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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worth's Patriotism in "The Prelude" and "Concerning The Convention of Cintra"

(1)서곡(The Prelude)씬드라조약에 관하여(Concerning The Convention of Cintra)에 나타난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애국심(Patriotism)

 

박찬길(이화여대)

(2)

1. 왜 애국심이 문제인가?

 

우리는 다시 애국심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구호인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미국 서민의 애국심을 현실정치의 수사로 끌어들여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장기집권으로 가고 있는 일본의 아베수상 역시 그의 극우적 정치이념을 애국주의로 포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박정희 신화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이 시위현장에서 태극기라는 애국심의 상징을 독점적으로 전유함으로써 그들의 극우적 이념을 애국주의적 수사로 분식(扮飾)하고 있다. 애국심은 하나의 정치적 이념이라기보다는 일정한 정치적 상황에서 대중들에 의해 널리 공유되는 하나의 감성(sentiment)에 가깝다. 그 때문에 합리적인 토론을 비껴가기 쉽고, 그래서 반박하기 매우 어렵다. (3)애국심을 연구한 곽준혁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애국심은 민족주의가 내면화되어 나타난 감정 상태나, 개발독재의 정치적 동원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이나, 특정 정치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적 슬로건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다(곽준혁 312).” 우리나라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미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애국심의 이름으로 극우적 정책을 정당화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수구적인 인사들이 극우적 이념을 애국심으로 포장하여 선동함으로써 우리가 어렵게 성취해온 민주화의 결실들을 단박에 무효화하려는 상황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정치의 한 부분이라면, 부지불식간에 일상화되고 있는 극우적 정치 수사가 애국심을 부당하게 전유하는 상황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곽교수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한다면, “배타적 민족주의의 폐해를 극복함과 동시에 개인주의에 매몰된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를 위한 자발적인 헌신을 유도할 도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인식, 그리고 다양한 민족과 국적의 사람들이 동일한 영토 내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정치적 원칙이 필요하다는 인식(311)”이 올바른 형태의 애국심, 정치적으로 보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 보다 건전한 형태의 애국심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서양의 경우에도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대체로 보수 우파가 민족주의와 결합한 애국심을 자기들의 정치적 수사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의 나치즘이나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파시즘도 대중들의 배타적인 애국심을 선동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그들의 전체주의적 정치체제를 정당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19세기 중반 이전으로 눈을 돌려보면, 서양, 특히 우리가 공부하는 영국에서의 정치적 지형에서 애국심이 차지하는 위치는 현재 우리가 목도하는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8세기말 영국에서 애국자라는 말은 자유의 친구들”(friends of liberty)과 거의 동의어였고, 그들은 타락한 정부에 반대하여 정치체제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개혁가(reformer)들이었다. 윌리엄 워즈워스가 서곡에서 1792년을 회고하며 혁명이 동조하는 프랑스인 공화주의자들과 교류하며 자신도 애국자가 되었다”(9124, 1805년판)고 주장한 것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였다. 그리고 불과 몇 년 뒤 영국으로 돌아와 수천 명의 영국군이 프랑스 혁명군에 의해 궤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묘한 감정을 느꼈던 것(서곡10290)도 바로 그러한 애국심때문이었다. 이 당시에는 왕과 교회를 지지하는 군중들(“Church and King” mobs)이 전통적인 라이벌이었던 프랑스와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용하여 애국자라는 칭호를 욕심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전쟁 상황에서는 명예혁명 이후 줄곧 애국자의 대명사로 통했던 개혁가들을 교전중인 적에 동조하는 반역자로 낙인찍기만 하면 곧바로 퇴출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워즈워스 역시 그러한 왕과 교회를 지지하는 폭도들의 공격 대상이었고, 그는 이념적 조국이었던 프랑스와 전통적인 의미의 조국이었던 영국 사이에서 고뇌해야 했다. 워즈워스의 이러한 도덕적 고민은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태어난 지역과 그 지역 사람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애정보다 공화주의 같은 국제주의적 이념의 정당성을 우선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였다. (5)1790년대 중반 이후 줄곧 워즈워스의 이념적 동반자였던 코울리지(Samuel Taylor Coleridge)는 고향에 대한 자연스러운 애정을 넘어서는 애국심을 진정한 애국심으로 규정했고, 이것을 현대적애국심이라고 불렀다(“현대적 애국심The Watchman 31796317일자). 코울리지에 의하면 현대적 애국심이란 공동체의 선을 자신의 이익이라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의 선을 도모하는 것은 그 자체가 옳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의무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워즈워스는 웰링턴 공작(Duke of Wellington, 이전의 Arthur Wellesley장군)이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에 승리한 이후 쓴 시 “1816118, 일반적인 추수감사절 아침에 쓴 송가”(Ode for the Morning of the Day appointed for a General Thanksgiving, January 18, 1816)에서는 코울리지가 규정했던 현대적 애국심과는 확연하게 다른 종류의 애국심을 보여주지만, 180811월에 쓰기 시작한 씬드라조약에 관하여에서는 여전히 코울리지가 말한 현대적 애국심을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워즈워스는 나폴레옹군의 침공에 맞서 싸운 스페인 민중들과 자신을 상상 속에서 동일시하면서 애국자로서의 도덕적 고민을 극복한다. 오늘의 발표에서는 워즈워스의 이러한 현대적 애국심국제주의적애국심이라고 명명하고, 이것이 워즈워스의 씬드라조약에 관하여에 어떻게 발휘되고 있는지를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애국심의 진보적 전통 안에서 설명해 보려고 한다. 이를 통해 이 발표에서 주장하려고 하는 바는 현대의 세계에서도 우리가 세계시민으로서 두려움 없이 정의를 추구한다면 워즈워스가 씬드라조약에 관하여에서 발휘한 현대적 애국심국제주의적애국심이 오늘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적용가능한 정치적 이념이라는 점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2. 1800년 이전의 애국심

