다. 워즈워스가 40여년이 지난 다음에도 한 친구의 방문을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그 만남의 의미가 그에게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말해준다. 그 만남으로 인해 달라진 것은 워즈워스 한 개인의 삶만이 아니었다. 워즈워스가 회고하는 이 순간으로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그 자체가 영국낭만주의 운동의 시작과 끝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만남이 처음부터 이처럼 극적이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그들이 프랑스혁명에 대한 지지자로서 기대와 좌절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770년에 태어난 워즈워스는 조실부모하고(8세에 어머니, 13세에 아버지 사망) 친척집을 전전하다 앤 타이슨(Ann Tyson)이라는 후덕한 하숙집 여주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혹스헤드 문법학교(Hawkshead Grammar School)를 졸업한 후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의 세인트 존즈 컬리지(St. Johns College)에 입학한다. 그의 자전적 장시 『서곡』(The Prelude)에 따르면 그는 대학생활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다른 학생들처럼 성직이나 법률가라는 안정된 직업을 준비하는 대신 친구 로버트 조운즈(Robert Jones)와 함께 당시 혁명 1주년을 맞아 축제 분위기였던 프랑스로 도보여행을 떠난다. 이때 받은 깊은 인상으로 인해 워즈워스는 케임브리지를 간신히 졸업한 후 불어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간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워즈워스는 이때 두 사람의 중요한 인물과 만나는데, 하나는 훗날

캐롤라인(Caroline)이라는 워즈워스의 사생아를 낳은 외과의사의 딸 아네뜨 발롱(Annette Vallon)이며, 다른 하나는 그에게 프랑스혁명의 의의를 인식시키고 공화주의 이념을 전수한 마이클 보피(Michael Beaupuy)라는 혁명파 장교였다. 워즈워스가 프랑스로 건너가

배운 것은 불어만이 아니라 그의 인생에 영원히 각인될 사랑과 혁명이었던 것이다.

워즈워스는 영국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당대의 어떠한 개혁가들보다도 더 급진적인 정치관을 견지했다. 프랑스에서 귀국한 직후인 1793년 초에 집필한 「랜다프 주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A Letter to the Bishop of Llandaff)」에서는 루이 16세의 처형을 옹호하고,

다소간의 폭력은 자유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과격한 논리를 개진한다. 이러한 과격성 때문에 이 문서는 결국 출판되지 못했지만 당시 워즈워스는 프랑스의 혁명 열기가 곧 영국에도 미쳐 자유롭고 평등한 지복천년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프랑스혁명이 공포정치로 인해 피로 얼룩지고 나뽈레옹(Napoleon)의 등장으로 자유, 평등, 박애의 이상이 새로운 정복전쟁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자 결정적으로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워즈워스는 1795년에 친구인 피니(Pinney)형제가 제공한 레이스다운 로지(Racedown Lodge)에 여동생 도로시와 정착하는 것을 계기로 개혁가로서의 활동을 접고, 혁명의 실패가 가져온 충격과 좌절감을 달래며 일종의 은둔생활에 돌입한다. 워즈워스가 코울리지를 만난 것을 바로 이러한 은둔을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한편 워즈워스보다 2년 늦게 목사의 9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난 코울리지는 허트포드(Hertford)에 있는 크라이스트 병원 예비학교(Christ's Hospital Preparatory School)를 거쳐 워즈워스처럼 케임브리지 대학의 지저스 컬리지(Jesus College)에 입학했다. 학업보다 급진주의 정치에 더 매료되었던 워즈워스가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프랑스로 떠났던 것처럼 코울리지 역시 졸업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싸일러스 톰킨 콤버바흐(Silas Tomkyn Comberbache)라는 가명으로 군에 입대한다. 코울리지 같은 조숙한 천재에게 군 생활은 당연히 맞지 않았고, 형들의 노력으로 코울리지는 곧 민간인의 신분으로 되돌아오지만 결국 1794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을

중퇴하고 만다. 코울리지는 이때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던 로버트 싸우디(Robert Southey)를 만나는데, 이들은 전망없는 영국을 떠나 미국의 써스케하나강(Susquehanna River) 유역에 플라톤의 “공화국”과 같은 이상적인 공동체를 건설하는 유토피아적 계획을 함께

추진하게 된다. 팬티소크라시(Pantisocracy)라고 명명된 이 이상적 공동체는 12명의 지식인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그 구성원은 하루에 서너 시간만 노동에 종사하고, 나머지 시간은 명상과 토론, 창작에 전념하기로 되어 있었다. 워즈워스 못지않게 열렬한 프랑스혁명 지지자였던 코울리지에게는 이러한 공동체운동이야 말로 프랑스혁명의 타락을 보상해 줄 대안이었고, 이를 위해 싸우디의 큰 처제인 사라 프리커(Sara Fricker)와 결혼할 만큼 이것의 실현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했다. 웨일즈(Wales)에 이러한 공동체를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문제를 놓고 싸우디와 사이가 벌어진 코울리지는 1795년에 브리스톨(Bristol)에서 당시의 정치와 종교에 관해 일련의 대중강연을 했고, 이로 인해 “민주주의자”라는 “오명”을 얻어가고 있었는데, 워즈워스가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 때였고, 그가 한 눈에 알아본 워즈워스의 천재성은 코울리지로 하여금 싸우디가 아니라 워즈워스야 말로 평생의 정신적 동지이며, 정치보다는 문학이 그의 유토피아적 야심을 실현하는데 더 적합한 분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러한 깨달음이 코울리지로 하여금 큰 길을 마다하고 울타리를 가로질러 한달음에 워즈워스 남매에게 달려가게 했던 것이다.

 

II. 『서정담시집』의 출판 경위와 배경

 

앞서 설명했듯이 『서정담시집』의 출간의 계기는 1797년 6월 초 코울리지가 친구 집 별장(Racedown Lodge)에서 살고 있었던 워즈워스남매를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역사적인 만남에서 두 사람은 상대방의 천재적인 재능에 매료되었다. 코울리지는 워즈워스에게 자기가 최근에 완성한 비극 『오소리오』(Osorio)의 한 부분을 낭송해주었고, 워즈워스는 훗날 우리에게『무너진 오두막』(The Ruined Cottage)으로 알려지게 될 전쟁미망인 마가렛(Margaret)의 서글픈 사연을 담은 산문시를 읽어주었다. 코울리지는 워즈워스를 "자기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며 그를 셰익스피어나 쉴러(Schiller)에 비교했고, 워즈워스남매 역시 코울리지를 이구동성으로 "놀라운

인물"이라고 할 만큼 높이 평가했다. 며칠간의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코울리지는 섬머셋(Somerset)에 있는 자기 집에서 4마일 떨어진 Alfoxden에 전셋집을 마련하고

워즈워스남매를 초청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약 1년간 코울리지와 워즈워스 남매 세 사람은 매우 긴밀한 지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거의 공동생활에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된다. 20대 후반의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북방사투리"를 써가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함께 쏘다니면 알 수 없는 토론을 하는 광경은 시골사람들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고, 이들을 수시로 방문하는 개혁가들은 전쟁을 수행하던 영국정부의 공안담당자의 관심을 끌

