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ytage Open Lecture
 

 

영문학회 발표문

 

 

인문계 BK사업의 과제와 문제점—3년간의 운영경험을 바탕으로

 

박찬길(이화여대)

 

 

1. 서론

 

이화여대 영문과 BK사업단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보다 밀접하게 조응하는 영어영문학 대학원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제2차 BK사업을 4년째 진행하고 있다.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감독기관인 BNC의 기준에 맞춰 일정한 성과를 이룩했다. 그러나 교육프로그램에 적합하지 않은 과도한 경쟁체제와 인문계에 맞지 않는 이공계 중심의 연구모델을 인문계 대학원에 도입함으로써 상당한 반발과 부작용 또한 있었다. 이화여대 영문과 대학원은 영어영문학 분야에서 “대형사업”을 운영하는 나머지 두 개의 학교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평가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 과정에서 BK사업의 운영방식의 문제점들을 한층 더 절실하게 실감해야 했다. 앞으로도 이루어져야 할 인문학, 특히 영어영문학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보다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난 3년간의 경험을 영어영문학계의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그 개선책을 공동으로 모색하고자 한다.

 

2. 이공계형 연구모델의 문제

 

영어영문학의 대학원 프로그램의 수준이 향상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그 프로그램으로 교육받은 졸업생이 보다 향상된 연구능력으로 좋은 연구성과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영문학에서 연구능력과 연구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고 또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BNC에서는 이것을 대학원 학생들의 연구논문 및 국제학회의 발표로 측정하고자 했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영어영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연구는 연구자의 개별, 단독연구가 기본이다. 그리고 그러한 단독연구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하여 수년간의 대학원 과정을 통하여 연구의 기본기를 수련하는 것이다. 또한 박사과정을 거의 마쳐서 그러한 수련과정의 후반부에 있는 학생이 아니고는 국내에서든 국외에서든 학술논문을 출판하기는 매우 어렵고, 본 사업 이전에는 국내의 어느 학회지도 대학원생의 논문을 출판하는 전례가 없었다. 더욱이 대학원생 단독으로 해외의 유수한 국제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공계에서 그러한 일이 대학원과정에서 가능한 것은 그들의 연구가 공동연구실을 바탕으로 한 협업적 연구이기 때문이다. 이공계에서는 석사과정에 갓 입학한 학생이라도 일정한 업무를 배당받아 수행하면 연구논문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관리감독의 필요성 때문이겠지만 BNC는 인문계에도 그러한 “공동연구”의 형태를 강요했고, 학생들과의 “협업”을 위해 교수들은 상당한 연구력을 소모해야 했다. 진정한 의미의 “협업”은 그 과정에서 서로 배우거나 도움을 주고받을 때 가능한 것인데, 인문계의 경우는 그러한 “협업”이 교수들의 일방적인 지도를 의미할 뿐이다. 기왕에도 전례없는 대학의 경쟁체제에서 연구실적에 대한 가중된 압력에 시달리는 교수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제도는 매우 고통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연구”를 위해 교수들의 “참여”가 불가피한 것이라면, 그것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단독으로 쓰는 논문에 1점을 부여한다면, 학생들과의 공동논문에는 0.7이 아니라 1.5를 부여해야 마땅하다. 혼자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참여에 대하여 충분한 연구비도 지원해야 마땅하다. 근본적으로는 인문계 연구에는 맞지 않는 “공동연구”의 모델은 적용하지 않는 것이 옳고, 훈련의 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 과도한 연구업적을 요구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재정지원은 인문학의 정상적인 연구와 교육이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지 관리감독이라는 행정적 필요에 의해 연구와 교육의 방식까지 편의적으로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한다.

 

3. 과도한 경쟁체제의 문제

 

인간의 어떠한 사회적 활동이든 적당한 경쟁은 활력소가 된다. 경쟁이 활력소가 되려면 그 경쟁의 규칙이 합리적이고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또 경쟁의 강도가 적당해야 한다. 사업에 참여한 사업단은 모두 느꼈으리라 짐작되지만, 현재까지의 BK사업이 가져온 경쟁은 그 강도가 지나쳤을 뿐 아니라, 그 규칙의 합리성과 일관성도 심각하게 결여했다고 본다. BK사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원래 사업계획서의 의도대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쏟는 노력보다 매년 달라지는 평가의 기준에 맞추어 많은 점수를 얻고, 평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워지는 정도이다. 그 두 가지 노력이 왜 다르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대학원에서도 사업선정을 위해 제출한 사업계획서에서 내용과 성격을 불문하고 학생들의 국제발표와 논문출판을 많이 하겠다고 써낸 곳은 없을 것이다. 규칙의 합리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평가의 중심이 사업계획의 이행여부에 맞춰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연구성과”의 양적인 측정에 집중되어있었다는 것이다. 규칙의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그 규칙이 1년차의 운영이 마감되는 시점에 마련되어 소급하여 적용되었다는 것이고, 그것도 이후 매년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평가와 경쟁의 징벌적 성격만 강조되어 매년 성과에 따라 예산을 재배정하는 것은 물론 무조건 중간탈락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의 안정적인 운영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사업계획의 정상적인 이행 대신 더 많은 페이퍼와 더 많은 연구비수주와 더 많은 “행사”의 개최에 주력해야 했다. 가령, 이화여대 영문과 BK의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가 정보화 프로젝트인데 초반부에 기울였던 상당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모든 노력을 페이퍼의 생산에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도한 경쟁체제는 동일패널의 학교간의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었고, 학교간의 생산적인 협업의 가능성도 차단했다. 예를 들어 예산의 20%를 투여하게 되어있었던 국제화사업의 경우 학교간 상호협력을 통해 예산의 절감은 물론 사업자체도 훨씬 내실있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고 본다. 또한 과도한 경쟁 자체가 단기적인 성과위주의 연구를 유도하고, 정상적인 연구분위기를 저해한 측면도 많았다. 발표용 논문의 준비를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동안 통상적인 정작 기말페이퍼가 부실해진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한 성과를 내는데 실제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석사과정 학생들의 소외도 문제였다.