 

(6)메리 디츠(Mary G. Dietz)에 의하면 애국심보다는 애국자(Patriot)가 더 오래 전에 만들어진 말이고, 그리스어의 파트리아(Patria)가 그 기원이라고 한다. 이는 도시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정치적 공동체를 뜻하는 폴리스(polis)를 더 중시했던 그리스인들에게 특정한 지리적 위치를 지칭하는 파트리아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고, 심지어 파트리아에 사는 파트리오타이(Patriotai)는 폴리스에 사는 시민 폴리타이(politai)와는 구분되는 야만인을 뜻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특정지역과 연관된 사람이라는 뜻의 파트리오타이는 일종의 정치적 후진성을 전제로 한 개념이었고, 정치공동체의 단위로서 소속감과 충성심의 대상이었던 폴리스는 상대적으로 특정한 지정적 위치로부터 자유로운 개념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폴리스의 정체성은 그 경계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그런 취지였다. (7)파트리아가 그 자체로 구성원의 충성의 대상이 된 것은 로마시대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때의 파트리아는 지역에 대한 자연스러운 애정과 이념적 충성심이 수렴되는 곳이었고, 따라서 로마의 파트리아는 현대적인 의미의 애국심의 대상에 가장 근접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로마는 공동의 파트리아(communis patria)로서 실제로 사는 곳과 상관없이 모든 로마인이 충성을 바쳐야 할 조국에 해당되는 개념이었다. 이후 로마제국이 확장되면서 파트리아는 점점 더 특정한 지역과 연관되기 보다는 일종의 정신적 공동체로 이해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8)그중에서도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그러한 정신적 공동체를 훨씬 더 확장시켜서 시민들의 조국을 지구상의 특정한 지점이 아니라 우주로까지 확장시켰다. 따라서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파트리아란 모든 인류가 속하는 전지구적 공동체를 뜻했고, 이들이 말하는 파트리오타이의 충성심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우주 전체를 향한 것이었다. (9)파트리아가 특정한 지역과 그에 대한 배타적인 애착과 멀어지게 된 또 다른 계기는 바로 기독교였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충성을 바치고 동경해야 할 지역은 자신이 태어난 육신의 고향이 아니라 영혼의 고향, 천국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애국심에 흔히 결부되는 고향, 조국에 대한 충성과 희생과 같은 개념이 조금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12-13세기에 왕을 중심으로 한 왕국이 형성되면서부터였는데, 이때에도 충성의 대상은 어떤 특정한 지역이라기보다는 국가와 동일시되는 왕 자체였다. 즉 애국심은 지역으로서의 국가가 아니라 왕이라는 특정한 개인에게로 향한 것이었다.