정도였고, 급기야 공안당국은 이들의 정체와 임무를 파악하기 위해 비밀리에 수사관을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이 도모하는 일은 마을사람들이나 정부당국이 의심하듯 프랑스간첩과의 접선이나 그들의 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정찰임무가 아니라 영문학사상 유례없이 긴밀한 지적 공동체를 형성하여 역사적인 문학적 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협업의 가장 직접적인 결과물이 바로 『서정담시집』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담시"를 함께 써보기로 한 것은 처음부터 무슨 역사적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상 이들이 "퀀톡힐즈(Quantock Hills)"에서 이웃하며 살게 되면서 처음으로 했던 일은 담시가 아니라 각각 드라마를 한 편씩 쓰는 것이었다. 워즈워스는 "변경사람들(The Borderers)"라는 오델로(Othello)를 연상시키는 비극을, 코울리지는 『오소리오』를 각각 완성했고 두 사람은 이 두 작품들을 런던의 무대에 올리려고 시도했었다. 1797년 11월에는 두 작품의 완성을 자축할 겸 "스톤계곡(the Valley of the Stones)"이라는 곳으로 함께 도보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했었는데 문제는 비용이었다. 이들이 가장 쉽게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당시에 가장 잘 팔릴 만한 형태의 시를 잡지에 투고하여 원고료를 받는 것이었고,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당대의 잡지의 문학란을 대부분 채우고 있었던 "담시"를 한 편 함께 써서

새로 생긴 『월간비평』(Monthly Review)이라는데 투고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쓰여진 것이 『서정담시집』 초판의 맨 앞을 장식하고 있는 「늙은 수부」(The Ancient Mariner)"라는 작품이었다. 결국 워즈워스는 이 작품을 공동집필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손을 떼는데,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첫 번째 공동기획을 수행하면서 협동작업의 효율성이나 창의성보다는 그들의 기질이나 경향의 차이를 매우 심각하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이 결국 최초의 『서정담시집』의 간판작품으로 출판되긴 했지만 이 작품은 진정한 의미에서 두 시인의 협업의 결과는 아니었고, 또 나머지 스물 두 편의 시의 경향을 대표한 것도 아니었다. 11개월 후에 실제로 출판된 『서정담시집』의 계획이 구체화된 것은 두 시인이 쓴 드라마가 모두 런던의 극장에서 거절을 당한 이후였다. 드라마를 파는데 실패한 두 시인은 이제는 단지 도보여행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생활비 마련이 급선무였고, 그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가진 원고들을 어떤 형식으로든 출판업자에게 팔아야 했다. 『서정담시집』 초판의 제목이 『서정담시들과 다른 시편들』(Lyrical Ballads and Other

Poems)인 것에서 드러나듯이 이 시집이 단지 새로운 종류의 "담시" 뿐만이 아니라 워즈워스가 코울리지와의 공동생활을 통하여 실험하고 있었던 새로운 경향의 "다른 시편들" 역시 중요한 비중으로 포함하고 있었고, 이것은 최초의 『서정담시집』이 일정한 원칙에 입각한 시적 실험에 의해 조직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어떻든 팔릴 만한 시들을 상당량을 모아서 책 한 권으로 시집을 묶어내야 했던 시인들의 현실적인 필요성을 더

잘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두 시인의 협업은 이 이후 "서정담시"와 같은 쟝르실험에 함께 참여한다기 보다는 워즈워스의 시적 자서전인 『서곡(The Prelude)』을 포함하는 『은둔자(The Recluse)』프로젝트와 같은 "철학시"의 집필계획에서 드러나듯이, 코울리지는 이론과 사상을 제공하고, 워즈워스는 집필을 담당하는 식으로 달라지는 데, 이것 역시 두 사람의 협업은 하나의 이상으로 남을 뿐, 코울리지의 존재는 원래의 협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보다는 역설적으로 워즈워스의 가장 워즈워스적인 성격을 일깨우고 독창적 발전을 자극하는 계기로 더 많이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협업"의 전개과정은 급기야 1810년 두 사람간의 돌이킬 수 없는 충돌과 불화로 이어지고 그 이후 쓰여진 코울리지의 Biographia

Literaria는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협업의 출발점이자 상징적 산물인 『서정담시집』의 시적 실험의 이론적 근거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두 시인과 도로시가 "퀀톡힐즈"에서 이루었던 긴밀한 지적 공동체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두 시인의 창조적 협력은 "호반파(lake school)"를 포함하는 18세기말 이상주의적 공동체운동의 한 원형이었고 『서정담시집』이 그 역사적인 이정표였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서정담시집』이 의도하는 "시적 실험"의 촛점이 "서정적 담시"라는 쟝르실험에서 시적 언어로서의 평민의 언어라는 스타일과 시 언어의 문제로 옮아가는 것은 「늙은 수부」가 간판작품에서 밀려나는 과정, 그리고 워즈워스가 코울리지의 착상에서 출발하여 점차적으로 자기의 고유한 문학적 과제들을 발견해가는 과정과 깊은 연관 속에서 동시에 일어났던 일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서정담시집』의 단초를 이룬 「늙은 수부」의 집필동기이 도보여행의 비용충당이었다면 『서정담시집』의 출간도 역시 금전적인 동기에 의해 촉발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워즈워스남매와 코울리지의 "수상한" 행동과 지역주민들의 의심은 결국 정보당국의 내사로까지 이어졌고, 이러한 정황으로 인해 워즈워스남매는 "알폭스덴"의 전세계약을 갱신하는 데 실패하게 되고, 두 시인과 도로시는 독일로 떠날 것을 결심한다. 이들의 독일행은 외국어를 배우고, 철학공부를 한다는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당시의 독일이 진보적인 사상가에게 관대하다고 인식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신적으로는

일종의 정치적 망명이나 다름이 없었다. 두 시인은 독일로 가기 위한 비용을 마련해야 했고, 이를 위해 당시 가지고 있던 원고들을 가지고 출판업자들과 교섭하던 끝에 결국 우리가 알고있는 『서정담시집』의 출간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순조롭지 않아서 인쇄를 담당했던 브리스톨의 인쇄업자 코틀(Cottle)은 인쇄하는데 동의를 했으면서도 그 상업적인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출판자체를 보류하다가 결국 판권을

런던의 출판업자 아치(Arch)에게 양도했고, 1798년 10월 4일자 런던의 신문에는 "『서정담시와 다른 시편들』, 런던, 그레스처치의 J.&A. Arch를 위해 출판됨"라는 표지를 가진 저자를 밝히지 않은 시집의 출간기사가 실렸다. 딱딱한 종이표지를 가진 이 책의 가격은 5실링이었다.