 

4. 관료적 운영 및 평가의 문제

 

경쟁이 과열되면 평가과정에 긴장이 더해지고, 긴장감이 더해지면 그것은 사업의 신축적인 운영을 더 어렵게 만든다. 500개가 넘는 사업단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가운데 확고한 규칙도 미리 확립하지 못한 채 사업을 이끌어가야 했던 BNC 쪽의 어려움도 매우 컸으리라고 짐작된다. 이화여대 영문과는 지난 3년여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사업선정을 위한 최초의 평가를 포함하여 매년 연차평가, 중간 평가, 탈락대상 재진입평가까지 모두 6차례의 평가를 받아야 했다. 대학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것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위하여 그토록 많은 평가를 매번 다른 기준에 의해 받아야하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발표자 개인적으로는 그것에 결코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업의 투명성과 사업단의 책무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대학의 연구를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이 대학의 교육, 연구조직을 그들의 하부행정기관처럼 취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육과 연구에 몰두해야 할 교수들에게 매년 책 한 권 분량의 보고서를 제출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사업단의 보고사항의 진위여부까지 경쟁사업단에게 상호적으로 감시하여 보고하도록 하는 것은 본분을 망각한 극도의 행정편의주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평가과정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소개할 여유가 여기에는 없다.

문제는 무조건적 경쟁을 연구와 교육을 담당한 대학원의 운영원리로 삼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계량적 평가기준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계량화”하기 어려운 교육의 성과를 매년 기계적으로 비교해야 하니 사업단별로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무마하려다 보니 평가기준의 합리성과 일관성을 점점 더 잃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구의 책임이든 상황자체가 어렵고 복잡하다보니 BNC의 입장에서는 경쟁-평가제도 자체를 매우 경직되게 방어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업단의 고유한 교육프로그램의 수행여부보다는 계량적 평가 자체가 더 우선적으로 고려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한마디로 무조건적 경쟁과 징벌적 성격의 계량적 평가제도를 포기해야 한다. 사업을 주관하는 정부기관은 대학원에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유도하고, 징벌이 아니라 조언과 권고를 주어야 마땅하다. 정도가 심한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면, 분야별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각 대학원의 교육프로그램이 약속된 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공개리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검토하고 필요한 지원과 권고를 하는 체제로 바꿔야 한다. 그러한 경우라도 위원회는 각 대학원을 관료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프로그램의 특성과 전공의 고유한 성격을 고려하여 필요한 조력을 해주는 쪽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인문계의 BK사업은 평가를 위한 규칙과 관료주의에 갇혀 진정으로 의미있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BK사업의 규칙은 최소한으로 하고, 행정 자체를 간소하게 하며, 행정적 부담은 대학원이 아니라 BNC에서 져야 한다. 가령, 이 사업의 목적이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우수해외교수와 신진연구인력을 채용하는 데 있다면 (현재 국비예산의 80-90% 정도가 인건비임), 각 대학원에서는 정해진 숫자의 대상인원에 대한 추천만 받고 국비보조금의 집행자체는 BNC가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직접 하면 된다. 현재에도 대학원별로 일정한 비율의 대응자금을 대학 자체가 조달하고 있는 만큼 그 부분만 각 대학원에서 용도에 맞게 신축적으로 운영하도록 하고, 그 부분에 대한 감독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각 대학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5. BK사업의 성과와 개선방향

 

2단계 BK사업이 반을 조금 넘긴 현단계에서 무한경쟁과 징벌적 평가라는 운영원칙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마도 매우 비현실적인 요구일 것이다. 행정부담을 각 대학원에서 BNC로 가져가라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없다면, 전체의 틀을 건드리지 않더라도 다음과 같은 사항은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첫째, 경쟁의 규칙을 합리적으로, 인문계의 특성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공동연구를 기본으로 하는 이공계적 연구모델을 인문계에는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과도한 연구업적을 요구하는 일은 중지해야 한다.

 

둘째, 학교 간의 소모적 경쟁을 지양하고, 일단 지원대상이 되었으면 경쟁보다는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

 

셋째, 교수의 “참여”에 대하여 합당한 지원을 하고, 각 학교의 행정적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넷째, 평가의 방향을 페이퍼의 수나 취업률, 외부연구비 수주액 등 산술적인 통계가 아니라 애당초 의도했던 특성화된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실제 내용과 그 효과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영어영문학회 발표문, 2009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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