(10)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문헌에서 애국심의 언어를 분석한 휴 커닝엄(Hugh Cunningham)에 의하면 18세기에 다시 부각되기 시작한 애국심에 관한 논의에는 대략 세 가지의 연원이 있었다. 국가의 권력구조에 있어서 균형의 미덕을 강조하면서 왕권과 귀족들 사이의 권력분점을 강조했던 마키아벨리가 하나인데, 그의 입장은 주로 명예혁명 이후 왕권의 강화를 경계하는 귀족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념적 논거로 주로 활용되었다. 또 하나는 토리(Tory)였던 볼링브로크(Bolingbroke)였는데, 그는 왕당파의 입장에서 애국자 왕”(a Patriot King)이라는 개념을 재치있게 만들어내어 유통시켰다. 사실 이전의 왕은 애국심의 대상이었는데, 볼링브로크는 왕을 애국심의 주체로 탈바꿈시켰다. 왕은 귀족들의 당파정치에 휘말리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을 불편부당하게 섬긴다는 뜻에서 애국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토리 쪽이 어떻든 애국심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끌어오려는 절박한 시도였지만, 결국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볼링브로크 이후에는 정부에 대한 모든 저항을 애국심의 발로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마지막 하나는 소위 노르만굴레 이론(Norman Yoke Theory)으로서 영국에서 왕이나 정부에 의해 국민들의 자유가 억압되기 시작한 것은 노르만정복 이후라는 오래된 신화이다. 이 신화에 따르면 노르만정복 이전인 색슨왕조 때는 모든 사람들이 고르게 자유와 인권을 누린 황금시대가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을 고대의 영국적 자유”(Ancient English Liberty)라고 부른다. 즉 영국에서 자유를 위한 모든 투쟁은 과거에 그들이 천부인권으로 누렸던 정치적 자유를 회복하려는 시도라는 것이고, 왕권에 대항하는 그들의 투쟁은 노르만이 제거한 영국적 본질을 되찾으려는 시도라는 뜻에서 애국적인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11)명예혁명이후 영국의 정치적 언술에서 애국심은 대체로 급진적인 휘그의 이념이었고, 볼링브로크를 제외하고는 애국자를 왕의 폭정과 정부의 탄압에 맞서 싸우는 자유의 투사로 이해하는데 토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들은 챨스 1(Charles I)에 맞서 청교도 혁명의 와중에 전사한 햄든(John Hampden)이나 챨스 2(Charles II)에 맞서서 왕권신수설을 부정하는 공화주의적 이론을 펼치다가 반역죄로 처형된 시드니(Algernon Sidney)같은 사람을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로 숭배했다. (12)하지만 17세기 말과 18세기 전체에 걸쳐서 애국심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차지하려는 토리-휘그의 경쟁이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가령 우리가 잘 아는 드라이든(John Dryden)은 골수 토리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1681년에는 애국자의 현대적 의미는 법으로 왕자를 대신하고자 하는 자라고 폄훼했다가 1699년에는 애국자를 왕과 나라를 섬기고, 특권과 특혜를 보호하는 자로 추켜세운 바 있다. 역시 토리적 입장을 견지했던 포우프(Alexander Pope)1716년에는 정직한 대신이지만 애국자였던 사람자신이 섬기는 왕자와 나라에만 충실한 자로 추켜세웠다가 훗날 애국자는 어느 시대에나 바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13)영어사전을 편찬한 존슨(Samuel Johnson)은 토리-휘그의 경쟁의 최종적 결말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인데, 1755년에는 애국자를 가장 중요한 정열이 나라를 사랑하는데 바쳐지는 자라고 중립적으로 표현했다가 1773년에는 아이러니칼하게도 당파적으로 정부를 어지럽히는 자라고 덧붙였다가 바로 2년 뒤인 1775년에는 애국심을 불한당들의 마지막 은신처라며 일소에 부쳤다. 대체로 토리적인 입장이었던 이러한 대표적 문인들의 언급들은 18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애국심에 대한 지배력이 압도적으로 급진적 휘그 쪽으로 모아졌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14)18세기 말에 애국심을 가장 확실하게 공화주의 전통 안에 확립한 사람은 프라이스(Richard Price)였다. 그는 프랑스혁명이 발발한 직후인 1789114, 영국에서 혁명협회”(the Revolution Society)의 회원들 앞에서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것에 관한 강연("A Discourse on the Love of Our Country")을 읽었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이 말하는 우리나라우리가 우연히 태어난 땅 혹은 장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공동체라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한 사랑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다른 나라와 경쟁하는 마음을 갖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애국심을 단순히 급진적 휘그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박애”(universal benevolence)의 정신을 가진 세계시민의 도덕으로 확립한 사람이 바로 프라이스였다. 그의 주장을 한 대목을 직접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15)