 

IV. 『서정담시집』의 민중성과 영국의 낭만주의시

 

토마스 풀(Thomas Poole)의 지원을 받아 써머세트(Somerset)에 위치한 네더 스토위(Nether Stowey)에 농가를 얻어 살고 있었던 코울리지는 그곳에서 4마일 떨어진 알폭스덴(Alfoxden)이라는 곳에 집을 얻어 워즈워스 남매를 불러들인다. 이곳에서 워즈워스 남매와 코울리지는 밤낮을 가리지않고 정치와 문학, 철학에 대해 토론하고 창작에 몰두한다. 여기에는 찰즈 램(Charles Lamb)과 같은 문인, 존 텔웰(John Thelwell)과 같은 급진적 개혁가들도 때때로 찾아와 이들의 은둔생활에 참여했고, 그 때문에 이곳은 정부로부터 요주의 인물들의 집단적 거주지로 주목받게 되고 급기야 정부의 비밀감찰요원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1797년과 1798년에 걸친 이 시기는 두 시인에게 있어서 문학적 천재성을 가장 집중적으로 발휘했던 “기적의 해(annus mirabilis)"였고, 그 결과 우리는 익명으로 출판된 그들의 『서정담시집』을 얻게 되었으며, 이로써 영국의 낭만주의문학이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정담시집』의 출현을 낭만주의문학의 출발점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 시집에 실린 유명한 「서문(Preface)」 때문이다. 1798년의 초판본에서는 「발문」이라는 이름의 짤막한 글만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이 시집에 실린 작품들이 대부분 중간계급과 하층계급의 일상언어가 시적 쾌락을 주는데 얼마나 적합한가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흥미 있는 주제라면 어디에서라도 소재를 취할 수 있는 것이 시의 특권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것이 혹시 점잖은 독자들의 비위를 거스르더라도 양해를 바란다는 식의 겸손한 주장으로 출발했었다. 그러나 2년 후, 이 시집에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재판을 찍게 되자 워즈워스는 자신을 이 시집의 유일한 저자로 밝히는 것은 물론 덧붙여진 두 번째 권은 완전히 자신의 시들로 채워 넣었고, 자신이 주도한 시적 실험을 체계적으로 옹호하는 「서문」을 붙이게 된다. 1802년에 다시 한번 내용이 확충되어 완성되는 이 「서문」은 흔히 영국낭만주의운동의 선언문으로 받아들여진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서문」에서는 조심스럽게 개진되던 저자의 실험이 새로운 시에 대한 강령으로 선포되는 것이다. 우선, 모든 좋은 시는 “강력한 느낌이 스스로 넘쳐흐른 것(spontaneous overflow of powerful feelings)"이라는 정의로 시를 기존의 관습적 형식으로부터 원천적으로 해방시켰으며, 그에 따라 시인도 뮤즈의 영감을 받아 페가수스(Pegasus)를 타고 상상의 세계를 떠도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사람(Man speaking to men)"이며, 그들이 가장 창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도 고전에 대한 교양으로 풍성해진 유식한 문학언어가 아니라 농촌의 낮은 계층의 삶에 기반을 둔 언어, 즉 촌부의 일상어 라는 것이다. 1802년의 개정판에서는 시를 “모든 지식의 숨결이자 보다 섬세한 정신”으로, 시인을 “감정과 지식으로 인간 사회라는 광대한 제국을 통합하는 자”로 규정하면서 시와 시인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문학 엘리뜨 주의의 혐의를 받게 되기도 하지만, 「서문」으로 확립되는 시학의

핵심은 중산층 이하의 민중의 언어와 삶을 그들의 예술행위의 중심에 놓는 민주주의적 충동이었다. 이것은 매쓔즈(William Mathews)와 같은 그의 친구와 개혁적 성향의 잡지를 창간하여 영국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도모하게 했던 워즈워스의 혁명적 정열, 그리고 친구이자 동서인 싸우디와 함께 현실적 유토피아인 "팬티쏘크라씨(Pantisocracy)"를 추진했던 코울리지의 정치적 이상주의가 현실 속에서는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학적 기획에 고스란히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워즈워스와 코울리지가 󰡔서정담시집』을 통하여 도모했던 문학적 실천은 흔히 말하듯 좌절된 정치에 대한 예술적 보상이 아니라 수년 전 출판된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의 『인간의 권리』(The Rights of Man)만큼이나 폭발적 정치성을 내재한 언어 혁명이었다. 고전교육을 받을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평민의 평범한 일상어가 체제논쟁의 도구가 될 만큼 효과적인 정치적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 『인간의 권리』였다면, 그들의 언어가 진지한 예술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시적 언어가 될 수 있음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서정담시집』이라는 문학적 기획의 정치적 목적이었다. 워즈워스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마이클 보피가 가난에 찌든 소녀의 모습을 가리키며 “저것이야말로 우리가 싸움을 하는 이유다!(‘T is against that /That we are fighting!)(『서곡』, 9권 517-518) 외친 것과 마찬가지로 『서정담시집』에 나오는 수많은 거지와 버림받은 여인들과 굶주린 어린이들은 도덕적 교화의 대상이나 미학적 묘사의 재료가 아니라 문학적 형상화를 통하여 그 인간적 존엄을 되찾아 줄 인간적 주체들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 낭만주의의 시발점인 『서정담시집』은 혁명이 좌절된 이후에도 그 명분을 잃지 않는 문학적 인권선언이라 할 만하다.

 

V.「발문」과 「서문」: 시적 반역과 낭만주의적 시학

 

1800년의 재판에서 「서문」대치되는 1798년의 「발문」은 짧지만 출판 당시의 워즈워스의 시적 의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서이다. 이 글의 주요 논점은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다음에 나오는 시들 중 다수는 실험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 시들은 사회의 중간계급이나 하층계급의 대화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시적 즐거움이라는 용도에 어느 정도로까지 쓰일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아 쓰여졌다. 워즈워스가 이 시를 쓰던 18세기 말까지만 해도 시는 요즘처럼 운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 전체를 뜻하는 것이었고, 대체로 그 형식적인 특징으로 잘 규정되는 장르였다. 특히 신고전주의의 영향으로 ode, elegy, pastoral, satire 등 과거 그리스 로마시대의 작품들의 형식들이 재조명되어 새로이 창작되었고, 그 각각의 종류마다 그에 고유한 주제, 연의 형식이나 운율 등이 있어서 당시의 시는 매우 잘 정의되어 있는 문학적 양식이었다. 그러한 형식에 들어맞는 언어 역시 미리 정해져 있어서, 그것들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어와는 달리 특정한 방식으로 양식화되어 있는 언어였다. 그리고 거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문학론 중 "스타일 분리의 법칙"이 엄격하게 적용되었음은 물론이다. 워즈워스는 이 시의 기본적 의도를 "실험"으로 규정함으로써 당시의 시적 관습이 여기서 존중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는데, 그 실험의 요체는 일차적으로 일상언어를 시어로 채용함으로 양식화된 시적 언어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었지만, 그 실험이 "혁명적" 성격을 가지는 "시적 반역"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채용하려는 일상어가 그냥 일상어가 아니라 "중간계급이나 하층계급"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워즈워스가 이 글을 쓴 시점은 혁명이념을 막으려는 영국이 프랑스와 전쟁을 한지 5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영국 내에서는 혁명의 이념에 동조하던 (워즈워스나 코울리지와 같은) 개혁가들의 의회개혁운동이 정부의 탄압으로 잦아들어가고 있었던 때였다. 1798년 1월에 있었던 나폴레옹의 스위스 침공은 프랑스와 자유, 평등, 박애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적 혁명의 주체가 아니라 또 하나의 호전적 제국임을 분명히 보여줬고, 이를 기점으로 프랑스혁명에 동조하던 영국 내 개혁적 지식인들은 좌절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 역시 독일로의 "망명"을 도모하는