 

Though our immediate attention must be employed in promoting our own interestyet we must remember that a narrower interest ought always to give way to a more extensive interestwe should love it ardently, but not exclusivelyWe ought to seek its goodbut at the same time we ought to consider ourselves as citizens of the world, and take care to maintain a just regard to the rights of other countries.

 

프라이스의 이 연설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역사적인 논설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를 촉발한 계기로서도 유명한데, 그의 애국론은 애국심을 단지 한 나라 국민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시민의 보편적 윤리로 설명했다는 점이 획기적이다. 프라이스로 인해 애국심은 더 이상 영국 국내문제가 아니라 유럽의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주의적 관점이야 말로 1790년대 급진주의 개혁가들의 전매특허 같은 것이었다. (16)가령 가장 급진적인 개혁가들의 모임이었던 런던통신협회(London Corresponding Society)에서는 1792년에 프랑스의 국민공회(National Convention)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마침내 프랑스인들에게서 타고난 적이 아니라 세계시민이라는 동료를 발견했다.”

(17)앞부분에서 간단하게 소개했던 서곡애국자는 바로 이러한 세계시민적 애국심을 가진 혁명가를 뜻하는 말이었다. “애국자가 등장하는 대목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I saw the Revolutionary PowerToss like a ship at anchor, rocked by storms(IX. 50-51);

 

I stared and listened, with a stranger’s earsTo Hawkers and Haranguers, hubbub wild(IX. 57-58)!

 

...and thus ere longBecame a patriot; and my heart was allGiven to the people, and my love was theirs(XI. 122-24).

 

워즈워스를 이러한 공화주의자로 변신시킨 사람은 마이클 보피(Michael Beaupuy)라는 프랑스 혁명파 장교였다. 서곡에 자세하게 나와 있는 대로 그들과 대의를 같이 하는 혁명가가 되고자 했던 워즈워스의 의도는 그의 갑작스러운 귀국과 나폴레옹전쟁의 발발로 좌절되었고, 프랑스의 공화주의를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연합국의 수장 격이었던 그의 조국에서 국제주의적 애국자 워즈워스가 설 자리는 거의 없었다. (19)현실적인 몸의 조국이었던 영국과 이념적인 조국이었던 프랑스 사이에서 워즈워스가 느꼈던 도덕적 고민인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가장 절절하게 표현되고 있다.

 

When Englishmen by thousands were o’erthrown,Left without glory on the field, or driven,Brave hearts! To shameful flight. It was a grief,-Grief call it not, ‘it was anything but that,-A conflict of sensations without name(X. 286-90)

 

I only, like an uninvited guestWhom no one owned, sate silent, shall I add,Fed on the day of vengeance yet to come(X. 297-99)?