와중에도 프랑스혁명의 추진주체였던 "중간계급 아니 하층계급"의 언어를 자신의 시적 실험의 언어적 표준으로 삼겠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은 워즈워스가 절망적인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새로운 문학적 기획을 반체제적인 정치적 입장에 기초하여 추구하겠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5년 전 프랑스혁명을 비판한 랜다프(LLandaff)주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비록 보내지지는 않았지만) Edmund Burke에 대한 Thomas Paine의 비판을 연상케 하는 혁명적 논리를 전개하기도 했지만, 워즈워스는 당장의 정치적 좌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새로운 시적 기획의 중심에 여전히 중간계급과 하층계급에 대한 계급적 연대감을 앞세우고 있다. 시적 관습에 대한 "반역"은 혁명적 대의를 거스르는 영국정부에 대한 "정치적 반역"의 연장선상에서 시도된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워즈워스의 혁명에의 동조가 왕의 처형까지 정당화하고 정치체제의 완전한 재구성을 옹호할 만큼 근본적이었다는 점은 이러한 시적 실험이 단지 일회성의 시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의 개념을 송두리째 다시 정의하는 단계까지를 지향하는 대단히 급진적인 것이었다는 점과도 잘 대응된다. 워즈워스는 이 시의 자들에게 기존의 시에 대한 관념에 연연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하면서 자신의 시적 실험의 내용적 목표를 이렇게 밝힌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시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개의치 말고) 이 시들이 과연 인간의 감정과 인간의 성격과 그리고 인간적 사건들을 제대로 묘사하는

지를 자문해 주었으면 한다. 워즈워스는 자신이 "중간계급과 하층계급"의 언어를 시어로 채용한다고 했으면서, 그것을 "중간계급과 하층계급"에 속한 사람들만의 감정이나 그들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일반적 "인간의 감정과 성격"을 표현하는 보편성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시론에 혁명적 지향성을 명확하게 각인한다. 프랑스혁명의 이상이 구체제의 억압적 계급구조를 청산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보편적 인간의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한다는 것이었다면, 워즈워스의 시적 실험은 문학적 계급구조(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설정한 시의 종류에 따르는 위계질서) 와 언어적 계급구조(스타일 분리의 법칙)를 타파하고 자신의 새로운 시집을 통해 보편적 인간의 언어가 보편적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는 시적 공화국을 이룩하려고 했던 것이다.

흔히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강령으로 일컬어지는 「서문」은 워즈워스의 이름을 처음으로 명시한 2판에 처음 쓰여졌다. 이 문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며 낭만주의 시학의 단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바로 "모든 좋은 시는 강력한 느낌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이라는 귀절이다. 이 귀절로 인하여 낭만주의시는 학식이나 이론이 없이 감성에만 호소하는 것처럼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귀절도 앞뒤 맥락을 잘 살펴보면, 그

의미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한 시들과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적어도 한가지의 차이점으로 구분될 것인데, 그것은 바로 그 시들은 각각 가치있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언제나 격식에 맞게 착안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시를 쓰기 시작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사고의 버릇이 나의 감정을 일정하게 형성했고 그 결과 그러한 감정들을 강력하게 불러일으키는 대상에 대한 나의 묘사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음이 결국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에 있어서 내가 잘못되었다면 나는 시인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 왜냐하면 모든 좋은 시는 강력한 감정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주제를 가진 시든 간에 그것이 조금이라도 가치있는 시라면 그것을 쓴 사람은 언제나 보통이상의 유기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길고 깊게 생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유명한 귀절의 전후맥락을 잘 살펴보면, 워즈워스의 의도는 감성에 의존하는 비지성적 시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감정이 시를 쓸 때 작용하는 가장 직접적인 동인이긴 해도, 그 감정을 형성한 것은 시인의 "사고의 버릇"이며, 따라서 아무리 겉으로는 저절로 분출하는 감정의 표출인 것 같은 시도 알고 보면 그 감정들을 조건짓는 요인인 "사고"와 무관할 수 없고, 그러한 사고는 반드시 시에 어떤 "목적"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예상과는 달리 워즈워스의 시는 신고전주의에 도전했다고는 하나 18세기 고전주의문학의 도덕적 성격을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도덕적 지향성을 시적 발언으로 표출하느냐 아니면 독특한 감정적 언어로 간접적으로 표현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 문서를 유명하게 만든 귀절은 다소 맥락에 맞지 않게 자주 인용되는 시에 대한 이러한 정의 말고도 많다. 무엇보다도 1798년의 발문에서 천명한 시어에 관한 급진적인 견해를 확대하고 발전시킨 시적 소재와 언어에 관한 민중적 견해는 한 시대의 획을 긋는 기념비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시들을 쓰면서 스스로 설정했던 주된 목적은 일반적인 생활로부터 사건들과 상황들을 선택하여 가능한 한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말 중에 골라 사용하여 그것들을 서술하거나 묘사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것들을 상상력으로 채색하여 평범한 것들이 (독자들의) 마음속에 색다른 방식으로 제시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아니 무엇보다도, 그것들 속에서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진실되게 우리 본성의 기본적인

법칙들, 주로 우리가 흥분상태에서 관념들을 연관시키는 방식과 관련된 법칙들을 추적함으로써 이러한 사건들과 상황들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 내 목적이기도 했다. 나는 대개 하층의 시골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런 조건에서 마음속 본연의 감정들이 성숙할 수 있는 더 좋은 토양을 발견할 수 있고, 제약을 덜 받으며, 더 쉽고도 더 강렬한 말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삶의 조건에서 우리의

기본적인 감정들이 보다 단순한 상태에서 공존하면서, 아마도 보다 정확한 사고의 대상이 되고, 보다 강력하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기본적인 감정들과 시골의 직업들이 반드시 갖기 마련인 특성에서 비롯된 시골의 생활방식은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보다 오래 지속된다. 마지막으로, 바로 그런 조건에서 인간의 감정들이 자연의 가장 아름답고 영원한 형상들과 결합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어 역시

이런 사람들의 말에서 취해졌는데 (물론 그런 말이 가진 실제적인 결함들, 그리고 그것들을 계속해서 싫고 역겹게 만드는 납득할 만한 원인들을 제거함으로써 순화시키긴 했지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말의 가장 좋은 부분을 발생시키는 가장 좋은 대상들과 시시각각 교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사회적 지위와 그들이 교류범위의 단일성과 협소성으로 인하여 사회적 허영의 영향을 덜 받고 따라서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단순하고

꾸며지지 않은 표현으로 전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반복되는 경험과 일정한 감정들로부터 우러나온 그러한 말은 시인들이 흔히 그런 말을 대치하여 사용하는 말보다 더 영원하고, 훨씬 더 철학적인 말이다. 시인들은 사람들의 공감으로부터 분리되면 될수록, 스스로 만들어 낸 변덕스러운 취향과 변덕스러운 식욕에 음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자의적이고 금방 변해버리는 표현의 습관에 탐닉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과 자신의 예술을 명예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발문」에서는 『서정담시집』의 "실험"의 핵심을 "하층계급과 중산계급의 대화의 언어"가 얼마나 좋은 시어가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그런 언어를 통하여 기존의 시적 관습을 통해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일반적인 인간의 심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는데, 「서문」에 와서는 양식화된 시어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 방어적인 논리를 피는 것을 넘어서서 오히려 범위가 더 좁아진 "하층의 시골사람들의 말"을 자신이 시인으로서

지향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어, 즉 "더 영원하고, 훨씬 더 철학적인 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의 근거는 사실상 프랑스혁명 이래 워즈워스가 여러 단계를 거쳐 가지게 된 급진적 개혁가로서의 정치적 지향성이 분명하지만, 여기서는 흥미롭게도 그러한 정치적 관점보다는 고전주의적 자연-예술관(자연은 그 자체로 완벽한 질서를 가지고 있고, 모든 아름다움의 원형이라는 것, 그리하여 모든 예술가의 임무는 그러한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라는 것)에 일종의 자연주의적 언어관(언어는 자의적인 기호가 아니라 그것이 나타내는 대상으로부터 발생된 것이라는 것)을 결합시킨 논리를 제시한다. 이러한 어정쩡한 주장은 훗날 많은 비판을 촉발하게 된다. 우선 「서문」에서는 이런 주장을 했지만, 실제 시집에 들어있는 『서정담시집』의 시어는 시골사람의 소박한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코울리지의 주장은 이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되는 가장 핵심적이고 치명적인 비판이었다. 또한 견강부회로 갖다 붙인 이런 언어관은 워즈워스가 자신의 시적 실험이 가질 수 있는 정치적 함의를 은폐하기 위한 수사법이었다는 식의 비판도 있을 수 있다. 『서정담시집』 하나만 놓고 본다면 그러한 비판들이 타당한 면이 있지만, 『서정담시집』 이후 워즈워스의 발전과정을 보면, 범신론(Pantheism)적 자연주의, 자연주의적 언어관 등이 그의 시적 기획에 중요한 일부로서 자리잡는 것을 감안할 때 워즈워스의 이러한 주장은 우연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시어에 대한 새로운 규정과 함께 이 문서를 기념비적으로 만든 또 하나의 귀절은 시인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다.

 

시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시인은 누구에게 말하는가? 우리는 시인에게 어떤 말을 기대하는가? 시인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사람이다. 시인은 물론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기대되는 것보다 더 생동하는 감수성과 더 많은 감정과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더 많은 지식을 가졌으며 더 포괄적인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인은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의 영혼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게 즐거워한다. 우주의

운행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의지와 감정에 대해 명상하기를 좋아하며, 그것이 없는 곳에서는 습관적으로 그러한 의지와 감정을 스스로 만들어내려는 충동을 느낀다. 이러한 특성과 더불어 시인은 눈앞에 없는 것이 마치 있는 것처럼 그것들에 의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영향을 받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러한 감정을 혼자서 자기 안에 불러일으키는 능력인데, 그것은 실제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감정과 똑같을 수야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통해서 자기 혼자 느끼는 것보다는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일반적인 공감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특히 더) 훨씬 더 실제 사건이 만들어내는 감정과 닮았다. 이런 이유로, 또 습작을 통하여, 시인은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 특히 직접적인 외부의 자극 없이도 스스로 선택하거나 아니면 자기 정신의 구조에 의해 자기 안에서 생겨나는 그런 생각과 느낌을 보다 원활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습득했다.

 

시의 소재와 그 언어를 시골사람의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과 같은 맥락에서 워즈워스는 시인을 그들과 다름 없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사람"이라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평등주의적 시학을 완성한다. 시를 만드는 시인이나 시인이 구사하는 말이나 그 말의 소재가 되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높이에 서있는 민중인 것이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특별한 천재로서의 시인이라는 낭만주의 특유의 엘리뜨적 시인관의 원조인 워즈워스가 이러한 평등주의적 주장을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당시의 워즈워스는 정치적으로 좌절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공화주의적 관점을 가진 개혁적 지식인이었고, 그의 「서문」은 시종일관 그의 민주주의적 지향성에 입각하여 쓰여졌으며, 기층민중과 어떻게 진정하게 공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이 당시 워즈워스에게 가장 중요한 문학적 과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시인의 자기규정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제시된 새로운 시인관에서 특이한 점은 그러한 평등주의적 함의보다는 그 정신적 능력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시인은 밖에서 일어난 일과 밖에 존재하는 사물에 대해 반응하기도 하지만, 워즈워스의 시인은 오히려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마치 그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시인을 시인으로 만들어주는 특유의 정신적 자질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훗날 역사적 현실에 억매이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낭만적 상상력을 규정하는 하나의 단초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떤 행동과 상황에서 비롯된 느낌이 그 행동과 상황이 중요해지는 것이지, 행동과 상황이 그 느낌을 중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문」은 개혁가 워즈워스의 평등주의적 시학의 완결판이기도 하지만 이미 그 안에는 그러한 역사적 인식을 넘어서는 낭만적 상상력의 맹아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낭만적 상상력에 대한 믿음 --즉 시가 꼭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지 않더라도 그 직접적인 목적인 "시적 즐거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작용하고, "인간성을 지탱하는 바위"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인간에 봉사하는 시에 대한 기념비적 옹호이지만 동시에 초기 낭만주의의 건강한 역사의식을 넘어서서 반역사적이고 주관적, 관념적인 낭만적 자기인식을 가져오는 단초이기도 하다.

 

VI. "서정담시"란 무엇인가?

 

『서정담시집』의 명성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서정담시집』 자체보다 그 「서문」이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것이다. 『서정담시집』이 전체로서 학문적인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집 전체가 주는 의미나 그 안에서 개별 작품들의 배열과 상호연관성 등이 갖는 의미 같은 것은 가령 블레이크의 『순수와 경험의 노래』 The Songs of Innocence and Experience와 같은 시집과 비교해볼 때 매우 취약하다는 점도 특이하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워즈워스가 코울리지와의 공동작업을 자기의 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문」을 썼고, 「서문」은 그들이 이 시집에서 시도하는 시적 실험의 핵심을 「늙은 수부」와 같은 "서정담시"라는 쟝르실험에서 시인과 시어, 시적 소재의 평등주의적 함의를 강조하는 쪽으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서문」과 "작품들"간의 괴리는 워즈워스를 두고두고 괴롭히는 약점인데, 그 중에서도 명색이 "서정담시"이면서도 워즈워스의 이름이 명시된 1800년판에는 말할 것도 없고, 1798년 초판에서도 정작 모든 면에서 "서정담시"라고 합의할 수 있는 작품은 코울리지의 「늙은 수부」를 제외하고는 「구디 블레이크와 해리 기일」, 「가시나무」, 「바보소년」세 작품 뿐이고, 그밖에 학자에 따라 「사이먼

리」나 「떠돌이 여인」(Female Vagrant), 「우리는 일곱 명」(We are Seven), 「마지막 남은 양」(The Last of the Flock)을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주 제목으로 붙은 "서정담시"가 총 23편중 4편에 불과하다는 것은 대단히 특이한 일이다. 양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서정담시"를 어떻게 정의하든 그것과는 내용과 형식 면에서 공히 가장 먼 반대편 극단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틴턴사원」(Tintern Abbey)(실제로도 제일 마지막단계에서 편입되었음)같은 시가 이 시집에 실린 개별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시적 실험으로서 의도된 "서정담시"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시적 실험으로서의 "서정담시"란 기본적으로 「늙은 수부」를 쓴 코울리지의 것이었고, 「발문」에서 두 시인간의 창조적인 역할분담 (한 사람은 초자연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다른 한 사람은 자연스러운 것을 신비롭게 묘사하기로 한다는)은 시집을 구상하던 초창기 코울리지의 것이었을 뿐 워즈워스는 「늙은 수부」의 창작에서 손을 떼면서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는 결론을 낼 법도 하다. 그러나 당시의 출판업자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서정담시"라는 개념이 주제목으로 유지되었고 워즈워스 역시 코울리지와 같은 개념으로는 아니라도 자기 나름으로 이야기시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서정담시집』을 다루면서 「서문」의 문학사적 의미나 그 평등주의적 시학에