 

워즈워스가 서곡에서 술회하는 이 대목을 보면, 1790년대의 워즈워스가 프라이스가 말한 국제주의적 애국자에 매우 부합하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프랑스혁명이 본궤도를 벗어나 영불전쟁이 혁명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정복전쟁으로 변질되자 워즈워스의 공화주의는 결정적으로 퇴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즈워스를 혁명의 전사로 숭배하던 셸리(Percy Bysshe Shelley)1816년 발표한 워즈워스에게(“To Wordsworth”)에서 밤하늘에 홀로 빛나는 별 같은 존재였던 혁명의 영웅의 변절을 슬퍼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워즈워스의 변절은 당대의 지지자나 후대의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시점을 정확하게 특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학자들은 1798년 나폴레옹이 스위스를 침공한 시점을 워즈워스가 공화주의를 버리고 토리로 돌아서게 된 계기로 보지만, 톰슨(E. P. Thompson)이나 어드만(David Erdman)같은 학자들은 1802년 무렵에 나온 그의 정치적 소넷의 내용을 근거로 다른 사람들보다 후하게 1802년 아미엥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워즈워스의 공화주의가 살아있었음을 주장한다(Thompson 94; Erdman 6). 이런 의미에서 180811월부터 쓰여지기 시작한 씬트라조약에 관하여라는 그의 정치적 산문은 이러한 '변절' 논쟁에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시점은 워즈워스의 '변절' 시점으로 추측되는 가장 늦은 시점 1802년보다 6년이나 지났고, '변절'의 객관적인 증거로 거론되는 워즈워스의 인지발행인(the distributor of stamp) 취임시점인 1813년보다 적어도 약 4년 정도 이전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시기 워즈워스의 공화주의는 얼마나 퇴색했을까? 퇴색했다면, 이때 피력된 애국심은 서곡의 애국심과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말하자면 말해보자면, 180811월에 쓰여지기 시작해서 1809년에 출판된 씬트라조약에 관하여가 보여주는 것은 그의 변절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단정을 무색하게 할 만큼 여전히 싱싱하게 살아있는 공화주의자 워즈워스이다.(20)

 

3. 씬트라조약에 관하여의 역사적 배경과 내용

 

나폴레옹은 18071119-30일에 쥬노(Jean-Andoche Junot) 장군의 지휘 하에 포르투갈을 침공했고,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30일에 수도 리스본을 점령했다. 당시 섭정왕자로서 실질적인 국가원수였던 자오(Joao)는 곧바로 브라질로 도피했다. 포르투갈의 민중들은 이듬해 영국군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군에 저항했다. 나폴레옹은 포르투갈 침공 때 스페인을 끌어들였지만 사실 이베리아반도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그의 복심이었다. 나폴레옹의 야욕은 곧 실체를 드러냈고 스페인 왕가는 왕과 왕자 사이에 볼썽사나운 권력다툼 끝에 결국 나폴레옹의 동생 죠지프(Joseph)에게 스페인의 왕위를 갖다 바치는 참담한 상황을 초래했다. (21)이에 분노한 마드리드의 시민들은 180852일 프랑스군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곧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프랑스군의 탄압은 잔혹했지만 이 사건은 이후 스페인 전역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된 민중적 저항의 기폭제가 되었는데, (22)180252일의 봉기와 3일에 있었던 마드리스 시민의 잔인한 처형장면은 스페인화가 고야에 의해 인상적으로 기록되었다.(23)

(24)그렇다면 씬트라조약은 무엇이었는가? 씬트라조약은 1808830일에 영국 지원군 장군들과 프랑스군 사령관 사이에 조인된 일시적인 종전협약이다. (25)쥬노장군 지휘하의 프랑스군은 1808821일에 있었던 역사적인 비메이로(Vimeiro) 전투에서 아서 웰즐리(Arthur Wellesley, 훗날의 Duke of Wellington)에게 완전히 패했다. 웰즐리는 계속 진격하여 프랑스군을 완전히 궤멸시킬 수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영국 본국에서 갑자기 파견된 두 장군 달림플(Sir Hew Darlrymple)과 버라드(Sir Hary Burrard)에 의해 저지되고, 이 두 사람의 주도로 프랑스군이 제안한 종전조건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는 형태로 종전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26)이것은 영국의 입장에서도, 당사자인 포르투갈의 입장에서는 더욱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치스러운 조약이었다. 달림플은 20900명에 달하는 프랑스 병사들이 그들의 무기와 그동안 약탈한 모든 물건들을 그대로 가진 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것도 영국의 배를 수송수단으로 제공하기까지 하면서 그들의 무사귀환을 도운 것이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종전의 방식은 포르투갈은 물론 영국의 여론도 들끓게 했다. 심지어 영국왕 죠지 3세조차도 이 협약에 대한 불만”(disapprobation)을 표명했고, 그 결과 협상을 주도했던 두 장군과 웰즐리는 본국에 송환되어 공개청문회에 나가야 했다. 영국의 전쟁사에 정통한 마이클 글로버(Michael Glober)승전하여 모든 면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던 군대가 패배한 적에게 그토록 많이 주고, 스스로에게는 그렇게 적은 것을 갖도록 하는 협약은 일찍이 본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27)영국에서도 바보같은 협약과 그 주도자들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지만, 청문회의 결과는 두 장군의 조용한 은퇴와 웰즐리의 신속한 전장복귀일 뿐이었다. 청문회는 관련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끝난 셈이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하여 워즈워스는 분노했다. 그는 코울리지, 싸우디(Robert Southey)와 함께 공개적인 항의집회를 계획했지만 당시 그의 후원자였던 론즈데일 경(Lord Londsdale)이 개입하여 최후의 순간에 이를 무산시켰다.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워즈워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썼던 모든 글 중에서 가장 길고, 가장 급진적인 정치 팜플렛을 작성하게 된 것이다. (28)

 

4. 씬트라조약에 관하여에 나타난 워즈워스의 국제주의적 애국심

 

씬트라조약에 대한 워즈워스의 비판은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워즈워스는 이베리아반도에서의 전쟁을 하나의 도덕적 투쟁으로서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투쟁에서는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국익”(National Interest)보다 정의의 실현이 더 중요하다. 두 번째로는 이 조약에는 동맹군, 즉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대한 공감과 존중이 전적으로 결여되어있음을 지적한다. 세 번째는 훗날 우리가 민족자결주의라고 부르게 되는 원칙, 즉 한 나라의 국민이 그들의 정부형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결의 원칙을 주장하면서, 이 싸움이 이러한 자결의 원칙을 관철하기 위한 정의로운 싸움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워즈워스의 비판은 서곡에서 피력된 애국심보다 훨씬 더 발전된 형태로 국제주의적 공화주의를 구현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29) 우선 워즈워스는 이 싸움의 도덕적 명분이 완전히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민중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지적한다. 그들이 승리하는 것이 보편적인 정의에 합당하다는 것이다.

 

And not only are they moved by these sentiments of universal morality, and of direct and universal concern to mankind, which have impelled them to resist evilbutto express a rational hope of reforming domestic abuses(874-79)

 

이러한 도덕적 투쟁의 핵심은 건강한 저항정신이며, 그 저항의 본질은 이른바 국익을 이기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너그러우며, 그것은 그들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같은 편에서 지지하고 함께 싸우는 동맹에게도 도덕적 각성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30)

 

We were intellectualized also in proportion: we looked backward upon the records of the human race with pride, and, instead of being afraid, we delighted to look forward into futurity. It was imagined that this new-born spirit of resistance, rising from the most sacred feelings of the human heart, would diffuse itself through many countries; and not merely for the distant future, but for the present, hopes were entertained as bold as they were disinterested and generous(140-46)

 