치우쳐서 "서정담시"의 장르실험 자체에는 상대적으로 학문적 관심을 덜 기울여 왔다고도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위에서 논의한 「서문」의 평등주의적 시학도 "담시"에 대한 쟝르 실험과 무관하지 않다. "담시(ballad)"중에서도 "민속담시"(folk ballad), 혹은 "전통담시"(traditional ballad)라는 형식의 담시는 가장 오래된 형태로서 그 형식과

내용이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 인간적 감정에 호소한다는 특성이 있었으며, 그런 면에서 워즈워스의 평등주의적 시학이 강조하는 보편적 인간의 본성과 잘 부합한다. 또 정치적으로도 1790년대의 개혁이념은 혁명의 이상을 노르만족 정복 이전의 앵글로색슨의 정치체제를 회복하는 것, 그렇게 해서 이른바 "노르만족의 멍에(Norman Yoke)"를 극복하고 "옛 영국의 자유(The Ancient British Freedom)"를 회복하는 것을 기본적인 전제로서 공유하고 있었고, "담시"라는 토착적 시형식을 부활한다는 것은 문학적인 맥락에서 동일한 이념적 궤적을 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급격히 늘어난 "길거리 담시(broadside ballad)"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선전수단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가진 대중적 영향력과 정치적 효과는 문학의 도덕적(교양적) 효과를 늘 염두에 둔 워즈워스에게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워즈워스에게 "담시"가 갖는 의미가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면, "서정담시"에 대한 워즈워스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 "서정시"와 "담시"를 정의하고, 두 개념의 모순적 결합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복잡한 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가령 "서정담시"의 "실험성"의 허구, 다시

말해서 그 의외의 "관습성"을 당대의 잡지시, 즉 당대에 유행하던 담시들과 비교하여 설명한 메이요(Robert Mayo)같은 학자는 "서정담시"의 실험성 혹은 독창성을 단지 그 문학적 우수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서정담시집』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평자인 패리쉬(Stephen Parrish)는 서정담시의 특성을 그 "이야기"가 그냥 화자의 마음 속에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서정시의 가장 큰 특징인 빠른 운율에 의해서 그 감정이 고조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일반적인 "담시"와는 달리 화자의 "감정"이 표현되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이하는 "빠른 운율"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것을 "서정" 담시로 만든다는 것이다. "서정담시"의 특성을 다시 조명한 한 최근의 평자는 칸트를 원용하여 서정시의

특성을 "탈시간성(timelessness)"으로 정의한 후, "서정담시"의 특성을 담시에 고유한 객관성과 사실성, 역사성을 어느 순간 포기하고 서정시의 "탈시간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워즈워스가 「서문」에서 "어떤 행동과 상황에서 생겨난 느낌이 그 행동과 상황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지, 그 행동과 상황 때문에 느낌이 중요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대목은 "서정담시"에 대한 이러한 규정과 부합하는 면이 있다.

워즈워스는 「서문」의 후반부에서 시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시적 "즐거움"의 기본은 "운율"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담시의 "이야기"가 불러일으키는 과도한 흥분과 격정을 일정한 언어의 운율이 적절히 제어하여 도덕적으로 건전한 "시적 즐거움"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워즈워스가 기본적으로 운문과 산문의 본질적인 차이를 부인하면서도 운문으로 시를 쓰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서정담시"라는 쟝르실험의 맥락에서 본다면 "담시"가 주는 감각적 자극을 "서정시"의 운율로 순화하여 서정담시의 "즐거움"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보면, 워즈워스가 『서정담시집』의 기획에서 코울리지를 실질적으로 밀어낸 다음에도 (비록 그 비중은 줄어들었을지언정) "서정담시"라는

쟝르실험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그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서정담시"의 문학적 실체라고 일컬어지는 몇몇 시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구디 블레이크와 해리 기일」은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가장 전형적인 "담시"로 거론되는 작품이다. 특히 이 시의 첫 번째 연과 마지막 연의 감탄사나 구어체 표현은 이 시가 쓰여지던 1790년대에 윌리엄 테일러(William Taylor)의 번역으로 영국에 소개되어 인기를 끌던 독일의 담시 작가인 뷔르거(Gottfried Bürger)의 영향을 깊히 받은 것으로 되어있다. 워즈워스는 이 시를 이 시집에서 유일하게 "사실"에 입각하여 쓰여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를 그냥 "담시"가 아닌 "서정담시"로 만드는 것은 어떤 측면인가? 제이코부스(Mary Jacobus)는 이 시의 내용이 거꾸로 하층 빈민들을 "계몽"하여 결국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당대의 일반적인 "담시"들과는 달리 가난한 구디 블레이크의 "저주"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일반적인 "담시"의 문법을 뒤집어놓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저주"와 같은 초자연적이고 미신적인 주제는 "전통담시"의 단골메뉴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그것의 신비로움이 부각되기보다는 그것아 갖는 도덕적 힘에 촛점이 맞추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네/ 자나 깨나 늙은이에게나 젊은이에게나/"불쌍한 해리 기일은 매우 춥다네"/자나 깨나 밤이나 낮이나/ 이빨은 달그락 여전히 달그락/ 그러니 그대 농부들에 바라네/ 구디 블레이크와 해리 기일을 생각하게.

 

제이코부스의 주장처럼 화자의 공감이 해리 기일보다는 구디 블레이크에게 가있긴 하지만 미신적 경험을 도덕적 힘으로 수용한다고 하여 반드시 서정적인 담시가 된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워즈워스가 「서문」에서 만족스럽게 술회하듯이 이 시에서처럼 두드러진 빠르고 경쾌한 운율이 고리타분한 교훈적 담시를 서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영아 살해라는 엽기적 소재를 다루는 「가시나무」 역시 당시 인기를 얻고 있던 뷔르거의 담시들처럼 고딕적인 선정주의로 흐를 수 있는 측면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시의 특이한 점은 워즈워스가 1800년판의 본문의 각주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남의 말을 잘 믿고 수다스러운" 화자를 통한 극적 구조 속에서 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워즈워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똑같은 생각에 집착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좌지우지하는 언제나 서로 다른,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렇게 눈에 띠게 다르지도 않은 그들의 감정의 굴곡에 따라가며 보여주는 것이 내가 바랐던 바이다.