(31)아울러 워즈워스는 씬트라조약을 주도한 영국의 두 장군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동맹에 대한 기본적인 공감과 존중심이 결여되어있음을 지적한다. 워즈워스는 웰즐리가 상대방 프랑스 장군을 지칭할 때 프랑스 이름이 아니라 나폴레옹에 의해 부여된 스페인 귀족의 명칭(Duc D'Abrantes)을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는 스페인 민중들의 자존심에 거슬리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을 암묵적으로 스페인의 통치자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나폴레옹을 상대로 한 전쟁의 기본 목적을 망각한 처사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영국 장군들의 무지와 도덕적 무감각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32) 이와 더불어, 영국군은 사실 지원군일 뿐이고 싸움의 당사자는 포르투갈임에도 불구하고, 조약의 협상과정에서도, 조약의 서명자의 명단에서도 포르투갈이 철저하게 배제되어있음을 비판한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가슴이 찢어지는 모욕이라는 것이다. (33) (34)워즈워스는 씬트라조약이 프랑스군에게 약탈물을 그대로 가져가도록 허용하는 것, 그리고 포르투갈에 남아있는 부역자들의 처벌을 금지한 것 등이 동맹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35)워즈워스의 비판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측면은 이 싸움이 기본적으로 프랑스혁명이 성취하고자 했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싸움이었음을 주장하는 대목이다.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의 핵심은 자기 나라의 정부형태를 스스로 결정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손으로 구성하는 자유, 즉 한 국가의 정치적 자기결정권이다. 이것은 다른 나라의 권리를 정당하게 존중하는 세계시민의 자세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며, 워즈워스의 애국심이 여전히 프라이스의 국제주의적 관점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또한 워즈워스는 나폴레옹의 이베리아반도 침략은 나폴레옹의 야욕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배층의 타락과 무능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동생 조지프를 그토록 빨리 스페인의 왕으로 옹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교활한 음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왕과 왕세자 사이가 갈라져 벌였던 무의미한 권력다툼 덕분이었다. 또 나폴레옹이 포르투갈을 침공했을 때, 당시의 섭정왕자 Joao는 저항은커녕 누구보다도 먼저 바다 건너 브라질로 도주했고, 결국 끝까지 저항하여 나폴레옹군을 몰아낸 건 어쨌거나 민중들이었기 때문이다. (36)워즈워스는 이 부분을 지적하면서 민중의 대의명분은 그들의 마음 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손에 있을 때, 위험과 어려움 속에서도 가장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다”(3484-91)고 주장함으로써 공화주의의 국민주권론을 여전히 굳건하게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37)

 

5. (38)Patriotism Now: Martha Nussbaum

 

필자가 두 세기 이전의 애국심 얘기를 새삼스럽게 되돌아 본 것은 워즈워스를 비롯한 당대의 개혁가들이 견지했던 국제주의적 애국심이 당대뿐만 아니라 현재의 국제정치적 지형에서도 상당한 울림을 갖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애국심이 공화주의와 결합된 것이었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아무리 소중한 이념이라도 세계시민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보편적인 도덕적 원칙과 결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상기해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트럼프의 막무가내의 미국우선주의는 모든 세계시민의 걱정거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동원된 미국의 편협한 자국중심주의적 애국심에 대한 미국 내부로부터의 반성은 그만큼 반갑고 소중하다. 누스바움이 굳건하게 견지하고 있는 국제주의적 애국심과 보편적인 박애의 정신, 그리고 상호존중의 자세는 비록 9.11 이전에 쓰여진 글이라고 하더라도 트럼프시대에 오히려 더 큰 울림을 갖는다. 누스바움은 철학자 리차드 로티(Richard Rorty)가 미국 내부의 결속과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내세운 애국심은 세계시민으로서의 도덕적 인식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결국 호전주의(jingoism)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한다(14). 누스바움은 다음과 같이 미국인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We say that respect should be accorded to humanity as such, but we really mean that Americans as such are worthy of special respect. And that, I think, is a story that Americans have told for far too long...If we really do believe that all human beings are created equal and endowed with certain inalienable rights, we are morally required to think about what that conception required us to do with and for the rest of the world(13, 15)

 

 

Works Cited

 

Coleridge, Samuel Taylor. The Collected Works of Samuel Taylor Coleridge. the Watchman. Ed. Lewis Patton. London: Routledge &Kegan Paul, 1969.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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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Martha. "Patriotism and Cosmopolitanism" For Love of Country? Ed. Joshua Cohen. Boston, Mass: Beacon Press, 2010: 3-17.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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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worth, William, Gravil, Richard., Owen, W. J. B. Bainbridge, Simon,, Wordsworth Summer Conference. Concerning the Convention of Cintra : A Critical Edition. Penrith: Humanities-Ebooks, 2009. Print.

Wordsworth, William., Maxwell, J.C. The Prelude : A Parallel Text. Ed. J.C. Maxwell. Harmondsworth: Penguin, 1988. Print.

곽준혁. "민족주의 없는 애국심과 비지배 평화원칙." 아세아연구46.4 (2003.12): 31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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