 

따라서 워즈워스의 담시적 서술의 대상은 영아살해를 했을지도 모르는 그 여인이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믿고 떠벌리기를 잘하는 그 화자의 내면이다. 당시에 유행하던 담시들의 단골주제인 미혼모의 영아살인과 유령의 출현 같은 엽기적인 소재가 흔히 볼 수 있는 시골 중년남자의 심성에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는 심리학적 분석은 워즈워스가 이 시에서 담시의 선정적 소재와 객관적 서술 대신 서정시의 주관적 자기탐구를 시도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시에서는 독립적인 극적 인물로 설정된 화자가 주인공인 마사 레이(Martha Ray)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극적인 구조가 견지되면서도 가령 다음과 같은 대목에 이르러서는 화자의 서술이 소재의 선정성과 이야기의 극적 구조를 순간적으로 뛰어넘어 화자의 감정이 도달하는 어떤 막다른 지점, 어수선한 감정적 동요를 진정시키고 성취되는 어떤 서정적 정지감이 경험된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정말이지 내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돌아섰고, 그녀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오, 기구한 내 팔자!, 기구한 내 팔자!'/ 그리고 그녀는 거기에 앉아 있었다/ 달이 맑고 푸른 하늘 중턱을 넘어갈 때까지/ 그리고, 가는 바람줄기가/ 연못의 표면을 흔들고 지나갈 때면/ 온 동네가 다 알지/ 그녀가 벌벌 떨고 있다는 걸/ 그리고 당신도 그녀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다/ '오, 기구한 내 팔자! 기구한 내 팔자!

 

마사 레이가 진짜 자기 아이를 죽였는지, 그리고 거기에 암매장을 했는지, 그리고 바람소리가 진짜로 그녀에게 아이의 원한에 찬 울음소리로 들렸는지, 그녀의 울부짖음이 공포와 죄의식으로 인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가시나무"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밝혀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화자는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그녀의 울부짖음을 들었고, 그것이 "뜻하는 바"와 상관없이 맑고 푸른 하늘의 한 가운데로

솟아오른 달처럼 화자의 마음은 팽팽한 감정적 긴장감 안에서 인간의 순수한 고통과 만난다. 그리고 그렇게 정제된 감정적 긴장 속에서 마사 레이라는 역사적 존재와 그에 관한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반응들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이것이야말로 위에서 언급한 서정적 순간이 도달하는 "무시간성"의 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워즈워스는 이미 언급한 각주에서 이러한 서정적 순간의 성취에는 "서정적이고 빠른 운율"이 한 몫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워즈워스에 의하면 빠른 운율은 "사실"과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에서 감정을 분리시키고 정제하여 서정적 순간의 구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 다른 대표적 담시인 「바보소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정담시"의 담시의 "서정성"은 수선스러운 화자가 만드는 극적인 상황이나, 빠른 운율이 만들어내는 효과에 의해 성취된다. 이 시의 빠른 운율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뷔르거의 「르노라」(Lenora)와 비교해보면 이 시의 "서정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워즈워스는 이 시의 운율을 모방하고 있고,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바보소년」은 「르노라」의 패로디(parody)라고 할 만큼 그 줄거리를 반대로 적용하고 있다. 「르노라」의 경우에는 전쟁터에 나간 애인의 전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여주인공 르노라가 신을 저주하며 자살의 의지를 보인 끝에 말을 타고 나타난 애인의 유령을 따라 밤새도록 달리다가 함께 그들의 무덤에 도착하지만, 그들의 보금자리인 무덤에 도착하자 애인의 유령은 환상처럼 사라지고, 신의 심판의 자리로 나아간 르노라는 그 영혼을 용서받는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어머니 베티(Betty)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바보소년" 역시 의사를 데려오는 임무를 띠고 한밤중에 말을 타고 가지만 실종된다. 뒤늦게 수색에 나선 베티는 아들을 백방으로 수소문하지만 실패하고 절망에 빠진다. 연못 옆을 지나가며 "끔찍한 죄(deadly sin)"를 생각하지만 아들을 찾으리라는 희망으로 곧 생각을 바꾼다. 베티의 절망적인 수색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혀야 할 단계에 도달했을 때, 화자는 「르노라」와 같은 담시라면 펼쳐질 것 같은 여러가지 사연들을 가정법으로 언급하고는 일반적인 담시의 화자와는 달리 서술의 상황 밖으로 빠져나와 자신의 서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자의식적으로 언급한다.

 

오 자애로운 시신이여!/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반만이라도 얘기하게 주시오/그 애에게는 틀림없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겠소. 오 자애로운 시신이여!/정말 이게 친절하게 구는 거요?/ 내 부탁을 거절하는 이유가 뭐요?/ 왜 더 이상 나를 도와주지 않는거요?/나를 등지고 그렇게 떠날 수가 있는거요?/그대 시신이여, 그대를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데.

 

전형적인 담시적 서술을 중단시키고 그 유효성을 문제삼는 이러한 자의식적 서술은 시신에 대한 불평이라는 전통적인 시적 장치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독자들을 자극적인 이야기에 탐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면서 시적 서술을 서정적 앤티클라이막스(anti-climax)로 몰고 간다.

 

저기 누구지?/ 땅으로 천둥처럼 곤두박질하는 폭포 옆에/여전히 아름답게 빛나는 저 달 아래에/ 마치 아무 것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풀뜯는 물 위에 똑바로 앉아있는 저게 누구지?

 

「르노라」의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온갖 끔찍한 상상을 다하던 베티와 그 상황을 수선스럽게 전달하던 화자의 예상과는 달리 "바보소년"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절망에 빠져 다급하게 아들을 찾아 헤매던 베티와 그런 베티만큼이나 다급한 운율로 그 상황을 전해주던 화자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아름다운 달빛을 받으며 말 위에 꼿꼿이 앉아있는 "바보소년"의 존재는 그 자체가 워즈워스가 「서문」에서 "대항"하겠다고

밝힌 "극단적인 자극에 대한 타락한 욕구"를 간단히 넘어서는 서정성의 상징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베티의 다그침에 대하여 "바보소년"은 워즈워스가 담시에 새롭게 도입하려는 서정성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답변을 제시한다.

 

닭들은 투-후, 투-후 울었고/ 그리고 햇님은 아주 차갑게 빛났어요.

 

달과 해 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의 존재는 『서정담시집』의 다른 시들에 나오는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 맥락에서는 그 바보의 무지 그리고 그에 근거한 자연에의 친화감은 선정적이고 엽기적인 소재가 주는 감각적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당대의 수많은 "정상인"들의 타락한 감수성보다 우월한 정신적 자질로 제시된다. 이것은 일종의 자연적 인간성, 즉 인간성을 넘어서서 자연에 접근하는 어떤 원시적인 인간성이며,

이것이야말로 워즈워스가 서정담시의 「발문」과 「서문」에서 강조한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바보"는 당대의 사회적 모순의 희생자나 엽기적인 사건을 저지르는 담시적 주인공이 아니라 그 무지와 단순함에 힘입어 자연과 교감함으로써 인간의 근본적 본성을 구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일종의 "탈시간성"을 획득한 서정시적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담시적 소재와 인물을 가지고 서술을 진행하다가 결정적인 대목에서 서술을 중단하고, 그 서술의 유효성과 정당성을 자의식적으로 물은 후 지금까지 진행된 서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서정적 "결말"로 몰고 가는 것은 바보소년」에서 뿐만 아니라 「사이먼 리」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서정담시적" 서술양식이다. 주지하다시피, 「사이먼 리」는 전형적인 농촌 빈민의 일대기이다. 한때는 동네에서 제일 가는 사냥솜씨를 자랑하던 건장한 청년이던 "사이먼 리"가 이제는 거의 죽음의 문턱에 가있는 가난하고 무력한 노인이 되어 있음을 대조적으로 설명한 후, 화자는 담시적 서술을 중단하고 독자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나의 친절한 독자여, 나는 알고 있다네./그대가 얼마나 참을성 있게 기다렸는지를/안된 일이지만 그대는/ 이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고대하고 있겠지. 오 독자여! 만일 그대에게/ 조용한 생각이 가져다 주는 마음의 양식이 있다면/ 오 친절한 독자여! 그대는/ 어디서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네./ 내가 더 할 얘기는 짧지만,/ 바라건대 친절하게 받아주었으면 하네./ 그것은 이야기가 아니네. 하지만 그대가 조금만 생각하면/ 이야기로 만들 수도 있을 걸세.

 

여기서는 「바보소년」에서 보다 더 직접적으로 일반적인 담시독자들의 "극단적인 자극에 대한 타락한 욕구"를 문제 삼으며 자극적인 줄거리에 수동적으로 탐닉하는 대신 "조용한 생각"을 권유한다. 화자가 서술의 "결말"로서 제시하는 것은 지금까지 진행된 담시적 서술의 서사적 구조와 전혀 상관없이 화자가 "사이먼 리"를 직접 대면하는 한 장면이다. 여기서도 무슨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구디 블레이크"처럼 땔감을 구하기 위해 고목의 뿌리를 잘라내려 애쓰는 "사이먼 리"를 보고, 화자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단숨에 잘라준다. 그러자 "사이먼 리"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이 장면은 어쩐지 화자에게도 "슬픈 생각(mourning)"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불쌍한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동정하고 그들에게 자선심을 베푸는 것은 당대의 수많은 잡지의 시란을 채웠던 인도주의적 담시나 거리의 담시(broadside ballad)들의 고정메뉴였다. 그러나 "감사의 눈물"에 대하여 "슬픈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워즈워스가 자신의 "담시"를 "서정담시"로 만든다 함은 뷔르거의 고딕주의적 담시처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줄거리로 독자들의 천박한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않겠다는 것이기도 하고, 또 당대의 인도주의적 거리의 담시처럼 빈민에 대한 자선심을 고취하는 고식적인 교훈적 수사법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워즈워스가 "서정담시"적 서술을 통해 성취하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서정적 순간"으로서 그것은 서술의 대상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통속적인 공감이나 동정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간의 고통이 촉발하는 감각적 자극을 넘어서는 "조용한 생각"을 통하여 순간적으로나마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인간적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워즈워스의 자연주의나 범신론, 혹은 코울리지에게 물려받은

"일생론(one-life philosophy)"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워즈워스에게 있어서 그것은 독립된 이론이나 원칙으로 설명될 수 있는 어떤 "주의"라기 보다는 독특하게 설정된 시적 서술의 공간에서 시적 사유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어떤 서정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인식이 워즈워스의 문학을 역사와 민중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도록 만든다는 비판도 있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서론에 설파된 서정담시의 시학이

기본적으로 그의 평등주의적 관점에 기반한 시적 반역이기도 했거니와 그가 여러가지 방식으로 추구했던 담시의 서정성 자체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좀더 높은 차원의 도덕적 명상을 그 수단과 결과로서 수반했다는 점에서 현실도피적이라거나 탈역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서정담시들이 추구하는 서정적 순간, 그 안에서 화자가 (그리고 바라건대 독자 역시) 성취하는 서정적 인식은 그 자체로는 서사적 구조와 역사적 설명을 초월하는

"탈시간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되 그것이 좀더 넓은 맥락에서 갖는 의미는 인간성에 대한 옹호와 보다 발전된 역사에 대한 전망과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VII.『서정담시집』의 문학사적 의의

 

『서정담시집』의 「서문」과 "서정담시"라는 쟝르실험이 갖는 문학사적 의의는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자에 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다. 시적 소재와 시어를 특정한 사회계급의 특정한 언어에서 중간계급 이하의 평민들의 삶과 언어로 확장시키고, 시인을 보통 사람들과 같은 위상에 서있는 사람으로 파악함으로써, 시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외연이 획기적으로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지는 문학사적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일상어를 시어의 일부로 편입시키고, 운문과 산문의 본질적인 구분을 부인하는 것 등은 단순히 시어의 영역을 확장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현대적 시작법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서정담시"의 장르실험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담시의 서정시화를 통하여 시읽기를 단순한 감각적 쾌락을 도덕적 사유로 유도하였으며, 새로운 쟝르실험을 통하여 시적 서술의 촛점을 이미 정해진 소재나 형식을 따르거나 피상적인 외면적 현실을 묘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심오한 인간의 내면으로 옮겨놓음으로써 인간의 주관성이 시적 창작의 핵심에 놓이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은 근대적 작가의식의 효시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서정성"에 대한 새로운 탐구는 담시의 소재였던 초현실적이고 미신적인 인간의 능력과는 구분되는 인간의 무한한 정신적 능력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고, 이것은 훗날 결국 낭만적 상상력에 대한 이론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로써 문학은 단순히 감각적인 즐거움의 원천이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가장 심오한 이해와 인간의 진실탐구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VIII. 『서정담시집』의 번역과 관련된 기본적 지침

 

외국어로 된 시를 번역한다는 것은 애당초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것은 우선 외국인으로서 그 시어의 참 뜻을 제대로 새기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시의 경우는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한 두려움과 불안감은 시와 시인에 관해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더 깊어지며, 더욱이 시어 이면의 문학적 전통과 시적 창작을 통한 형식적 실험에 관하여 알게 되면 알게 될 수록 시를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워즈워스가 시의 언어와 산문의 언어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주장이 혁신적인 것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말해주는 것은 시는 본질적으로 운문적 형식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러한 운문적 형식, 단적으로 율격(rhyme)을 언어체계가 전혀 다른 한국어로 바꾼다는 것은 한마디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뿐만 아니라, 문장의 통사론적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본래의 어순과 구조를 한국어에서 얼마나 존중할 것인가 하는 것도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워즈워스가 의도한 문학적 언어혁명의 핵심이 전통적 영국시에 드리워진 현학의 장막을 거둬내고 고전교육의 바탕이 없는 영국의 민중들이 새로운 시적 실천의 장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서정담시집』의 한국어 번역을 시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원천적으로 만족스러울 수 없는 영시의 한국어번역이 다소 정당화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했다. 따라서, 여기서는 원문의 문자 그대로의 뜻에 단어의 단위에서 충실한“번역판”이 아니라 원문의 중심적인 뜻이 살아있는 한국어 시로 읽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운율적 구조가 무시되고, 전혀 다른 한국어의 언어적 리듬을 가진 구절들이 한국어의 맥락에서는 무슨 근거로 “시”임을 자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풀리지 않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현재로서는 원문의 의미를 크게 손상하지 않으면서 워즈워스의 구어체적 스타일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한국어의 구어체로 바꾸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번 번역은『서정담시집』의 최초의 한국어 번역이지만, 결정판이 결코 아니며, 워즈워스의 글쓰기가 그러했듯, 계속해서 이어질 개역판의 시발점에 불과하며, 그것을 위해 앞으로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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